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10 15:03

한정식과 디어헌터

조회 수 492 추천 수 1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한정식 밥상에 대한 추억이 둘 있는데, 한 번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수덕사에 수학여행을 갔을 때 절음식 반찬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어. 도라지 고사리 연근 더덕 쑥갓 등등. 밥을 세 그릇인가 먹었지. 학교를 때려치우고 중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시절. 두 번째는 군대에 있을 때 무슨 일로 대전 역에서 하룻밤을 자는 상황인데, 역앞에서 열 두어살 된 애가 군인아저씨 우리 여관으로 가요 예쁜 아가씨도 많아요 하는 거야. 뭔가 기분이 상해서 싫다 하고 나중에 괜히 싫다 했다 하며 후회하며 낯선 길을 헤매다가 퀴퀴한 여관방에서 곱게 혼자 자고 다음날 아침에 아침상이 들어 왔다. 소고기장조림 달걀찜 계장 멸치볶음 김 뱅어포 등등. 그날도 밥을 한 사발 더 먹었지.

오늘 아침에 참기름 고소한 김을 반찬으로 먹다가 수덕사와 대전역전 한정식 생각이 난거야.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만 처박혀서 지낸 노동절 휴가가 닝닝하게 끝났어. 우리는 왜 일을 하느냐?! 오후에 테레비 채널을 이리저리 바꾸다가 우연히 <디어헌터>를 세 시간 동안 맥주를 마시면서 봤다. 근 30년 전에 영어실력이 모자랄 때 멋 모르고 본 영화. 저런 장면이 있었던가, 하며 도통 기억이 안 나는 영화. 러시언룰렛을 하면서 권태로운 운명에 도전하는 우리들. 로버트 드니로가 눈을 질끈 감은 채 권총을 오른쪽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잡아당기기 직전 기분이 어땠을까. 우리는 왜 저런 전쟁을 하느냐?! 하고 중얼거리다가 에이 썅, 경우에 따라 전쟁은 싫어도 해야된다! 하는 결론을 내렸어. 일단.

© 서 량 2005.09.05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70 새벽, 가로등 불빛 성백군 2005.07.28 276
2169 어젯밤 단비 쏟아져 서 량 2005.07.28 273
2168 해바라기 백야/최광호 2005.07.28 203
2167 희망 백야/최광호 2005.07.28 233
2166 계절과 함께하는 동심의 세계 - 백야/최광호 동시 백야/최광호 2005.07.28 374
2165 버릴 수 없는 것이 눈물 겹다. 강숙려 2005.08.03 636
2164 밴드부 불량배들 서 량 2005.08.03 280
2163 이민자의 마음 강민경 2005.08.08 198
2162 어머니의 마당 성백군 2005.08.12 333
2161 詩가 꺾이는 사회 / 임영준 박미성 2005.08.13 258
2160 손들어 보세요 서 량 2005.08.13 290
2159 빈방의 체온 강민경 2005.08.18 281
2158 링컨 기념관 앞에서 김사빈 2005.08.26 356
2157 흰 머리카락 성백군 2005.08.26 270
2156 단순한 사연 서 량 2005.08.28 240
2155 허리케인 카트리나 성백군 2005.09.03 213
2154 여행을 떠나면서 김사빈 2005.09.05 345
2153 회상 강민경 2005.09.05 302
» 한정식과 디어헌터 서 량 2005.09.10 492
2151 초가을인데 / 임영준 뉴요커 2005.09.12 28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