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18 15:01

도망자

조회 수 165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도망자


                                                                                                                           이 월란





검색 리스트에 오른지는 오래 되었다. 위험한 수배자가 된 지도 오래 되었다. 잡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도 저 끈질긴 미행을 따돌릴 재간은 없다. 잠시 열이 올라 누웠어도 거룩한 저승사자의 가운을 입고 나의 침상에 걸터 앉아 있다. 누워서 거저 먹을 생각은 말라고. 모기장 속에 모기를 피하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있었던 것처럼 그들이 쳐 놓은 그물망 속에 내가 들어 있다. 범인으로 지목되어 빈 속에 들어가 수박통처럼 세상을 부풀어, 죄의 온상같은 피밭을 울며 뛰쳐 나온 직후로 길이 닳도록 오가는 일상의 골목마다 그들은 철저히 지키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수비하듯 그들의 눈알이 소리없이 구른다. 헉헉대는 그들의 허리춤에 흉기는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초성능의 업그레이드 된 카빈총 한자루 쯤은 숨기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 대 맞고 쓰러지면 한동안 몽롱해질 곤봉 하나 눈앞에서 달랑이고 있고 생의 회로는 평행선처럼 따라붙는 수색자를 결코 따돌리지 못한다. 탈주자는 늘 조준되어 있어 사정거리를 벗어나지도 못한다. 지하의 반역자들은 어디에나 둥지를 틀고 있는 것처럼 그만 걷어차 버리라고 찝쩍이는 불온삐라가 가끔 날아들지만 누구 하나 그럴 엄두를 내진 못한다. 쉽게 들어온 것처럼 그리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아니란 걸 은연중에 터득했다. 끈질긴 추격전은 그 날의 클라이맥스를 충실히 연출해 내고, 언제고 곧 결투가 벌어질 듯, 손에 닿을 듯, 효과음 하나 없이, 삶이 쫓아오고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96 옥양목과 어머니 / 김 원 각 泌縡 2020.05.09 224
895 사람, 꽃 핀다 이월란 2008.05.04 225
894 불꽃 나무 강민경 2015.12.26 225
893 시조 빈터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3.07 225
892 봄이 오는 소리 유성룡 2006.02.25 226
891 혼돈(混沌) 신 영 2008.05.27 226
890 대나무 마디 성백군 2013.06.26 226
889 미리준비하지 않으면 강민경 2016.01.26 226
888 수필 메아리 file 작은나무 2019.02.21 226
887 정용진 시인의 한시 정용진 2019.05.17 226
886 시조 한민족독도사관 연구소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3.31 226
885 밤비 하늘호수 2016.06.10 227
884 어머니의 소망 채영선 2017.05.11 227
883 가을 퇴고 / 성백군 하늘호수 2018.10.19 227
882 또 하나의 고별 전재욱 2004.12.27 228
881 네가 올까 유성룡 2006.03.28 228
880 귀향 강민경 2006.05.29 228
879 아픔이 올 때에 김사빈 2007.09.11 228
878 가시내 이월란 2008.03.13 228
877 기타 김우영의 한국어이야기 9 변하는 말과 꼬리아 김우영 2014.06.18 228
Board Pagination Prev 1 ...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