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빈터/강민경
내가 갓 태어나
화려한 빈터 하나를 채웁니다
첫 웃음을 배운 백일을 맞아
아비와 어미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르는 일
한순간이라도 떨어질 수 없는
혈육이라는 질긴 인연의 시작입니다
유치원으로부터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나면
반듯한 사회인으로 네 자리 찾아가라며
화살표 없는 길에 세워진 때부터
온실 밖의 나는 혼자, 홀가분해진
세상이 얼마나 외롭고 팍팍한가를
배우는 일
결혼하고 자식 낳아 외로움을
지우는 동안 보이지 않던
내 부모님의 화려한 빈터가
내게도 있음을 깨닫는 일생을 배웁니다
빈손으로 시작하여 영원으로 이어질
이 화려한 빈터 중에 하나
나로부터 시작하고 내 뒤까지
펼쳐질 끝 없는
내일은 공평한 질서 가운데
존재하는
나의 자족이며 진실입니다
무슨 무슨 비밀이라도
순리의 이치에 합한
자연스러운
응답에 유력한 개개인으로
채워진 빈터라는 것을
확인하는 평생을 깨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