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상자 앞에서/강민경
슈퍼에 갔다가
좌판 위에 놓인
검은 오디 상자 앞에서
나는 영락없는 옛사람이다
주둥이 까맣게 물들이며
네 것, 내 것, 구별 없이 질리도록
나눠 먹던 생각에 군침이 돌아
쉽게, 작은 오디 상자를 들었다가
높은 가격표에 밀려 손힘이 풀리고
가난했지만 서로 배려하던
풋풋하고 따끈따끈하던
옛 인심만으로 허기를 채운다
흔해서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때를 만나 이리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하물며, 사람 목숨은 왜 자꾸
내리막길을 구르는 돌 취급을 받는지!
세월호 사건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네 탓, 내 탓만 찾다가
제 뱃속 썩는 냄새에 붙들려
하늘 찔러대는 한 숨소리에 닫힌 귀
내가 먼저 본이 되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오늘에야 겨우, 슈퍼 좌판 위 자리한
작은 오디 한알 한알에 새겨진 귀중함을 본다.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970 | 시 | 초승달이 바다 위에 | 강민경 | 2014.01.04 | 419 |
969 | 시 | 등외품 | 성백군 | 2014.01.06 | 216 |
968 | 시 | 담 안의 사과 | 강민경 | 2014.01.17 | 294 |
967 | 시 | 나무 요양원 | 강민경 | 2014.01.23 | 340 |
966 | 시 | 낙엽 한 잎 | 성백군 | 2014.01.24 | 211 |
965 | 시 | 강설(降雪) | 성백군 | 2014.01.24 | 165 |
964 | 시 | 문자 보내기 | 강민경 | 2014.02.03 | 365 |
963 | 시 | 겨울 홍시 | 강민경 | 2014.02.08 | 339 |
962 | 시 | 2월 | 이일영 | 2014.02.21 | 167 |
961 | 시 | 몽돌과 파도 | 성백군 | 2014.02.22 | 379 |
960 | 시 | 태아의 영혼 | 성백군 | 2014.02.22 | 189 |
959 | 시 | 낙원동에서 | 강민경 | 2014.02.23 | 245 |
958 | 시 | 십년이면 강, 산도 변한다는데 | 강민경 | 2014.02.25 | 241 |
957 | 시 | 길동무 | 성백군 | 2014.03.15 | 196 |
956 | 시 | 내다심은 행운목 | 성백군 | 2014.03.15 | 276 |
955 | 시 | 설중매(雪中梅) | 성백군 | 2014.03.15 | 204 |
954 | 시 | 봄 날 | 이일영 | 2014.03.21 | 208 |
953 | 시 | 회귀(回歸) | 성백군 | 2014.03.25 | 217 |
952 | 시 | 하얀 산과 호수가 보이는 집에서… | 이승욱 | 2014.03.26 | 699 |
951 | 시 | 지상에 내려온 별 | 강민경 | 2014.04.03 | 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