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18
어제:
142
전체:
5,026,361

이달의 작가
제1시집
2008.05.09 13:08

만성 (慢性)

조회 수 256 추천 수 3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만성(慢性)


                                                                                이 월란




뿌리는 늘 가늠되고 있다
줄기?곧음이나 꽃받침의 싱싱함으로도 혹은 열매의 굵기로도
방금 세안을 마친 계집아이의 낯짝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열매가
허공을 주렁주렁 점령하고 있을 때
우린 땅 아래 감추인 토양의 점조직도 올곧은 뿌리의 뻗침으로
충실히 점거당하고 있으리라 쉽게 단정해 버리지 않던가
밑동이 삭아 없어진지 오래라고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것인가
순진무구한 동식물의 줄기들은 언감생심 흉내조차 내지 못할 일이거늘
호모사피엔스의 줄기에선 종종, 혹은 자주, 혹은 만성으로도 일어나는 것을
기적도 잦으면 일상이 되어버리는 법
아랫도리가 마비되어 버린 몸관에서도 꽃은 피고 열매가 맺힌다
밑동이 잘려나가고 아연한 세상 속 통제된 구역에서도
정충과 밑씨는 개헤엄을 쳐서라도 물마루를 올라
무수한 길을 내고 또 내어 뇌관 촘촘히 박힌 열매를 맺고
정받이 빠치는 씨방안에서 영장(靈長)의 길을 또박또박 걷고 있다면
대체 보이지 않는 속씨식물의 헛물관는 어떻게 연명을 하고 있었을까
어디에 기생을 하며 누구의 통로 안에서 더부살이를 해 온 것인가
인생은 뿌리 없이도 응고되지 않는 물관 줄기로 열매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짧디 짧은 것일 뿐이라고
뿌리가 가늠되지 않을만큼, 들통나지 않을만큼 길지 않은 것 뿐이라고
행보석 위에서 꼼지락대던 발끝이 간지러웠던 건
행여 명주실같은 뿔거지라도 돋으려고 한 연유에서일까

                                                    
                                                                              2007-06-26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1 영문 수필 "Johnny Got His Gun" 이월란 2014.05.28 151
190 영문 수필 "First Blood" 이월란 2014.05.28 104
189 영문 수필 "Legend of St. Dorothea of Cappadocia" 이월란 2014.05.28 138
188 영문 수필 "The Arabian Nights" 이월란 2014.05.28 110
187 영문 수필 Mimesis 이월란 2014.05.28 109
186 영문 수필 Nation, Language, and the Ethics of Translation 이월란 2014.05.28 25030
185 영문 수필 Anon, Tale of Two Brothers, Egyptian fairy 이월란 2014.05.28 1718
184 영문 수필 Plato’s Cave, Republic, Book VII 이월란 2014.05.28 129
183 영문 수필 "Laüstic" (Nightingale) 이월란 2014.05.28 1325
182 영문 수필 "The Ingenious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 이월란 2014.05.28 15327
181 영문 수필 "Beauty and the Beast " 이월란 2014.05.28 860
180 영문 수필 Where is the Interpreter "In the Penal Colony"? 이월란 2014.05.28 225
179 영문 수필 Burning Bangkok in Frozen Park City 이월란 2014.05.28 259
178 영문 수필 Eating Food, Eating Love 이월란 2014.05.28 218
177 영문 수필 Interview Paper 이월란 2014.05.28 39934
176 영문 수필 Cajun or Creole? 이월란 2014.05.28 12044
175 영문 수필 “Borderlands and Identities” 이월란 2014.05.28 175
174 영문 수필 The Chaos in "Babel" 이월란 2014.05.28 201
173 영문 수필 The Korean “Goose Families” 이월란 2014.05.28 281
172 영문 수필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이월란 2014.05.28 226
Board Pagination Prev 1 ...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