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은 실 끊어진 연이다 / 성백군
출근길
공원 가시나무에 가오리연이 걸려있다
바닷속에서 살던 가오리가 하늘을 날아 보려고 뭍으로 나왔다가
가시나무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제 살만 찢고
이민자로 보이는 한 중년 여인은 바람을 등지고 벤치 위에 누워있다
간혹
그녀의 이동식 홈, 쇼핑카에서는
헌 옷가지들이 펄럭거리며 세상을 향하여
‘오늘은 바람이 왜 이리 드세’ 하는데도
담요 속으로 움츠러드는 그녀의 맨발의 속도는
좀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인은 실 끊어진 연이다
그녀도 한때는 펄펄 날랐을 것이다
넓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탯줄 끊어내던 날의 아픔도 잊은 체
이국 하늘을 자기의 하늘로 만들겠다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햇빛이 비치면 비치는 대로 빛을 주워담고
닥치는 대로 하늘을 날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처박히면 다시 일어나고
날고 날아서, 돌고 돌고 돌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그녀가 지금 있는 곳은 동내 공원 한 귀퉁이 낡은 벤치 위
다 떨어진 담요 속,
세상을 등지고 돌아누운 엉덩이에는
팽팽한 긴장으로 조이던 본능마저 허물어지고
바람만 멋쩍게 치마를 들썩거린다
실바람 속에서도 폭풍우 속에서도 도무지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녀
얼핏 드러나는 허벅지의 굵은 핏줄과 종아리의 퍼런 멍 자국
쩍쩍 갈라진 발바닥의 깊은 골이 그녀의 이력을 말해주고 있다
누가 그녀의 얼레에 손을 대었나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연줄을 끊게 했을까
이른 아침 빈 공원에 가오리 한 마리 가시나무에 걸려서
바람이 불 때마다 세상을 향하여 욕을 하는지 하소연을 하는지 몸살을 앓고
쇼핑카의 헌 옷가지들은 한 번만 더 세상에 나가보고 싶다고
마지막 여력을 다해 그녀를 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