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을 신고, 친구 아들 결혼식과 연말 음악회 연습을 위해 오랜 시간 서있었던 것이 발단이었다. 다리가 뻑뻑했지만 조금 불편하다 말겠지 싶어 무시했다. 통증을 느낀 지 일주일 만에야 무릎이 부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고와 파스와 진통제가 동원되었다. 송년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양해를 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위에 알려졌다. 작은 키도 아닌데 왜 하이힐을 신냐, 골다공증 검사는 해봤냐, 정형외과 가봐라, 염려와 질책의 말들이 쏟아졌다. 그냥 무리해서 그런 거니까 푹 쉬면 된다는 위로의 말도 들렸다.
현실을 직시하고 편안한 구두를 사기로 했다. 여태껏 신은 것도 사실 요즘 애들 굽에 비하면 높은 것이 아니다. 언젠가 또래 이웃이랑 신발 사러 갔다가 아슬아슬한 하이힐 한번 신어보고 다리가 후들거려 얼른 벗었던 적이 있다. 하이힐로 폼을 잡고 있는 발랄한 아가씨 모습에 '우리도 미니스커트에 저런 하이힐 신었었잖아!' 그녀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아련함이 스쳐 지나갔다.
굽 낮은 단화와 부츠를 골랐다. 굽 차이가 그리 큰 것 같지도 않은데 내 몸이 땅에 나직이 내려앉은 것 같다. 무릎 통증의 원인을 검색해 보았다. 남자보다 여자가, 미국인보다 아시안에게 관절염이 더 많다는 것, 쪼그리고 일을 하는 여자의 생활습관이 주요 이유라는 것 등등. 정보가 무궁무진하지만 미국 정형외과 연구학회지에 게재되었다는 '하이힐이 관절염의 원인'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한 사이트가 눈길을 붙잡는다.
하이힐의 탄생설도 재미있다. 16세기 당시 길에 오물과 물웅덩이가 많아 이를 피하려고, 승마 구두에 박차를 달기 편하게 하려고, 방탕한 여자들의 저녁 나들이를 막기 위해 걷기 힘든 신발을 고안한 것, 엉덩이가 자동으로 위로 향하므로 남자에게 어필하기 위함, 구두 바닥에 댄 가죽 밑창에 상처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라는 이유들이다. 탄생의 이유야 어떻든 많은 여자들이 하이힐로 인한 발과 다리의 고통을 호소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하이힐을 포기 못 하는 이유가 있다. 키가 크고 날씬해 보인다, 자신감을 준다, 세상이 달라 보인다, 패션의 완성이다 등등.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 이유들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굽이 얇고 뾰족한 하이힐부터 통굽처럼 생긴 하이힐까지 이 요술 구두를 참으로 오랫동안 애용해 왔다. 그런데 무릎 통증으로 요술이 풀렸다. 나의 스타일에 차이가 날지라도 나를 아는 사람은 알아서 괜찮고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상관없다. 자신감도 별 영향이 없고, 달라 보이던 세상도 별것 아님을 안다.
그렇다고 하이힐을 그만 신겠다는 것은 아니다. 낮은 구두를 신고 외출하면서, '조금만 기다려'하는 심정으로 나의 하이힐에게 눈길을 보낸다. 대부분의 고통이 그렇지만 다리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면 불편했던 기억이 희미해지다가 까마득해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한 신년 모임에 갔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제기차기 게임에 의욕을 보였다. 아프다고 난리 친 때가 엊그젠데 또 마음이 앞서가네, 싶어 슬그머니 자리에 가 앉았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6.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