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15 19:10

오디 상자 앞에서

조회 수 38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디 상자 앞에서/강민경



슈퍼에 갔다가
좌판 위에 놓인
검은 오디 상자 앞에서
나는 영락없는 옛사람이다

주둥이 까맣게 물들이며
네 것, 내 것, 구별 없이 질리도록
나눠 먹던 생각에 군침이 돌아
쉽게, 작은 오디 상자를 들었다가
높은 가격표에 밀려 손힘이 풀리고
가난했지만 서로 배려하던
풋풋하고 따끈따끈하던
옛 인심만으로 허기를 채운다

흔해서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때를 만나 이리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하물며, 사람 목숨은 왜 자꾸
내리막길을 구르는 돌 취급을 받는지!

세월호 사건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네 탓, 내 탓만 찾다가
제 뱃속 썩는 냄새에 붙들려
하늘 찔러대는 한 숨소리에 닫힌 귀
내가 먼저 본이 되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오늘에야 겨우, 슈퍼 좌판 위 자리한
작은 오디 한알 한알에 새겨진 귀중함을 본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60 3월-목필균 오연희 2016.03.09 441
959 (동영상시) 한 여름날의 축제 An Exilarating Festivity On A Mid Summer Day 차신재 2015.09.12 433
958 어머니의 가치/강민경 강민경 2015.05.18 431
957 모래의 고백<연애편지> 강민경 2014.06.22 427
956 비포장도로 위에서 강민경 2015.08.10 416
955 초승달이 바다 위에 강민경 2014.01.04 388
954 사랑하는 만큼 아픈 (부제:복숭아 먹다가) 윤혜석 2013.11.01 387
953 누구를 닮았기에/강민경 강민경 2015.04.05 387
952 바다가 보고 파서 1 file 유진왕 2021.07.26 385
» 오디 상자 앞에서 강민경 2014.06.15 384
950 여인은 실 끊어진 연이다 / 성백군 하늘호수 2015.05.03 380
949 몽돌과 파도 성백군 2014.02.22 372
948 (동영상시) 새해를 열며 2 차신재 2017.02.23 371
947 결혼반지 / 성백군 하늘호수 2015.05.20 370
946 부부시인 / 성백군 하늘호수 2015.05.13 367
945 7월의 숲 하늘호수 2015.07.22 360
944 숲 속에 볕뉘 강민경 2015.10.01 360
943 (동영상 시) 내 잔이 넘치나이다 My Cup Runneth Over! 동영상시 2 차신재 2016.07.28 360
942 황혼 결혼식 / 성백군 하늘호수 2015.10.01 358
941 아기 예수 나심/박두진 file 오연희 2016.12.23 35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9 Next
/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