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세 명의 선생이 있다.
먼저 '집밥'의 대명사인 백 선생, 가령 '매운 돼지 갈비찜'이라고 찍으면 요리 동영상과 함께 황금 레시피가 좌르르 뜬다.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 고민일 때, 초간단을 강조하는 백 선생을 클릭한다. 누가 집에서 저렇게 설탕을 많이 치냐? 중얼대면서도 서글서글한 태도에 또 찾게 된다.
선생 호칭을 남발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던 구 선생과 유 선생, 백 선생 못지않게 가까운 사이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는 현대인의 길라잡이 구 선생 '구 선생한테 물어봐, 다 나와'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백 선생은 백종원, 구 선생은 구글, 유 선생은 유튜브 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셋이 끈끈하게 엮여있어 누구랑 더 친하다 구분하긴 어렵지만, 최근에는 강탈하다시피 나의 시간을 빼앗아가는 유 선생이 가장 문제다. 흥미 있게 본 장면의 관련 영상이 줄줄이 달려있어 보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 때 불이 붙었다. 남북한 선수들의 어우러진 모습과 북한 예술단 공연, 답방 행사로 이루어진 남한 예술단의 북한 공연에서 정점을 찍고 있다.
미국 살면서 바라보는 남북 관계, 나빠서 걱정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요즘처럼 분위기가 붕붕 떠도 사실 좀 조마조마하다. 아무튼, 좋다. 음악을 매개체로 한 남북 간의 화해 무드, 뜨끈한 감동이 밀려온다. 공연 관련 영상을 클릭하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잘 가는지, 전체 장면과 하이라이트를 다 보고도 못 본 게 있나 싶어 다시 찾는 열심이라니.
예전에 즐겨 찾던 소통 전문가 김창옥 강사와 언니의 독설로 유명한 김미경 강의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탈북자들이 출연하는 토크쇼까지 북한 관련 영상물 클릭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 부엌 거실 화장실 안방, 차 안까지 밀고 들어와 내 소중한 시간을 살금살금 빼앗아가는 유 선생, '인제 그만하지'라는 남편 말에 '나도 그러려고 했거든'. 구시렁대며 스마트폰을 닫기 일쑤다.
그런데 유 선생을 가까이하면서 발견한 것 중 하나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제목들, 글자가 크고 색이 강한 표지는 내용이 선정적이거나, 떠도는 소문을 편집하거나, 의도가 느껴질 정도로 편향적인 것이 많은 것 같다. 따라서 반응하는 댓글도 거칠다는 것이다. 강심장 아니고서야 어찌 견딜까 두려움이 몰려온다.
해외여행 계획이 있어 로밍 관련해 궁금한 것을 알아보려고 전화가게에 갔다.
가게 젊은이는 우리의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해 준 후 전화 기능을 좀 더 원활하게 해 준다며 쓸데없는 앱을 삭제하는 등 이것저것 손봐준다. 그러는 과정에서 최근 내가 클릭했던 웹사이트 화면들이 옆으로 눕혀놓은 책장처럼 한 순간 확 뜬다. 갑자기 가슴이 뜨끔거린다. 내 걸어온 인생의 걸음걸음도 저렇게 좍 뜨는 순간이 오겠구나. 부끄러운 장면들이 비디오처럼 펼쳐지겠구나. 볼 것 많고 들을 것 많은 세상, 선택을 잘하며 살라고 가르쳐주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든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년 4월 26일
A beautiful and sad song with so much meaning to many of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