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붙들어? 어쩌라고?/강민경
가로등 불빛 아래
잔뜩 부푼 흰 비닐봉지
학교 철조망에 매달려
길 가는 나의 시선 잡아끈다
저 안에 무엇이 들었지!
다가가 들여다보는데
바람만 잔뜩 끌어안고 끙끙거리다
손 내밀자, 마지못해 잠시 멈추고
물건을 담아 나를 때는
싫다는데도 멱살을 잡아끌더니
속을 비우자마자 구겨져 처박힌 것이
억울해서 바람이 가자는 대로
담을 넘었는데 막상 갈 데가 없다고
내 다리를 감싸 안고 늘어진다
날 붙들어? 어쩌라고? 당황해서
묻는 풋내기 같은 내 꼴이 재미있는지
가뜩 안았던 바람 풀었다 들였다
펄럭이는 흰 비닐봉지를 달래어
바람을 빼내고 접는데, 당신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나, 가고 싶은 데로 갈 수 있게
이 철조망이나 좀 넘게 해 달라며
바람과 나 사이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