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슬프지 않은 이유
홍인숙(그레이스)
1.
떠날 것은 떠나보내고 동면으로 향한 발걸음조차 가벼운 것
은 가을이란 낯설지 않은 이름 때문. 사랑이 떠나가고 사람이
떠나가도 찬란했던 날들이 눈물을 가릴 수 있는 것은 풍만한 젖
가슴처럼 농익은 열매를 안고 있는 가을이란 풍성한 이름 때문.
봄 벚꽃 아래 환희와 여름 부둣가의 낭만이 지는 해 따라 사라
지고 그 사람 아직도 바라보게 하건만 더는 외로움이 아닌 것은
기다림도 아름다운 가을이란 향긋한 이름 때문.
2.
가을엔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용서 받을
수 있어야 하리. 미련 없이 떠날 것은 떠나보내고 이별의 두려
움을 잊을 수 있어야 하리. 비명 한 번 없이 제 살점 뚝뚝 떨어
내는 나무들의 용기를 보라. 어미 품에서 떨어져 나비의 군무로
흩날리는 낙엽의 자유로움을 보라. 찬란했던 여름의 잔재
를 훌훌 털어내고 동면으로 향한 발걸음조차 씩씩한 나무들을
바라보라. 오늘도 홀로 목이 메인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