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9 06:54

금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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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잔디 / 강민경


산책길에 만난
잡초 한 포기 섞이지 않은
잘 다듬어진 금잔디를  
푸른 비단 같고 양탄자 같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보아 달라는 듯
높은 담장을 상큼 넘어온 황금색 고양이
햇살을 끌어안고 푸른 품이 좋은지
배를 들어내고 사타구니에서부터 목 언저리까지
혀끝을 돌돌 말아 올리며 털 옷 다듬다가
느닷없이 곁에 있는 나무 둥치를 끌어안고
발톱을 들어내어 긁는다. 타다다닥, 타닥, 투드득

식물이나, 짐승이나, 사람과 더불어
서로 피땀 쏟아 생명을 나눈
애증 같은 푸른 두께의 포근함이 좋아서
엉덩이를 맡기는데 옷 속을 파고드는
금잔디에 숨겨진 저항
고양이의 발톱처럼
금세 섬뜩하고 날카롭습니다

생명을 지키며
제 사연대로 살고 진다지만
본의 아닌 선택을 자족하면서
본능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움입니다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도 어쩔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푸른 핏자국이 있습니다
태양 바라기 하는 땅의 것들은
뽑히고 꺾이며 다듬어지는 순간에도
숨겨 놓은 비밀 하나씩은 드러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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