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불경기/강민경
시간을 아끼려고
뒷문으로 나와 걷는데
길 위에 뒹구는 아기 머리통만 한
석류 몇 개, 쩍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홍 보석 같은 붉은 알이
입안 가득 군침을 돌게 한다
울 밖으로 뻗은 나무에
가지가 휘도록 버려져 있는 석류가
수확 시기를 넘긴 듯 틈을 가르고
금방 쏟아져 나올 듯, 급한 것을 보면서
내가 주인이라면
벌써 따다가 석류 주라도 담았을 텐데
조바심 내는 내 마음을 알아챘는가!
새들, 가지에서 가지로 옮기며
즐기는 사랑의 키스라니! 주둥이가 벌겋다
저들에겐 불경기를 모르는 풍성함인데
사람들은 불경기라면서도
새들에게 혹은 다람쥐에게는 후한 것을 보면
굶주리는 불경기가 아니라 풍성한 불경기다
떨어진 석류 몇 개 중에서 못생기고
작은 것 하나를 도로 그 자리에 남기며
예다 이것도 너희가 먹으렴 하고, 돌아서는
내 선심에 아랑곳하지 않는
새들은 내 풍성한 불경기엔 관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