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문학을 하는 이유
김우영 작가·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
기사입력 : 2014-11-23 13:59 지면 게재일자 : 2014-11-24 면번호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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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작가·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
강원도 춘천에서 화천으로 이사 간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을 만난 것은 청바지와 스카프, 장발의 스무살 문학시절(文靑)이었다. 처음 그의 첫 마디가 이랬다. “난 가난해서 글을 썼어요. 작가는 한 자루의 붓과 종이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음악가나 화가는 돈이 많아야 배우는 예술분야이지요?” 나도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붓 한 자루와 종이쪽지 하나만 있으면 창작이 가능한 일이어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새벽녘 눈이 부시시 떠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간 밀린 숙제(원고쓰기)를 위해서다. 작품해설 청탁과 독후감 원고를 쌓아놓고 한 편, 한 편 정성스럽게 읽어 내려갔다. 신선감과 해맑은 원고의 내음에서 힘찬 에너지를 맛본다. 그리고 늘 버릇처럼 전국과 세계 각지에서 날아오는 이메일(2000여명 관리)과 문학카페와 홈 페이지를 살펴보고는 출근했다.
몇 시간 원고작업을 경제적 환산가치로 따져보면 큰 돈은 아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 무심코 시작한 습작의 세월이 오늘날 중견작가가 되었고 이 일이 이렇게나마 약간의 돈이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일반적인 경제활동 하는 것에 비하며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내가 새벽잠에 깨어나 노력하여 번 돈 치고는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은 족히 마실법한 실실한 금액이다.
아내와 주변으로부터 돈에 대한 짜증 어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자조적인 말을 종종 한다. “에이 괜시리 작가를 했네. 차라리 사업이나 할 것을…?” 그러나 이런 창작을 하면서 약간의 돈이 들어오면 보람스런 작가가 되길 잘 했구나. 하고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나라는 프랑스나 영국처럼 문인들이 글만 쓰면서 먹고 살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면서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5000만명 인구중에 문인은 약 3만여명 정도라고 한다. 이 가운데에 절반은 한국문협이나 국제펜클럽 같은 협회에 등록된 이른바 '호적에 올린 문인'이고, 반은 문학동인회나 일반 문인들에 속한다.
전국 3만여명의 문인중에 글만 쓰는 전업문인은 1%인 300여명 정도 되는데 이 중에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100여명 안쪽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유명작가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이들이다. 전체문인 3만여명 중에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을 내놓으면 먹고 살기가 힘들고, 글만 쓰자니 먹고 살기가 힘든 작가가 약 1000여명 안팍인데 내가 이 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 5000여명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어쩌다 한 편씩 쓰고 문협 세미나나 모임에 가끔 얼굴을 내미는 정도이다. 스스로 시인이나 작가임을 자족하는 부류이다. 그리고 1만5000여명 정도는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가 글을 쓰거나 말거나 하는 정도이다. 그리고 나머지 1만5000여명 정도는 문단에 등단만했지만 시인이나 작가활동은 거의 없거나 이름만 올려놓고 있는 부류다.
쥐가 천장을 갉아먹는 처절한 고독과 얼음 같은 찬 서리의 외로움을 모르고 무슨 글을 쓰랴? 머리로 글을 쓰는 문인 이전에 가슴 따스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참된 작가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그래서 난 늘 고독한 실존적 에고이스트(egoist)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문학을 왜 할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되는 것도 아니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않는 외롭고 힘든 고행(苦行)의 길이다. 애오라지 거칠고 험한 이 세상을 한 자루 등불처럼 어둠을 밝히며 아름답고 살만한 사회로 가꾸어 가는데 그 씨앗이 되자고 하는 것 아닌가?
참된 예술은 손 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른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태양은 도덕적하지도, 부도덕하지도 않다. 그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어둠을 정복한다. 문학도 그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나는 '외길문학'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 잘난 글, 그 못난 글을 위해서 말이다. 오, 참으로 고약한 애물단지 나의 문학(文學)이여!
