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14
어제:
24
전체:
1,292,433

이달의 작가
조회 수 16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두 달 전 집 지붕을 교체했다. 벼르고 벼른 공사였다. 지붕의 수명이 다된 것 같아 몇 해 전부터 신경이 쓰였다. 2년 전 집집이 문을 두드리는 한 루핑 회사 세일스맨의 견적 요청에 응하게 되었다. 기술자가 와서 지붕을 점검하더니 비가 오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공사를 서둘 것을 종용했다. 견적가도 만만찮고, 긴 가뭄 중이라 결단이 서질 않았다.

한 해가 지난 작년 가을 엘니뇨로 인한 폭우예보가 연이어 터져 나오자 우리 동네도 지붕 교체 작업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우연히 지난번 방문했던 그 루핑 회사와 연락이 닿았다. 첫 견적가에서 1만 달러를 뺀 값에 해 주겠다며, 우리가 원하는 지붕 색깔은 인기 품목이라 딱 우리집 할 것만 남았으니 당장 결정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닌데 싶어 영 마음이 불편했다. 하루만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해도 도무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돌려 보내는데 아주 애를 먹었다. 혹시나 해서 리뷰 사이트 옐프를 검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리뷰가 온통 난리다. 가격 바가지에 집에서 나가지를 않아 화를 내며 쫓아냈다는 경험담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미국 사람도 여차하면 당하는구나,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옆집 톰이 우리 동네 지붕 공사한 몇 업체 연락처를 알려줘 한 회사로부터 견적을 받게 되었다. 이 전 회사가 깎아준 견적가에서 1만 달러가 더 낮은 가격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 같아 공사를 맡기기로 했다.

구두 계약을 마친 루핑업체 아저씨는 이 동네에서 우리 건너편 옆집 지붕 재질이 제일 좋은 거라는 둥, 동네 기와의 품질까지 분석해 주었다. 작년 여름 우리의 활약으로 주차위반 티켓 발부 직전에 위기를 모면한 바로 그 존네 지붕이다. 제일 좋은 기와는 얼마나 하나 궁금해 다음날 마침 존이 저 멀리 보이길래 달려가 물었다. 잠깐 기다리라더니 아예 계약서를 가지고 나와 스마트폰으로 찍으라며, 지붕 공사가 대만족이라고 적극 추천했다. 무엇보다 두 번째 받은 견적가에서 4000달러가 더 낮은 가격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계약 전이니까 마음을 바꿔도 괜찮다는 톰의 조언에 따라 먼젓번 회사에 잘 이야기하고 존이 추천한 업체를 선정하게 되었다.

집을 나서면 동네 지붕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지붕을 보면 엘니뇨 대비는 제대로 한 걸까, 걱정이 된다. 며칠 전 작은 비에 지붕이 샜다는 이웃 소식이 벌써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비가 어쩜 그렇게 엄청나게 쏟아졌는지, 강물이 불어나 다리 밑으로 온갖 살림살이와 돼지, 닭 같은 가축들이 떠내려가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후 세상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천재지변에 대처하는 방법은 크게 발전한 것 같지가 않다. 엘니뇨 대비를 위한 집 안팎 점검사항과 행동지침을 주의 깊게 읽고 실행하는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의 긴 가뭄으로 물 절약을 외치던 때가 바로 얼마 전인데 이젠 폭우 걱정이다. 가뭄도 걱정이지만, 장마의 피해가 더 크다고 한다. 엘니뇨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1.29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7 수필 [이 아침에]초식남과 육식녀의 사회 10/6/14 오연희 2014.10.07 343
76 수필 [이 아침에] "엄마, 두부고명 어떻게 만들어요?" 10/22/14 오연희 2014.10.24 554
75 수필 찾지 못한 답 오연희 2014.10.24 238
74 수필 [이 아침에] 성탄 트리가 생각나는 계절 11/13/2014 오연희 2014.11.26 389
73 수필 [이 아침에] 공공 수영장의 '무법자' 11/26/2014 오연희 2014.11.26 248
72 수필 [이 아침에]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나이 12/19/2014 오연희 2014.12.30 236
71 수필 [이 아침에] 중국에서 온 '짝퉁' 가방 1/7/2015 오연희 2015.01.09 50
70 수필 [이 아침에] 못 생겼다고 괄시받는 여자 1/24/2015 오연희 2015.01.25 56
69 수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오연희 2015.07.06 146
68 수필 아주 오래된 인연의 끈 오연희 2015.07.06 290
67 수필 미국에서 꿈꾸는 '지란지교' 오연희 2015.07.06 223
66 수필 오케스트라의 단원 선발기준은? 오연희 2015.07.06 93
65 수필 '드롭 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 오연희 2015.07.06 174
64 수필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시간 오연희 2015.07.06 293
63 수필 애리조나, 영국, LA에 살아보니 오연희 2015.07.06 300
62 수필 "결혼 생활, 그거 쉽지 않지" 오연희 2015.07.06 291
61 수필 따뜻한 이웃, 쌀쌀맞은 이웃 오연희 2015.07.11 203
60 수필 다람쥐와 새의 '가뭄 대처법' 오연희 2015.07.29 343
59 수필 북한 억류 선교사를 위한 기도 편지 오연희 2015.08.21 301
58 수필 일회용품, 이렇게 써도 되나 2 오연희 2015.09.16 49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