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세월을 浮游(부유)해 오면서도 처절하게 매달려온 내 첫사랑은
아직도 未完의 진행형이다.
노래가 먼저였을까? 아니면 만남과 이별의 운명이 먼저였을까?
낡은 교회 종탑이 서있던 샛길로 우리는 그 언덕을 올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펼친 365곡집(세광출판)을 보면서 바짝 닥아 앉으면 남녘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시샘을 하듯 그녀의 머리칼을 나부끼면서, 그 엷은 감촉이 전해올 때마다 떨림으로 전율하던 그 언덕위에는, 가난했던 우리들에게, 내 삶을 통해 가장 따사로운 태양이 비추고 있었던 것을….
“Once there were green field, kissed by the sun……”
파도처럼 일렁거리던 보리밭 위를 노고지리들이 춤을 추면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내 무덤 위에는 차거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시인 함형수님의 “해바라기”를 번갈아 낭송하거나 또는 워즈워즈와 에이츠의 詩를 외웠다.
갓 열여덟 여고생의 수줍던 미소.
지상에 그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꽃말 외우기 시작. 아카시아?”
“뭐랬더라?”
“우정이랬는데 벌써 어제 배운 걸…”
노고지리들도 둥지를 찾아 떠나버린 빈 서녘 하늘은 마지막 숨을 토하듯 노을이흩어진다. 그 장렬한 빛과 어둠의 교차지점에서 나는 보았다.
손에 웅켜 쥔 한줌의 평화.
그리하여 그 언덕의 풀 한 포기, 돌 한 조각의 냄새까지도 가슴에 적셔들어 떠도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 수건이 될 줄이야.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로 노래를 배울때는 더 자주 구박을받았다.
“듀엣이란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면 안되쟎아요. 그리고 이노래는 뷰티풀 뷰티풀 브라운 아이스 이 대목에서 서로 갈라져야는데,. 그리고 시작할때 반박자 쉬고 나와야는데 번번히…엇박자….까르르…”
"난 갈라지기 싫은 걸…”또 웃음. 그렇다
어쩌면 너는 내게 닥칠 삶의 엇박자를 일찌기도 예견하여 그렇게 눈을 흘기면서 주의를 주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지만 줄 것이 없었고 줘도 되겠다 싶을 때는 이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아야 했던 이런 엇박자의 절름발이 삶.
“Once there were valleys where river used to run..”.
달 뜨는 저녁이면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기를 가르쳤다.
내가 너에게 줄 것이란 그 기술밖에 지닌 것이 없었으니.
무엇이 그리도 즐거웠을까?
그 해맑은 웃음소리는 환청이 되어 록키산맥을 오르는 험준한 골짜기와 바람부는 호수가는 물론 어딜 가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가로수의 아카시아가 만발한 그해 5월 우리는 자전거를 각기 타고 江이 흐르는 포구로 하이킹을 떠나, 나룻배를 저으며 “호프만의 뱃노래”를 불렀었지.
그런데 배에서 내리던 너를 부축하다가 함께 쇠사슬로 채워 둔 자전거 열쇠를 그만 물에 빠뜨려 민가는 멀고, 마침내 20리 길을 걸어서 되돌아 오게 되었었지.
아카시아 향기와 쏟아지는 밤 하늘의 별들의 축제.
“업어 줄까?” 고개를 저었자..
"그럼 쉬었다 가지."
잔뜩 머리에 이슬을 맞으며 여린 손목을 끌고 걷던 시골 길.
Once there were blue sky with white clouds high above,”
그 언덕을 스치던 뭉게구름.
전 날 “데니보이”를 부르고 아침에 건네 준 깨알글씨로 쓴 내용이 떠오른다.
"스코트랜드의 어느 시골 목장에서 일하던 목동이 주인의 딸을 사랑했데요.
…중략.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우리는 그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는거예요….”
방정맞게도 어쩐지 별안간 우리의 사랑도 목동의 비극으로 전락할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한동안 집에서 금지곡으로 묶여 있을때는 노래방으로 뛰어가 가슴을 치며 불렀던 데니 보이.
그 언덕에도 비바람과 눈보라가 스쳐가고 봄은 다시 올 것인가?
“Once they were part of an ever lasting love!”
사랑은 주는 것이라 말하지만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빈센트 고흐는 줄 것이 없어 동생 태오에게 “내 영혼을 너에게 주마.” 했는데
어쩌나? 이미 세파에 찌들려 오염된 이 영혼을 준다 한들…
그럼에도 지금 일어서 나는 그 첫사랑의 푸른 언덕을 달려 가리라!
