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되어 (2)
그녀가 동화책을 읽고 읽은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줄 만큼 자란 여섯살 무렵 그녀의 엄마는 돌아가셨다. 그녀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작고 마른 몸에 병치레가 심하던 엄마는 그녀를 낳은 후 더욱 아팠다고 했다. 마음의 병이 먼저 들어 있었던 엄마의 몸은 회복 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밥하고 빨래하는 간단한 집 안 일조차 엄마는 손도 대지 않았다.
고요한 한 밤중에 새어나오던 엄마의 울음소리와 방문을 박차고 튕기듯 나와 마당을 서성이던 아버지가 내 뿜던 한숨 소리, 그것들은 그녀가 다 자란 후에도 그녀의 귀에 또렷한 소리로 들리곤 했다.
따스한 햇살이 좋은 봄날이면 집 안에서만 지내던 엄마가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의 작은 꽃밭을 찾아드는 나비를 구경하곤 했다. 그녀의 엄마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던 대상이었다.
옅어진 눈동자, 말을 삼켜버린 꽉 다문 입술, 금방이라도 부서져버릴 것같은 가는 손과 어깨. 그런 엄마가 마당에 나와 앉았을 때는 언제나 꽃들 사이를 나비가 날고 있었다.
그 때만은 엄마의 날아갈 듯한 몸에 가느다란 기운이 살아나고 가늘지만 깊은 갈망을 담은 눈길로 나비를 끝없이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거짓말처럼 중얼거리던 ”나비다. 나도 나비가 되었으면...” 어느새 나비가 되어 엄마는 나비를 따라가곤 했다.
아픈 몸에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던 그녀의 엄마는 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져 어느 덧 나비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그녀의 유치원에서 봄소풍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기억한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오후에 마당에 분꽃이 가득 피어 있었고 방문을 열던 아버지의 외마디 소리가 한참 동안을 그 마당에서 울렸는데 그 소리의 울림때문이었던가 가득 피어 있던 작은 분꽃이 바르르 떨렸던 것과 아버지의 외침이 끝내는 하늘 끝까지 피어올랐던 것을.
그 후, 부쩍 말이 없어진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강이나 바다를 찾아 낚시대를 드리워 놓고 며칠 씩 침묵하곤 하셨다.
집 안에서 침묵하던 아버지를 힘겨워 하던 그녀는 강가나 바닷가에서의 침묵은 그런 대로 견딜만 했다. 햇빛에 반사된 은빛 물결, 바람따라 흔들리는 나뭇가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다니는 새들은 절대 침묵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버지가 그녀에게 보여준 것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강, 혹은 흐르지 않는 바다를 배경으로 붙박힌 듯 주저 앉은 말없는 등이었고 아무 것도 낚아 올리지 못한 굵은 팔이었다.
여섯살의 소녀는 엄마가 없이도 키는 커가고 나이를 먹으며 점차 어른이 되어갔다.
하늘은 투명한 맑음으로 벗겨지고 있었고 졸린 듯 느린 속도의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눈을 차창 밖으로 향해 풍경을 살피고 지나치는 사람의 표정을 읽으며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리려 해도 그녀의 머리는 그의 생각으로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병원으로 향해 가는 차 안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나간 일주일 동안 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그녀는 끝 닿는데 없이 촛점을 잃고 창 밖을 향하던 그의 시선을 떠올렸고 밥을 먹으면서도 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인 그를 정신병동에 가두게 한 그의 과거를 궁금해 했다. 그러던 그녀였는데 그를 만나게 될 병원을 향하는 길에서 그의 생각에 사로 잡힌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병동의 창가에 앉아 있을 그가 떠올랐을 때, 그에게 갖는 과도한 관심이 무엇으로 부터 시작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는 무서운 광경이라도 보았던 것처럼 소름이 끼치듯 몸을 떨었다.
이 세상을 살아내지 못하고 남편과 자식을 남긴 채 혼자만의 세상으로 훌훌 떨치듯 떠나버린 엄마를 그에게서 보았던가. 기억의 저편으로 지워버리려 했던, 무던히도 애썼던, 그러나 도저히 지워지지 않고 시시때때로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어 상채기를 내며 할퀴던 엄마의 부재가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고개를 크게 흔들며 그녀는 다짐해 보았다, 그를 무심히 대하기를...
병동 안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남편의 거듭 된 폭력에 시달리다 착란을 일으켜 입원한 여 환자가 다시 착란을 일으켜 울부짖다가 쓰러져 기절하였고 이를 본 환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몰려 다리고 있었다.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쓰러진 환자를 격리시켜 응급처치를 해야 했고 동요된 환자들을 진정시키려는 조무사들의 고함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 소란의 한 가운데에 그가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아무 것도 듣지도, 아무 것도 보지도 못 한듯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바람에 몸을 내맡긴 한가로이 흐르는 구름처럼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가벼운 입김에도 날아가버릴 허상처럼...
무심하게 대하자던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녀는 그새 그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그가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무얼 보고 계셨어요?”
그녀가 창 밖으로 눈을 돌리며 물었다. 창살 사이로 병원 입구와 마당, 그리고 부속 건물들이 보였고 햇볕을 쬐며 앉아 있거나 산책을 하는 환자복차림의 사람들이 보였다.
“오늘도 못 오는가 봐요.”
“누가 온다고 했나요?”
그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 같은 굳은 얼굴이었다.
“놀이 시간이 됐어요. 같이 하셔야지요.”
