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落款) / 성백군
늙은 재두루미 한 마리가
물가를 걷고 있다
가다가 멈춰 서서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고는
날개를 들먹거려 보이기도 하지만
물속에 든 제 모습을 바라보고, 날지 못하고
흐르는 물에 발자국만 꾹꾹 찍는다
제 마음에는
제가 살아온 날 수 만큼 제 몸이 무거워
흔적은 남길 수 있다고 믿었겠지만
몸이 무겁다고 물이 찍히나
찍힌다 하더라도 흐르면 그만인 것을
나도 한때는
허방에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를 믿고
내 멋에 취하여 허공을 걸어봤지만
걷는다고 다 길이 되지 않더라
길이라 하더라도 발자국은 남길 수 없는 것을
재두루미야
우리 서로 해 넘어가는 자리에서 만났으니
너는 내 안에 나는 네 안에 낙관(落款) 하나씩 찍어놓자
그리고 빈 하늘에
저녁노을 찰랑거리는 그림 그려 꽉 채우고
지평이든 수평이든 암말 말고 넘어가자
늙은 재두루미 한 마리가
물가를 걷고 있다
가다가 멈춰 서서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고는
날개를 들먹거려 보이기도 하지만
물속에 든 제 모습을 바라보고, 날지 못하고
흐르는 물에 발자국만 꾹꾹 찍는다
제 마음에는
제가 살아온 날 수 만큼 제 몸이 무거워
흔적은 남길 수 있다고 믿었겠지만
몸이 무겁다고 물이 찍히나
찍힌다 하더라도 흐르면 그만인 것을
나도 한때는
허방에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를 믿고
내 멋에 취하여 허공을 걸어봤지만
걷는다고 다 길이 되지 않더라
길이라 하더라도 발자국은 남길 수 없는 것을
재두루미야
우리 서로 해 넘어가는 자리에서 만났으니
너는 내 안에 나는 네 안에 낙관(落款) 하나씩 찍어놓자
그리고 빈 하늘에
저녁노을 찰랑거리는 그림 그려 꽉 채우고
지평이든 수평이든 암말 말고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