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집 지붕을 교체했다. 벼르고 벼른 공사였다. 지붕의 수명이 다된 것 같아 몇 해 전부터 신경이 쓰였다. 2년 전 집집이 문을 두드리는 한 루핑 회사 세일스맨의 견적 요청에 응하게 되었다. 기술자가 와서 지붕을 점검하더니 비가 오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공사를 서둘 것을 종용했다. 견적가도 만만찮고, 긴 가뭄 중이라 결단이 서질 않았다.
한 해가 지난 작년 가을 엘니뇨로 인한 폭우예보가 연이어 터져 나오자 우리 동네도 지붕 교체 작업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우연히 지난번 방문했던 그 루핑 회사와 연락이 닿았다. 첫 견적가에서 1만 달러를 뺀 값에 해 주겠다며, 우리가 원하는 지붕 색깔은 인기 품목이라 딱 우리집 할 것만 남았으니 당장 결정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닌데 싶어 영 마음이 불편했다. 하루만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해도 도무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돌려 보내는데 아주 애를 먹었다. 혹시나 해서 리뷰 사이트 옐프를 검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리뷰가 온통 난리다. 가격 바가지에 집에서 나가지를 않아 화를 내며 쫓아냈다는 경험담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미국 사람도 여차하면 당하는구나,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옆집 톰이 우리 동네 지붕 공사한 몇 업체 연락처를 알려줘 한 회사로부터 견적을 받게 되었다. 이 전 회사가 깎아준 견적가에서 1만 달러가 더 낮은 가격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 같아 공사를 맡기기로 했다.
구두 계약을 마친 루핑업체 아저씨는 이 동네에서 우리 건너편 옆집 지붕 재질이 제일 좋은 거라는 둥, 동네 기와의 품질까지 분석해 주었다. 작년 여름 우리의 활약으로 주차위반 티켓 발부 직전에 위기를 모면한 바로 그 존네 지붕이다. 제일 좋은 기와는 얼마나 하나 궁금해 다음날 마침 존이 저 멀리 보이길래 달려가 물었다. 잠깐 기다리라더니 아예 계약서를 가지고 나와 스마트폰으로 찍으라며, 지붕 공사가 대만족이라고 적극 추천했다. 무엇보다 두 번째 받은 견적가에서 4000달러가 더 낮은 가격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계약 전이니까 마음을 바꿔도 괜찮다는 톰의 조언에 따라 먼젓번 회사에 잘 이야기하고 존이 추천한 업체를 선정하게 되었다.
집을 나서면 동네 지붕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지붕을 보면 엘니뇨 대비는 제대로 한 걸까, 걱정이 된다. 며칠 전 작은 비에 지붕이 샜다는 이웃 소식이 벌써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비가 어쩜 그렇게 엄청나게 쏟아졌는지, 강물이 불어나 다리 밑으로 온갖 살림살이와 돼지, 닭 같은 가축들이 떠내려가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후 세상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천재지변에 대처하는 방법은 크게 발전한 것 같지가 않다. 엘니뇨 대비를 위한 집 안팎 점검사항과 행동지침을 주의 깊게 읽고 실행하는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의 긴 가뭄으로 물 절약을 외치던 때가 바로 얼마 전인데 이젠 폭우 걱정이다. 가뭄도 걱정이지만, 장마의 피해가 더 크다고 한다. 엘니뇨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