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상자 앞에서/강민경
슈퍼에 갔다가
좌판 위에 놓인
검은 오디 상자 앞에서
나는 영락없는 옛사람이다
주둥이 까맣게 물들이며
네 것, 내 것, 구별 없이 질리도록
나눠 먹던 생각에 군침이 돌아
쉽게, 작은 오디 상자를 들었다가
높은 가격표에 밀려 손힘이 풀리고
가난했지만 서로 배려하던
풋풋하고 따끈따끈하던
옛 인심만으로 허기를 채운다
흔해서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때를 만나 이리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하물며, 사람 목숨은 왜 자꾸
내리막길을 구르는 돌 취급을 받는지!
세월호 사건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네 탓, 내 탓만 찾다가
제 뱃속 썩는 냄새에 붙들려
하늘 찔러대는 한 숨소리에 닫힌 귀
내가 먼저 본이 되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오늘에야 겨우, 슈퍼 좌판 위 자리한
작은 오디 한알 한알에 새겨진 귀중함을 본다.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749 | 시 | 미루나무 잎들이 | 강민경 | 2016.06.06 | 324 |
748 | 시 | 내 몸에 단풍 | 하늘호수 | 2016.06.06 | 214 |
747 | 시 | 밤비 | 하늘호수 | 2016.06.10 | 226 |
746 | 시 | 삶의 각도가 | 강민경 | 2016.06.12 | 295 |
745 | 시 | 6월 | 하늘호수 | 2016.06.15 | 143 |
744 | 시 | 화장하는 새 | 강민경 | 2016.06.18 | 347 |
743 | 시 | 면벽(面壁) | 하늘호수 | 2016.06.21 | 233 |
742 | 시 | 안개꽃 연정 | 강민경 | 2016.06.27 | 233 |
741 | 시 | 물속, 불기둥 | 하늘호수 | 2016.07.05 | 249 |
740 | 시 | 바위의 탄식 | 강민경 | 2016.07.07 | 259 |
739 | 시 | 숨쉬는 값-고현혜(Tanya Ko) | 오연희 | 2016.07.08 | 221 |
738 | 시 | 숲 속 이야기 | 하늘호수 | 2016.07.11 | 122 |
737 | 시 | 나뭇잎에 새긴 연서 | 강민경 | 2016.07.16 | 228 |
736 | 시 | 플루메리아 낙화 | 하늘호수 | 2016.07.17 | 235 |
735 | 시 | 7월의 감정 | 하늘호수 | 2016.07.22 | 156 |
734 | 시 | 초록의 기억으로 | 강민경 | 2016.07.23 | 200 |
733 | 시 | 개여 짖으라 | 강민경 | 2016.07.27 | 214 |
732 | 시 | (동영상 시) 내 잔이 넘치나이다 My Cup Runneth Over! 동영상시 2 | 차신재 | 2016.07.28 | 405 |
731 | 시 | 목백일홍-김종길 | 미주문협관리자 | 2016.07.31 | 344 |
730 | 시 | 시 어 詩 語 -- 채영선 | 채영선 | 2016.08.19 | 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