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되어
(1)
하얗게 햇살이 온 동네를 감싸듯 내려 앉고 있었다.
집들은 문을 잠근 채 침묵하고 있었고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숨어버린 듯 정지된 한 낮이었다
변두리 동네 언덕 위, 한적한 골목.
그 끝에 있는 그녀의 집에는 그녀 혼자였다.
햇살은 한결같은 빛으로 평상 옆 화단에 피어 있는 분홍빛 분꽃에 쌓이고 있었다.
선뜻 가는 바람이 불어 얼굴을 스쳤고 그 바람 뒤로 고요가 밀려들고 있었다.
등을 데우던 햇살을 그렇게 한참을 맞고 있던 그녀가 긴 하품을 하며 평상에 등을 대고 누웠다. 시리게 부신 하늘에 눈을 감았다. 감은 눈가로 말간 물이 잠시 고여 있다가 이내 볼을 타고 흘렀다.
아주 어렸던 그 날들에도 이런 한낮을 보냈었지... 정지된듯 고요한 낮시간을 못 견뎌하며 외로와 하고 아파하던 날들이...
아무도 없는 집.
엄마도 그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예닐곱살의 계집아이는 늘 그렇게 한가로운, 아니 끔찍하도록 외로운 낮시간들을 보냈다.
텅 빈 집에 쏟아지는 햇살이 섬뜩하도록 무서워 비명을 지르며 숨곤 했었다. 칼날처럼 내려 꽂히는 햇살에 쫓겨 혼자 들어와 앉은 방안에 까지 검은 짐승의 그림자로 따라 들어오던 한낮의 햇살을 피해 어린 그녀는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그런 낮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햇살이 눈이 부신만큼 더욱 외로왔던 날들이...
울어서 눈물로 자욱진 얼굴이 말라갈 즈음 어둠이 잦아들었고 그 때 퇴근하시는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반가움에 눈물로 빚은 웃음을 웃을 때면 아무 말씀도 없이 아버지는 가만히 어린 그녀를 이끌어 아버지 앞에 앉히고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씻기셨다.
시외의 국도변에서 좀 떨어진 산 아래 덩그마니 자리 잡은 어느 정신병원.
잘 가꾸어진 정원에는 세련된 조경으로 갖가지 꽃이 피어 있었고 언뜻 화려하게 보일 만큼 건물외형은 밝았다.
웅성거리는 소리, 비명소리, 촛점을 잃은 눈동자, 신발을 끌며 걷는 발소리,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음악소리, 덩그마니 커보이는 탁구대, 쇠창살이 쳐진 좁은 창문, 낡은 TV와 그리고 책꽂이.
그녀가 처음 들어선 정신병동 안의 풍경이었다.
며칠 전, 그녀의 은사되시는 교수님은 친구의 부탁이라며 그녀에게 정신병동에서 환자들의 레크리에이션을 맡아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셨다. 교수님의 친구분이 운영하는 그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재활치료의 일환으로 일주일에 한 시간씩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갖는데 적당한 강사를 찾고 있었고 그녀가 준비하고 있는 논문과 얼마 정도는 연관이 있어 그녀를 마음에 두셨던 것이었다.
전혀 예상 밖에 이야기였다. 그 순간 그녀는 엄마를 떠올렸고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당혹스러웠다. 그런 그녀는 더욱 속내를 애써 들키지 않으려는 듯 선선히 그러마고 대답했고 곧 바로 병원을 찾아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휴게실을 지나 복도 끝에 마련 된 작업장 안에는 밝은 하늘색 환자복을 입은 그들로 가득차 있었다. 손뼉을 치거나 어설프게 웃는 사람,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과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사람들로...
병원장에 의해 그녀가 소개될 때 그녀의 시선은 그 사람들을 넘어 허공을 맴돌았다.
그들을 곧바로 응시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이 그녀에게 몰려왔다.
바로 일주일에 한 번, 병원 측에 의해 준비된 레크리에이션 첫 시간이었다.
어린 아이처럼 고분고분 그녀의 말을 따르며 손뼉을 치고 혹은 손을 들어 대답하는 환자들 틈에서 그를 발견하기 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한 시간 내내 일어서고 앉기를 반복하던 그는 작업장의 창가 쪽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 기차가 다음 역에 닿을 때 까지 기차가 달리는 속도로 손뼉을 치는거에요.
기차가 천천히 달릴 때는 손뼉을 천천히, 빨리 달릴 때는 손뼉도 빨리 치는거에요.
기차소리는 제가 낼거에요.”
모든 환자들이 그녀가 내는 소리에 따라 손뼉을 쳤지만 창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던 그는 손뼉을 치지 않았다. 마치 그 곳에 없는 사람인 듯 아니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느끼지 못하는듯 창 밖만 바라고 있었다.
불규칙적인 손뼉치는 소리 위로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창 밖만 응시하던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희미하게 웃는 것이 보였다.
* * * * * * * * * *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그랬지요.
선천적으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는 정신질병.
작년 말, 미국의 코네티컷주에서 아주 참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명이 넘어 되는 꽃같은 아이들을 순간에 쓰러지게 한,
그 때 범인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병의 병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
흐릿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외로움이 병이 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옆에서 낫지 않는 그 병을 같이 아파하는 사람들.
