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6.03.09 09:50

수레바퀴 사랑-김영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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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사랑
                                                              

                                                                               김영강


    텔레비전에서 어느 청소원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방영한 적이 있다. 시작부터 콧잔등이 시큰했다. 희뿌연 새벽안개 속에 펼쳐진 화면, 우울하기 그지없는 배경음악과 해설자의 착 가라앉은 음성이 나를 슬프게 했다. 쓰레기를 수레에 잔뜩 싣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남편은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고 있었다. 수레는 뭐가 그리 심통이 났는지, 떡 버티고 서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계속 끌고 밀고 하니 한 발짝씩 발걸음을 뗐다. 처음엔 거북이 걸음마였으나 조금씩 속도가 붙으면서 정상운행을 하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그들의 모습에는 사랑과 꿈이 함께 배어 있었다. 같은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부부, 그들에게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나란히 굴러가는 수레의 두 바퀴는 균형이 맞아야 정상적으로 굴러간다. 균형이 깨져 한쪽 바퀴가 삐걱거리면 다른 한쪽도 구르지 못한다. 인생길을 걸어가는 부부도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그래서 서로 맞춰가면서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발 묶고 뜀뛰기 시합을 하는 것처럼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부르면서 때로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눈을 마주쳐가면서.

    화면에 심취하다 보니 수레는 어느새 내 인생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남편을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아온 세월이 어언 50년이다. 그간에 세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변화를 겪었으나, 내 수레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인생을 굴러왔다. 쳇바퀴를 돌면서 그 궤도를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 아니면 이탈을 두려워했는지 모를 밋밋한 세월이었으나 어지러워 비틀거린 적은 수없이 많다.
유교의식이 철저하게 밴 봉건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는 이북이 고향인 남자와과 결혼을 했다. 해방 직후 7남매를 거느리고 목숨 걸고 남하한 집안이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삼팔선을 무사히 넘었고 서울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결혼을 하고 보니 시댁의 문화가 내게는 너무나 생소했다. 아주 이상한 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왁자지껄 수다를 떨다가 방바닥을 치면서 깔깔거리고, 그것도 모자라 발랑 드러누워 배를 쥐고 웃는 시누이들····. 더구나 부모님 앞에서.
     한데, 언제부터인가 나 역시 그 분위기 속에 휩쓸리고 있었다. 늘 자로 잰 듯 반듯반듯하고 한 치의 오차도 용서치 않는 친정집의 침묵보다는 정겨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그들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어, 오히려 좋았다. 그러나 때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돌덩이가 되에 내 수레에 쌓이기도 했다. 지금 와 돌아보니 돌덩이 같은 문제들이 한갓 종잇조각에 불과할 수도 있었는데 그땐 왜 그리 무겁기만 했던지····.     

                               

  첫아기를 임신하여 배가 아주 불렀을 즈음, 나는 한밤중에 홀로 마루에 걸터앉아 한없이 운 적이 있다. 하늘엔 유난히도 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밤이었다. 그때는 정말 딱 갈라서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지금 기억에 없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제는 모두가 다 세월의 강물에 씻겨 내려가버렸다. 잊힌다는 진리가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하나하나 가슴 한복판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고 있다면 지금까지 살아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부부가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할 때, 그들은 그 길이 어떤 길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길의 시작이 당장은 눈에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이 결코 영원한 길은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그 길이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일 수도 있고, 험난한 가시밭길일 수도 있다. 또 길의 끝이 보이지 않고 또 언제 목적지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그냥 주어진 길을 그대로 걸어가면서 발에 걸리는 돌부리는 걷어내고, 걷어낼 수 없는 장애물들은 피해서 가야 한다. 산하가 가로막혔을 경우엔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한다. 길이 끊어져버렸더라도 막막하게 서 있지 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뻔히 알면서도 마음먹은 대로 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달리다가 숨이 차면 쉬기도 하면서 꾸준히 길을 닦다 보면 마음도 저절로 닦여질 것이다. 여기저기 부딪쳐 상처가 나고 또 그 상처가 아물다 보면 모가 나 있던 마음도 자연스레 둥근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을 테니까. 뾰족뾰족한 바위들도 수천 년에 걸친 파도에 씻기면 곡선을 그리지 않는가.
 
    생각해보니 내 수레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그랬다가 속도를 조절하니 다시 정상운행을 했고, 잘 달리기도 했다. 어느 때는 삐걱거리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한 채 50년을 끌고 밀고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참으로 부지런히 살아온 세월이다. 넘어져 크게 다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 참 감사하다.

    지금,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오래된 수레바퀴이긴 하지만 성능에 맞추어 쉬엄쉬엄 가고 있으니 편안하기 그지없다. 잘 달리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 문협월보 3월의 수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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