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선생님을 추모하며.
선생님! 지난 번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식 때 휠체어를 탄체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라고 추모사를 낭독하며 오열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선생님마저 가시다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입니까? 이제 선생님이 가신 지금 선생님이 낭독하신 그 추도사는 우리 국민 중 누군가가 노무현 대통령 대신 선생님의 이름만 바꿔서 부르며 선생님의 서거를 비통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선생님은 제게 세 번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 원망스런 분입니다.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의 분노가 미처 식기도 전 쿠데타 세력들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삭발을 하고 포승줄에 묶이고 죄수복을 입은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온몸이 떨리며 하염없는 분노의 눈물을 흘렸고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패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국민들에게 눈물의 고별사를 할 때 평생에 걸쳐 항상 정도만을 걸었던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2000년 6월 북한을 방문하여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려와 김정일 위원장과 평양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역사적인 남북화해의 첫걸음을 디뎠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가신 지금 또 눈물이 납니다. 한반도 오천년 역사에서 선생님처럼 굴곡의 삶을 살다간 지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님처럼 다섯 번의 죽을 위기를 넘어가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화합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마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대한민국은 지금쯤 아마 미안마보다 못한 군사독재의 나라로 아직까지 남이 있을지 모릅니다.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 위협 속에서 방공대피훈련이나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학도호국단이 활개 치며 군사훈련에 열중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IMF 때 거덜 난 경제 인수하여 임기 중 다시 대한민국을 정보산업 강국으로 이끈 선생님.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마지막 인터뷰 때 선생님에 대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이 정부의 구석구석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내가 창조적인 것이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런 것이 한두 개가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정부 혁신 부분에도 그런 것이 있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모든 것에도 그랬습니다."
-서구인들보다 자국민들에게 인색한 평가 받아.
지난 2000년 노벨위원회가 그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민주주의의 옹호자로서 그가 겪은 시련과, 50년에 걸친 남북의 불신과 적대행위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공적을 인정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를 지지하는 서구인들 사이에서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추앙받고 있지만, 오히려 자국민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색한 평판을 받은 편이다.
그는 북한 정권을 감싼다거나, 집권 기간 동안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전라도 출신 관료들을 많이 발탁해 역차별을 했다는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선생님의 서거를 전하는 이곳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선생님이 가신 지금 저를 매우 부끄럽게 합니다. 저도 사실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이 서거하자마자 그동안 선생님을 줄기차게 비판해 왔던 보수언론과 여당에서조차 선생님을 극찬하는 것을 보고 저는 지금 어안이 벙벙합니다. 선생님의 족적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이제야 알기 시작하는 걸까요. 언젠가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그때야 선생님이 우리 민족을 위해 얼마나 큰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선생님.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선생님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우리민족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십시오. 저는 이제 눈물을 닦으며 선생님이 살았던 험난한 이 시기에 선생님과 함께 한반도에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한 인간으로서 대단한 긍지를 지니며 선생님을 이제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려 합니다.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09년 광복 64주년 팔월 열여드레. 황숙진 올림.
선생님! 지난 번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식 때 휠체어를 탄체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라고 추모사를 낭독하며 오열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선생님마저 가시다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입니까? 이제 선생님이 가신 지금 선생님이 낭독하신 그 추도사는 우리 국민 중 누군가가 노무현 대통령 대신 선생님의 이름만 바꿔서 부르며 선생님의 서거를 비통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선생님은 제게 세 번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 원망스런 분입니다.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의 분노가 미처 식기도 전 쿠데타 세력들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삭발을 하고 포승줄에 묶이고 죄수복을 입은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온몸이 떨리며 하염없는 분노의 눈물을 흘렸고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패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국민들에게 눈물의 고별사를 할 때 평생에 걸쳐 항상 정도만을 걸었던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2000년 6월 북한을 방문하여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려와 김정일 위원장과 평양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역사적인 남북화해의 첫걸음을 디뎠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가신 지금 또 눈물이 납니다. 한반도 오천년 역사에서 선생님처럼 굴곡의 삶을 살다간 지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님처럼 다섯 번의 죽을 위기를 넘어가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화합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마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대한민국은 지금쯤 아마 미안마보다 못한 군사독재의 나라로 아직까지 남이 있을지 모릅니다.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 위협 속에서 방공대피훈련이나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학도호국단이 활개 치며 군사훈련에 열중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IMF 때 거덜 난 경제 인수하여 임기 중 다시 대한민국을 정보산업 강국으로 이끈 선생님.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마지막 인터뷰 때 선생님에 대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이 정부의 구석구석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내가 창조적인 것이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런 것이 한두 개가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정부 혁신 부분에도 그런 것이 있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모든 것에도 그랬습니다."
-서구인들보다 자국민들에게 인색한 평가 받아.
지난 2000년 노벨위원회가 그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민주주의의 옹호자로서 그가 겪은 시련과, 50년에 걸친 남북의 불신과 적대행위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공적을 인정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를 지지하는 서구인들 사이에서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추앙받고 있지만, 오히려 자국민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색한 평판을 받은 편이다.
그는 북한 정권을 감싼다거나, 집권 기간 동안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전라도 출신 관료들을 많이 발탁해 역차별을 했다는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선생님의 서거를 전하는 이곳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선생님이 가신 지금 저를 매우 부끄럽게 합니다. 저도 사실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이 서거하자마자 그동안 선생님을 줄기차게 비판해 왔던 보수언론과 여당에서조차 선생님을 극찬하는 것을 보고 저는 지금 어안이 벙벙합니다. 선생님의 족적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이제야 알기 시작하는 걸까요. 언젠가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그때야 선생님이 우리 민족을 위해 얼마나 큰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선생님.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선생님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우리민족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십시오. 저는 이제 눈물을 닦으며 선생님이 살았던 험난한 이 시기에 선생님과 함께 한반도에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한 인간으로서 대단한 긍지를 지니며 선생님을 이제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려 합니다.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09년 광복 64주년 팔월 열여드레. 황숙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