같이 아파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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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햇살이 온 동네를 감싸듯 내려 앉고 있었다.
집들은 문을 잠근 채 침묵하고 있었고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숨어버린 듯 정지된 한 낮이었다
변두리 동네 언덕 위, 한적한 골목.
그 끝에 있는 그녀의 집에는 그녀 혼자였다.
햇살은 한결같은 빛으로 평상 옆 화단에 피어 있는 분홍빛 분꽃에 쌓이고 있었다.
선뜻 가는 바람이 불어 얼굴을 스쳤고 그 바람 뒤로 고요가 밀려들고 있었다.
등을 데우던 햇살을 그렇게 한참을 맞고 있던 그녀가 긴 하품을 하며 평상에 등을 대고 누웠다. 시리게 부신 하늘에 눈을 감았다. 감은 눈가로 말간 물이 잠시 고여 있다가 이내 볼을 타고 흘렀다.
아주 어렸던 그 날들에도 이런 한낮을 보냈었지... 정지된듯 고요한 낮시간을 못 견뎌하며 외로와 하고 아파하던 날들이...
아무도 없는 집.
엄마도 그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예닐곱살의 계집아이는 늘 그렇게 한가로운, 아니 끔찍하도록 외로운 낮시간들을 보냈다.
텅 빈 집에 쏟아지는 햇살이 섬뜩하도록 무서워 비명을 지르며 숨곤 했었다. 칼날처럼 내려 꽂히는 햇살에 쫓겨 혼자 들어와 앉은 방안에 까지 검은 짐승의 그림자로 따라 들어오던 한낮의 햇살을 피해 어린 그녀는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그런 낮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햇살이 눈이 부신만큼 더욱 외로왔던 날들이...
울어서 눈물로 자욱진 얼굴이 말라갈 즈음 어둠이 잦아들었고 그 때 퇴근하시는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반가움에 눈물로 빚은 웃음을 웃을 때면 아무 말씀도 없이 아버지는 가만히 어린 그녀를 이끌어 아버지 앞에 앉히고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씻기셨다.
시외의 국도변에서 좀 떨어진 산 아래 덩그마니 자리 잡은 어느 정신병원.
잘 가꾸어진 정원에는 세련된 조경으로 갖가지 꽃이 피어 있었고 언뜻 화려하게 보일 만큼 건물외형은 밝았다.
웅성거리는 소리, 비명소리, 촛점을 잃은 눈동자, 신발을 끌며 걷는 발소리,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음악소리, 덩그마니 커보이는 탁구대, 쇠창살이 쳐진 좁은 창문, 낡은 TV와 그리고 책꽂이.
그녀가 처음 들어선 정신병동 안의 풍경이었다.
며칠 전, 그녀의 은사되시는 교수님은 친구의 부탁이라며 그녀에게 정신병동에서 환자들의 레크리에이션을 맡아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셨다. 교수님의 친구분이 운영하는 그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재활치료의 일환으로 일주일에 한 시간씩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갖는데 적당한 강사를 찾고 있었고 그녀가 준비하고 있는 논문과 얼마 정도는 연관이 있어 그녀를 마음에 두셨던 것이었다.
전혀 예상 밖에 이야기였다. 그 순간 그녀는 엄마를 떠올렸고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당혹스러웠다. 그런 그녀는 더욱 속내를 애써 들키지 않으려는 듯 선선히 그러마고 대답했고 곧 바로 병원을 찾아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휴게실을 지나 복도 끝에 마련 된 작업장 안에는 밝은 하늘색 환자복을 입은 그들로 가득차 있었다. 손뼉을 치거나 어설프게 웃는 사람,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과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사람들로...
병원장에 의해 그녀가 소개될 때 그녀의 시선은 그 사람들을 넘어 허공을 맴돌았다.
그들을 곧바로 응시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이 그녀에게 몰려왔다.
바로 일주일에 한 번, 병원 측에 의해 준비된 레크리에이션 첫 시간이었다.
어린 아이처럼 고분고분 그녀의 말을 따르며 손뼉을 치고 혹은 손을 들어 대답하는 환자들 틈에서 그를 발견하기 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한 시간 내내 일어서고 앉기를 반복하던 그는 작업장의 창가 쪽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 기차가 다음 역에 닿을 때 까지 기차가 달리는 속도로 손뼉을 치는거에요.
기차가 천천히 달릴 때는 손뼉을 천천히, 빨리 달릴 때는 손뼉도 빨리 치는거에요.
기차소리는 제가 낼거에요.”
모든 환자들이 그녀가 내는 소리에 따라 손뼉을 쳤지만 창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던 그는 손뼉을 치지 않았다. 마치 그 곳에 없는 사람인 듯 아니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느끼지 못하는듯 창 밖만 바라고 있었다.
불규칙적인 손뼉치는 소리 위로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창 밖만 응시하던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희미하게 웃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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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 증후군이라 그랬지요.
선천적으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는 정신질병.
작년 말, 미국의 코네티컷주에서 아주 참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명이 넘어 되는 꽃같은 아이들을 순간에 쓰러지게 한,
그 때 범인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병의 병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
흐릿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외로움이 병이 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옆에서 낫지 않는 그 병을 같이 아파하는 사람들.
같이 아파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