김우영 작가·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
기사입력 : 2014-11-23 13:59 지면 게재일자 : 2014-11-24 면번호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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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작가·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
강원도 춘천에서 화천으로 이사 간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을 만난 것은 청바지와 스카프, 장발의 스무살 문학시절(文靑)이었다. 처음 그의 첫 마디가 이랬다. “난 가난해서 글을 썼어요. 작가는 한 자루의 붓과 종이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음악가나 화가는 돈이 많아야 배우는 예술분야이지요?” 나도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붓 한 자루와 종이쪽지 하나만 있으면 창작이 가능한 일이어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새벽녘 눈이 부시시 떠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간 밀린 숙제(원고쓰기)를 위해서다. 작품해설 청탁과 독후감 원고를 쌓아놓고 한 편, 한 편 정성스럽게 읽어 내려갔다. 신선감과 해맑은 원고의 내음에서 힘찬 에너지를 맛본다. 그리고 늘 버릇처럼 전국과 세계 각지에서 날아오는 이메일(2000여명 관리)과 문학카페와 홈 페이지를 살펴보고는 출근했다.
몇 시간 원고작업을 경제적 환산가치로 따져보면 큰 돈은 아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 무심코 시작한 습작의 세월이 오늘날 중견작가가 되었고 이 일이 이렇게나마 약간의 돈이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일반적인 경제활동 하는 것에 비하며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내가 새벽잠에 깨어나 노력하여 번 돈 치고는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은 족히 마실법한 실실한 금액이다.
아내와 주변으로부터 돈에 대한 짜증 어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자조적인 말을 종종 한다. “에이 괜시리 작가를 했네. 차라리 사업이나 할 것을…?” 그러나 이런 창작을 하면서 약간의 돈이 들어오면 보람스런 작가가 되길 잘 했구나. 하고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나라는 프랑스나 영국처럼 문인들이 글만 쓰면서 먹고 살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면서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5000만명 인구중에 문인은 약 3만여명 정도라고 한다. 이 가운데에 절반은 한국문협이나 국제펜클럽 같은 협회에 등록된 이른바 '호적에 올린 문인'이고, 반은 문학동인회나 일반 문인들에 속한다.
전국 3만여명의 문인중에 글만 쓰는 전업문인은 1%인 300여명 정도 되는데 이 중에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100여명 안쪽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유명작가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이들이다. 전체문인 3만여명 중에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을 내놓으면 먹고 살기가 힘들고, 글만 쓰자니 먹고 살기가 힘든 작가가 약 1000여명 안팍인데 내가 이 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 5000여명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어쩌다 한 편씩 쓰고 문협 세미나나 모임에 가끔 얼굴을 내미는 정도이다. 스스로 시인이나 작가임을 자족하는 부류이다. 그리고 1만5000여명 정도는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가 글을 쓰거나 말거나 하는 정도이다. 그리고 나머지 1만5000여명 정도는 문단에 등단만했지만 시인이나 작가활동은 거의 없거나 이름만 올려놓고 있는 부류다.
쥐가 천장을 갉아먹는 처절한 고독과 얼음 같은 찬 서리의 외로움을 모르고 무슨 글을 쓰랴? 머리로 글을 쓰는 문인 이전에 가슴 따스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참된 작가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그래서 난 늘 고독한 실존적 에고이스트(egoist)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문학을 왜 할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되는 것도 아니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않는 외롭고 힘든 고행(苦行)의 길이다. 애오라지 거칠고 험한 이 세상을 한 자루 등불처럼 어둠을 밝히며 아름답고 살만한 사회로 가꾸어 가는데 그 씨앗이 되자고 하는 것 아닌가?
참된 예술은 손 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른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태양은 도덕적하지도, 부도덕하지도 않다. 그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어둠을 정복한다. 문학도 그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나는 '외길문학'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 잘난 글, 그 못난 글을 위해서 말이다. 오, 참으로 고약한 애물단지 나의 문학(文學)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