오디 상자 앞에서/강민경
슈퍼에 갔다가
좌판 위에 놓인
검은 오디 상자 앞에서
나는 영락없는 옛사람이다
주둥이 까맣게 물들이며
네 것, 내 것, 구별 없이 질리도록
나눠 먹던 생각에 군침이 돌아
쉽게, 작은 오디 상자를 들었다가
높은 가격표에 밀려 손힘이 풀리고
가난했지만 서로 배려하던
풋풋하고 따끈따끈하던
옛 인심만으로 허기를 채운다
흔해서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때를 만나 이리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하물며, 사람 목숨은 왜 자꾸
내리막길을 구르는 돌 취급을 받는지!
세월호 사건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네 탓, 내 탓만 찾다가
제 뱃속 썩는 냄새에 붙들려
하늘 찔러대는 한 숨소리에 닫힌 귀
내가 먼저 본이 되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오늘에야 겨우, 슈퍼 좌판 위 자리한
작은 오디 한알 한알에 새겨진 귀중함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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