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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담쟁이 붉게 물들다 / 성백군

 

 

가을이라지만

아직, 다른 잎새들은 다 초록인데

담벼락 담쟁이는 붉게 물들었다

 

왜아니 그렇겠는가

봄부터 가을까지

담벼락을 오르내리며 경계를 허물고

이 집 저 집을 화해시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길에서 만난 낯선 할머니

활짝 웃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초면인데, 내가 남자인데, 민족이 다른데도,

인사를 트는 일에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실성했나?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리되었나 싶다가도

아무렴 어떤가

웃음으로 웃는 세상을 만들어 주니……,

 

담쟁이가 그녀인가, 그녀가 담쟁이인가

둘 다 늙어

노년을 아름답게 꾸미는 가을 전령이 되었으니

이제는 겨울이 와도

담벼락에 길이 나고, 햇님이 활짝 웃으며

나목에 군불을 지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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