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3 15:04

겨울나무의 추도예배

조회 수 36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겨울나무의 추도예배 / 성백군
                                                                                      


북가주 길거리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습니다
바람 불면 떼 지어 몰려다니며 웅성거리고
밟으면 바스락거리며 일어서 보지만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이미 죽은 목숨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싱싱했던 초년의 초록도
고왔던 노년의 단풍도, 한때,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남은 건 헐벗은 까만 몸뚱이뿐
항복인지 항거인지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치켜들고 동장군 앞에 섰습니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오면서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도
겨울 앞에 서 보니 다 헛산 삶 같아서      
한해의 몇 안 남은 날 붙잡고 회한에 젖습니다
성공한 일, 실패한 일, 화려한 것, 구질구질한 것들 모두
때가 되면 저절로 지나가고 말 것을,
지나가면 그만인 것들에게 왜 그리 집착했는지
후회해 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인 줄 알지만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주름지고 서리 내리도록 수고한 몸에게 너무 미안해
늦깎이 철든 아이의 개똥 철학처럼
적당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회계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가랑잎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찬양하는 박수소리로 새겨듣는 착한 겨울나무가
마지막 잎사귀 몇 붙잡고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찬바람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빨갛게 익어가든 단풍 한 잎, 더디어 은혜를 알았는지
동짓달 지는 해를 빨아들이며
이제는 바람 불지 않아도 감사하다며
시나브로 떨어집니다. 떨어져 편안히 쌓입니다

        570 - 12132013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1 죽고 싶도록 유성룡 2008.02.27 205
390 죽은 나무와 새와 나 강민경 2014.05.19 465
389 죽을 것 같이 그리운... James 2007.10.12 177
388 준비 김사빈 2005.12.05 277
387 시조 줄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11.17 92
386 줄어드는 봄날 새벽 배미순 2007.04.20 247
385 중국 김영희 수필 작품해설 김우영 2011.06.18 1197
384 중국 바로알기 김우영 2013.03.07 954
383 중년의 가슴에 2월이 오면-이채 오연희 2016.02.01 623
382 시조 중심(中心)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2.27 115
381 시조 중심(中心)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3.02 197
380 쥐 잡아라 / 성백군 하늘호수 2017.07.27 183
379 증언------------구시대의 마지막 여인 이월란 2008.04.24 265
378 지금 가장 추운 그곳에서 떨고 있는 그대여 이승하 2008.02.08 567
377 시조 지금 여기의 나(我)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3.27 147
376 시조 지금은 생리불순, 그러나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3.15 106
375 지나간 자리는 슬프다 강민경 2010.02.20 768
374 시조 지는 꽃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1.29 128
373 지는 꽃잎들이 강민경 2016.03.26 281
372 시조 지문指紋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2.06 83
Board Pagination Prev 1 ...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