그의 얼굴에 슬핏 웃음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녀가 동화책을 읽고 읽은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줄 만큼 자란 여섯살 무렵 그녀의 엄마는 돌아가셨다. 그녀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작고 마른 몸에 병치레가 심하던 엄마는 그녀를 낳은 후 더욱 아팠다고 했다. 마음의 병이 먼저 들어 있었던 엄마의 몸은 회복 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밥하고 빨래하는 간단한 집 안 일조차 엄마는 손도 대지 않았다.
고요한 한 밤중에 새어나오던 엄마의 울음소리와 방문을 박차고 튕기듯 나와 마당을 서성이던 아버지가 내 뿜던 한숨 소리, 그것들은 그녀가 다 자란 후에도 그녀의 귀에 또렷한 소리로 들리곤 했다.
따스한 햇살이 좋은 봄날이면 집 안에서만 지내던 엄마가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의 작은 꽃밭을 찾아드는 나비를 구경하곤 했다. 그녀의 엄마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던 대상이었다.
옅어진 눈동자, 말을 삼켜버린 꽉 다문 입술, 금방이라도 부서져버릴 것같은 가는 손과 어깨. 그런 엄마가 마당에 나와 앉았을 때는 언제나 꽃들 사이를 나비가 날고 있었다.
그 때만은 엄마의 날아갈 듯한 몸에 가느다란 기운이 살아나고 가늘지만 깊은 갈망을 담은 눈길로 나비를 끝없이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거짓말처럼 중얼거리던 ”나비다. 나도 나비가 되었으면...” 어느새 나비가 되어 엄마는 나비를 따라가곤 했다.
아픈 몸에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던 그녀의 엄마는 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져 어느 덧 나비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그녀의 유치원에서 봄소풍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기억한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오후에 마당에 분꽃이 가득 피어 있었고 방문을 열던 아버지의 외마디 소리가 한참 동안을 그 마당에서 울렸는데 그 소리의 울림때문이었던가 가득 피어 있던 작은 분꽃이 바르르 떨렸던 것과 아버지의 외침이 끝내는 하늘 끝까지 피어올랐던 것을.
그 후, 부쩍 말이 없어진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강이나 바다를 찾아 낚시대를 드리워 놓고 며칠 씩 침묵하곤 하셨다.
집 안에서 침묵하던 아버지를 힘겨워 하던 그녀는 강가나 바닷가에서의 침묵은 그런 대로 견딜만 했다. 햇빛에 반사된 은빛 물결, 바람따라 흔들리는 나뭇가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다니는 새들은 절대 침묵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버지가 그녀에게 보여준 것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강, 혹은 흐르지 않는 바다를 배경으로 붙박힌 듯 주저 앉은 말없는 등이었고 아무 것도 낚아 올리지 못한 굵은 팔이었다.
여섯살의 소녀는 엄마가 없이도 키는 커가고 나이를 먹으며 점차 어른이 되어갔다.
하늘은 투명한 맑음으로 벗겨지고 있었고 졸린 듯 느린 속도의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눈을 차창 밖으로 향해 풍경을 살피고 지나치는 사람의 표정을 읽으며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리려 해도 그녀의 머리는 그의 생각으로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병원으로 향해 가는 차 안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나간 일주일 동안 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그녀는 끝 닿는데 없이 촛점을 잃고 창 밖을 향하던 그의 시선을 떠올렸고 밥을 먹으면서도 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인 그를 정신병동에 가두게 한 그의 과거를 궁금해 했다. 그러던 그녀였는데 그를 만나게 될 병원을 향하는 길에서 그의 생각에 사로 잡힌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병동의 창가에 앉아 있을 그가 떠올랐을 때, 그에게 갖는 과도한 관심이 무엇으로 부터 시작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는 무서운 광경이라도 보았던 것처럼 소름이 끼치듯 몸을 떨었다.
이 세상을 살아내지 못하고 남편과 자식을 남긴 채 혼자만의 세상으로 훌훌 떨치듯 떠나버린 엄마를 그에게서 보았던가. 기억의 저편으로 지워버리려 했던, 무던히도 애썼던, 그러나 도저히 지워지지 않고 시시때때로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어 상채기를 내며 할퀴던 엄마의 부재가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고개를 크게 흔들며 그녀는 다짐해 보았다, 그를 무심히 대하기를...
병동 안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남편의 거듭 된 폭력에 시달리다 착란을 일으켜 입원한 여 환자가 다시 착란을 일으켜 울부짖다가 쓰러져 기절하였고 이를 본 환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몰려 다리고 있었다.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쓰러진 환자를 격리시켜 응급처치를 해야 했고 동요된 환자들을 진정시키려는 조무사들의 고함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 소란의 한 가운데에 그가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아무 것도 듣지도, 아무 것도 보지도 못 한듯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바람에 몸을 내맡긴 한가로이 흐르는 구름처럼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가벼운 입김에도 날아가버릴 허상처럼...
무심하게 대하자던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녀는 그새 그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그가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무얼 보고 계셨어요?”
그녀가 창 밖으로 눈을 돌리며 물었다. 창살 사이로 병원 입구와 마당, 그리고 부속 건물들이 보였고 햇볕을 쬐며 앉아 있거나 산책을 하는 환자복차림의 사람들이 보였다.
“오늘도 못 오는가 봐요.”
“누가 온다고 했나요?”
그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 같은 굳은 얼굴이었다.
“놀이 시간이 됐어요. 같이 하셔야지요.”
그의 얼굴에 슬핏 웃음이 떠올랐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