아직도 未完의 진행형이다.
노래가 먼저였을까? 아니면 만남과 이별의 운명이 먼저였을까?
낡은 교회 종탑이 서있던 샛길로 우리는 그 언덕을 올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펼친 365곡집(세광출판)을 보면서 바짝 닥아 앉으면 남녘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시샘을 하듯 그녀의 머리칼을 나부끼면서, 그 엷은 감촉이 전해올 때마다 떨림으로 전율하던 그 언덕위에는, 가난했던 우리들에게, 내 삶을 통해 가장 따사로운 태양이 비추고 있었던 것을….
“Once there were green field, kissed by the sun……”
파도처럼 일렁거리던 보리밭 위를 노고지리들이 춤을 추면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내 무덤 위에는 차거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시인 함형수님의 “해바라기”를 번갈아 낭송하거나 또는 워즈워즈와 에이츠의 詩를 외웠다.
갓 열여덟 여고생의 수줍던 미소.
지상에 그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꽃말 외우기 시작. 아카시아?”
“뭐랬더라?”
“우정이랬는데 벌써 어제 배운 걸…”
노고지리들도 둥지를 찾아 떠나버린 빈 서녘 하늘은 마지막 숨을 토하듯 노을이흩어진다. 그 장렬한 빛과 어둠의 교차지점에서 나는 보았다.
손에 웅켜 쥔 한줌의 평화.
그리하여 그 언덕의 풀 한 포기, 돌 한 조각의 냄새까지도 가슴에 적셔들어 떠도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 수건이 될 줄이야.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로 노래를 배울때는 더 자주 구박을받았다.
“듀엣이란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면 안되쟎아요. 그리고 이노래는 뷰티풀 뷰티풀 브라운 아이스 이 대목에서 서로 갈라져야는데,. 그리고 시작할때 반박자 쉬고 나와야는데 번번히…엇박자….까르르…”
"난 갈라지기 싫은 걸…”또 웃음. 그렇다
어쩌면 너는 내게 닥칠 삶의 엇박자를 일찌기도 예견하여 그렇게 눈을 흘기면서 주의를 주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지만 줄 것이 없었고 줘도 되겠다 싶을 때는 이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아야 했던 이런 엇박자의 절름발이 삶.
“Once there were valleys where river used to run..”.
달 뜨는 저녁이면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기를 가르쳤다.
내가 너에게 줄 것이란 그 기술밖에 지닌 것이 없었으니.
무엇이 그리도 즐거웠을까?
그 해맑은 웃음소리는 환청이 되어 록키산맥을 오르는 험준한 골짜기와 바람부는 호수가는 물론 어딜 가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가로수의 아카시아가 만발한 그해 5월 우리는 자전거를 각기 타고 江이 흐르는 포구로 하이킹을 떠나, 나룻배를 저으며 “호프만의 뱃노래”를 불렀었지.
그런데 배에서 내리던 너를 부축하다가 함께 쇠사슬로 채워 둔 자전거 열쇠를 그만 물에 빠뜨려 민가는 멀고, 마침내 20리 길을 걸어서 되돌아 오게 되었었지.
아카시아 향기와 쏟아지는 밤 하늘의 별들의 축제.
“업어 줄까?” 고개를 저었자..
"그럼 쉬었다 가지."
잔뜩 머리에 이슬을 맞으며 여린 손목을 끌고 걷던 시골 길.
Once there were blue sky with white clouds high above,”
그 언덕을 스치던 뭉게구름.
전 날 “데니보이”를 부르고 아침에 건네 준 깨알글씨로 쓴 내용이 떠오른다.
"스코트랜드의 어느 시골 목장에서 일하던 목동이 주인의 딸을 사랑했데요.
…중략.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우리는 그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는거예요….”
방정맞게도 어쩐지 별안간 우리의 사랑도 목동의 비극으로 전락할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한동안 집에서 금지곡으로 묶여 있을때는 노래방으로 뛰어가 가슴을 치며 불렀던 데니 보이.
그 언덕에도 비바람과 눈보라가 스쳐가고 봄은 다시 올 것인가?
“Once they were part of an ever lasting love!”
사랑은 주는 것이라 말하지만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빈센트 고흐는 줄 것이 없어 동생 태오에게 “내 영혼을 너에게 주마.” 했는데
어쩌나? 이미 세파에 찌들려 오염된 이 영혼을 준다 한들…
그럼에도 지금 일어서 나는 그 첫사랑의 푸른 언덕을 달려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