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9 16:20

수덕사에서

조회 수 223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수덕사에서  /신 영



여름 장맛비에 씻긴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오래 묵은 낡은 발자국 따라 산사를 오르며
푸릇한 대나무 숲길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
풍경을 흔들던 바람은 달려와 즐거운 마중을 하고
속세에서 묵은 먼지를 털며 일주문 앞에 섰습니다

몸과 마음에 있는 무거운 짐들일랑 내려놓고
빈 몸과 마음이길 소망하며 간절히 모은 두 손
발걸음을 하나 둘 옮길 때마다 소원을 빌고 빌며
지금에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의 인연이 고마워
눈물을 훔치며 계단을 올라 금강문에 섰습니다

오가는 많은 인파의 움직임이 살아있음이라고
살아있음은 꿈틀거리는 몸짓이고 마음 짓이라고
몸과 마음도 갈고 닦지 않으면 녹슬고 썩어진다고
매일마다 씻고 갈고 닦아 윤기가 흐르도록 하라고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며 사천왕문에 섰습니다

치지 않아도 가슴에 울림으로 남아 흐르는 범종
기다림을 잊어버린 세상을 향해 일깨우는 소리
마른 물고기 뱃살을 발라먹고 두들기는 염치에
굳어버린 양심은 동심원을 그리며 울음을 내고
둥둥 거리는 법고의 울림이 세상을 향해 퍼집니다

세상의 오랜 그리움을 쌓아올린 삼층석탑에는
묵은 기다림에 젖은 이끼들이 검붉게 타들고
숭숭 뚫린 가슴마다 동여맨 그리움의 탑 돌이
설익은 달밤에 안타까운 달빛만 석탑을 돌다 지쳐
새벽을 마중하며 추녀끝에 이슬을 만듭니다

가지런히 놓인 돌계단을 올라 대웅전에 서니
인자한 눈빛으로 마중하는 고요의 숨결 소리
차마, 마주 보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모은 합장
서툰 삼배의 몸짓에 마음의 정성을 모아 드리니
길게 타들던 가슴은 젖어들고 눈물이 고입니다

돌아 나오던 대웅전 문지방에 마음을 얹어 놓고
툇돌 위 벗어 놓은 가지런한 신에 발을 담그며
마자 묶지 못한 양쪽 신발끈을 묶으며 합장을 하고
아뢴 귀한 약속 지켜달라고 마음으로 빌고 빌며
올랐던 돌계단에 하나 둘 발걸음을 내려놓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91 마지막 기도 유진왕 2022.04.08 211
1390 마지막 잎새 / 성백군 하늘호수 2021.01.06 149
1389 마흔을 바라보며 박성춘 2010.05.21 822
1388 막 작 골 천일칠 2005.01.27 486
1387 막힌 길 / 성백군 하늘호수 2020.04.14 82
1386 만남을 기다리며 이승하 2005.07.10 369
1385 만남의 기도 손영주 2007.04.24 236
1384 시조 만추晩秋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12.03 138
1383 기타 많은 사람들이 말과 글을 먹는다/ Countless people just injest words and writings 강창오 2016.05.28 579
1382 시조 말리고 싶다, 발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1.25 81
1381 시조 말리고 싶다, 발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2.09 130
1380 시조 말씀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4.02 206
1379 시조 말의 맛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3.29 120
1378 맛 없는 말 강민경 2014.06.26 199
1377 맛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1 유진왕 2021.07.28 103
1376 망부석 이월란 2008.03.19 154
1375 망할 놈의 성질머리 / 성백군 1 하늘호수 2022.01.25 126
1374 매실차 1 유진왕 2021.07.20 149
1373 매지호수의 연가 오영근 2009.04.25 673
1372 맥주 박성춘 2010.10.01 809
Board Pagination Prev 1 ...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