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18 15:01

도망자

조회 수 178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도망자


                                                                                                                           이 월란





검색 리스트에 오른지는 오래 되었다. 위험한 수배자가 된 지도 오래 되었다. 잡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도 저 끈질긴 미행을 따돌릴 재간은 없다. 잠시 열이 올라 누웠어도 거룩한 저승사자의 가운을 입고 나의 침상에 걸터 앉아 있다. 누워서 거저 먹을 생각은 말라고. 모기장 속에 모기를 피하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있었던 것처럼 그들이 쳐 놓은 그물망 속에 내가 들어 있다. 범인으로 지목되어 빈 속에 들어가 수박통처럼 세상을 부풀어, 죄의 온상같은 피밭을 울며 뛰쳐 나온 직후로 길이 닳도록 오가는 일상의 골목마다 그들은 철저히 지키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수비하듯 그들의 눈알이 소리없이 구른다. 헉헉대는 그들의 허리춤에 흉기는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초성능의 업그레이드 된 카빈총 한자루 쯤은 숨기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 대 맞고 쓰러지면 한동안 몽롱해질 곤봉 하나 눈앞에서 달랑이고 있고 생의 회로는 평행선처럼 따라붙는 수색자를 결코 따돌리지 못한다. 탈주자는 늘 조준되어 있어 사정거리를 벗어나지도 못한다. 지하의 반역자들은 어디에나 둥지를 틀고 있는 것처럼 그만 걷어차 버리라고 찝쩍이는 불온삐라가 가끔 날아들지만 누구 하나 그럴 엄두를 내진 못한다. 쉽게 들어온 것처럼 그리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아니란 걸 은연중에 터득했다. 끈질긴 추격전은 그 날의 클라이맥스를 충실히 연출해 내고, 언제고 곧 결투가 벌어질 듯, 손에 닿을 듯, 효과음 하나 없이, 삶이 쫓아오고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도망자 이월란 2008.04.18 178
509 춤추는 노을 이월란 2008.04.17 125
508 어떤 진단서 이월란 2008.04.16 119
507 꿈꾸는 구름 강민경 2008.04.15 245
506 단풍 2 이월란 2008.04.15 96
505 동목(冬木) 이월란 2008.04.14 157
504 스페이스 펜 (Space Pen) 이월란 2008.04.13 234
503 파일, 전송 중 이월란 2008.04.11 260
502 이별이 지나간다 이월란 2008.04.10 238
501 물 위에 뜬 잠 이월란 2008.04.09 318
500 푸른 언어 이월란 2008.04.08 239
499 첫눈 (부제: 겨울 나그네) 강민경 2008.04.06 218
498 시인을 위한 변명 황숙진 2008.04.05 250
497 겸손 성백군 2008.04.04 153
496 꽃불 성백군 2008.04.04 158
495 창문가득 물오른 봄 이 시안 2008.04.02 380
494 노란동산 봄동산 이 시안 2008.04.02 272
493 노 생의 꿈(帝鄕) 유성룡 2008.03.29 383
492 갈등 강민경 2008.03.28 230
491 사랑의 진실 유성룡 2008.03.28 275
Board Pagination Prev 1 ...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 115 Next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