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꽃과 도둑 벌과 나 / 성백군
산길 양 가에
초롱꽃 주렁주렁
“아직 안 피었나, 어디 보자” 하였더니
“대낮에 초롱이 불 켜는 것 봤니?”
“해 넘어갈 때까지 기다리라” 하며
꽃잎 꼭 다물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설레발을 치는데
성질 급한 꿀벌
더는 못 기다리겠다며
꽃봉오리 궁둥이를 물어뜯어 구멍을 내고는
주둥이를 들이밀고
쭉쭉
충매(蟲媒)*는 안 하고 꿀만 빼먹는다
“저놈 좀 봐, 도둑이 따로 없네!” 하다가
방관하며 못 말리는 나도 한 패거리가 아닌가 싶어
머쓱 하는데
중천에 해, 알고도 모르는 채 씨익 웃는다
어느새 볕에 그을리는
내 얼굴
빨갛게, 부끄럽다 못해 까맣게 탔네
*충매(蟲媒) : 곤충이 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아서 생식 작용을 도우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