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돈도비치 바닷가를 걷고 난 후 근처에서 아침을 먹을 때가 있다. 음식 맛, 분위기, 주차공간을 고려하면 마음에 드는 곳 찾기가 쉽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레스토랑을 찾던 친구가 '섹스 온 더 비치'라는 곳이 있네, 란다. '설마?' 하며 눈을 크게 떴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내 발음이 그렇네. 배낭 메는 'Sacks' 란다. 비슷한 발음으로 관심을 끌려는 의도가 느껴졌지만, 영어에 미숙한 우리나 헷갈리는 거겠지 내 탓으로 돌리고 만다.
아무튼 아침에 여는 식당이 많지 않아 평소에 알아두어야 손님이 왔을 때 바로 모실 수가 있다. 그때 그 식당 이름이나 음식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면 기억에 남는 추억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멀리서 온 손님이 그 왜, 존 웨인 친구가 시작했다는 그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이 뭐랬죠? 질문과 함께 대화가 맛있게 풀려나간 적이 있다.
그 식당은 어느 요일에 가도 손님이 북적거려 주차공간이 부족하다. 일반 테이블이 몇 개 있는 안쪽 자리는 꿈도 못 꾸고 달아낸 듯한 바깥 룸에 자리를 잡는다. 낯선 손님과 합석해야 하는 기다란 테이블에 등받이 없는 기다란 의자, 오붓한 느낌도 없고 허리도 편치 않다. 우리가 흔히 좋은 분위기라고 할 때의 느낌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근처 몇 군데 가 보고는 이만한 곳도 드물다는 생각에 자주 가게 된다.
서핑하러 온 젊은이부터 신문 길게 펼치는 나이 지긋하신 분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사람들이 즐겨 먹는 메뉴를 오며가며 훑어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존 웨인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우린 가능하면 긴 의자 맨 구석 자리를 찾아 들어가 커피와 음식을 주문한다. 매콤한 살사를 곁들인 존 웨인도 좋고, 담백한 맛과 건강을 생각하며 헬시 케사디아도 즐긴다.
음식은 신선하고 서비스는 빠르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무엇보다 입구 안쪽에 세워져 있는 존 웨인 모형 인형이 식당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것 같다. 존 웨인이 즐겨 찾던 음식에 그의 이름을 붙여 존 웨인이라는 메뉴가 생겼다는 사연을 들은 후, 식당 이름과 나란히 적혀 있는 '존 웨인의 오리지널 홈'이라는 식당 간판 문구가 친구의 우정 같아 정겹다.
쌍권총으로 '다다다다' 악당을 물리치던 강한 남자의 표징인 존 웨인.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뿐 아니라 가까운 오렌지카운티의 공항 이름으로도 살아있는 불멸의 배우. 그의 실제 삶이 궁금해 검색하다가 그의 죽음에 관한 내용에 한참 머문다. 그에 관한 몇 개의 기록을 번갈아 읽다가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한다.
존 웨인이 칭기즈칸으로 출연한 '정복자' 촬영지가 1954년 당시 핵 실험 장소에서 멀지 않은 유타주 네바다 사막이라는 것. 15년 가까이 암 투병하다가 1979년 72세에 숨진 존 웨인 외에도 여주인공 수잔 헤이워드와 제작진 절반 이상이 암, 뇌종양, 백혈병으로 고통받다가 죽어갔고, 엑스트라로 출연한 인디언 원주민은 대부분 암으로 사망해 부족이 전멸했다는 사실이다. 북핵에 생각이 이르고,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을 비롯해 존 웨인을 추모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