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4 15:22

날아다니는 길

조회 수 21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날아다니는 길



                                                                                                                                                                                                                  이 월란



1.
봇짐 지고 미투리 삼아 넋 놓고 걸었었지 않나. 굴렁대로 굴리며 놀더니 네 발 도롱태를 달아 눈이 번쩍
뜨여 미친 말처럼 달리기 시작했지. 방갓 아래 세월아 네월아 눈 맞추던 백수같은 노방꽃들도 이젠 머리
채 잡혀 끌려가는 바람난 아낙네처럼 KTX의 차창 밖에서 눈 한번 못맞추고 휙휙 낚아채여 허물어지고
날아가던 새들도 주둥이를 헤 벌리고 쳐다보았지.


2.
어둠이 가로수나 지붕들을 우걱우걱 삼켜버리고 나면 잘 들어봐, 길들의 소리가 들려. 꿈의 유골이 다닥
다닥 귀를 맞추며 일어서는 소리가 들려. 그래서 은빛 날개를 달고 산호 속같은 미리내 숲길을 날아다니
고 있지. 그것도 모자라 지상의 모든 길들이 합세해서 액정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온 그 날 모반의 세월
을 감아 쥐고 아이디 몇 자로 익명의 굿길을 날아다니기 시작했어. 구석기 시대를 꿈꾸는 하이퍼 텍스트
의 언어로 부활한 사랑을 속삭여. 야반도주를 해.


3.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장을 받은 그 날 클릭한 2~3초 후에 태평양의 갱도를 빛처럼 날아온 녹음
된 목소리가 전해 주는 인증번호를 받고 난 내가 복제당하거나 도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육감에 맨발의 잠옷바람으로 문을 박차고 나갔더니 오래 누워 있던 길들이 가등 아
래 허연 뼈만 남기고 사라졌더군. 어둠의 정적을 물고 서 있던 노상방뇨된 꽃들이 길들이 넋 놓고 달아난
허공에서 뿌리채 흔들리며 멍하니 쳐다보았어.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14 물고기의 외길 삶 강민경 2017.08.03 172
1313 거리의 악사 강민경 2018.01.22 172
1312 시조 아침나절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2.08 172
1311 평화의 섬 독도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2.21 172
1310 아내의 품 / 성백군 하늘호수 2021.05.26 172
1309 10월 6일 2023년 / 성백군 하늘호수 2023.10.10 172
1308 늙은 등 / 성백군 하늘호수 2023.11.14 172
1307 낮달 강민경 2005.07.25 173
1306 시인이여 초연하라 손홍집 2006.04.08 173
1305 소라껍질 성백군 2008.07.31 173
1304 시조 내 시詩는 -봄비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5.14 173
1303 눈 감아라, 가로등 / 성백군 하늘호수 2018.03.11 173
1302 전자기기들 / 성백군 하늘호수 2018.12.11 173
1301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고백(4)- 작은나무 2019.04.27 173
1300 나에게 기적은 강민경 2020.01.22 173
1299 시조 뜨겁게 풀무질 해주는 나래시조, 50년에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3.14 173
1298 천진한 녀석들 1 유진왕 2021.08.03 173
1297 겨울의 무한 지애 강민경 2015.12.12 174
1296 물 춤 / 성백군 하늘호수 2017.06.25 174
1295 밤바다 2 하늘호수 2017.09.23 174
Board Pagination Prev 1 ...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