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5.05.15 23:14

찍소 아줌마

조회 수 61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찍소 아줌마

NaCl


"Have a good day~!" (좋은 하루 되세요) 이 말은 결코 가게 주인의 인사말이 아니었다. 우리 가게, **옷수선과 거래하는 **세탁소 주인 아줌마는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분이다. 오늘도 옷을 찾으러 갔다가 어떤 손님이 그 아줌마에게 정다운 인사를 건냈는데 그 아줌마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반면 주인 아저씨는 애교도 있고 수다가 좀 있으신 분이다. 여수랑은 살아도 찍소랑은 못 산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말 많은 아저씨가 찍소인 그 아줌마와 어떻게 살까 궁금했다. 상대방이 뭐라고 말하면 도통 반응이 없으셔서 아마도 아저씨가 답답증에 걸릴 거라 생각했다.

어느날 컴맹인 아저씨가 인터넷이 안 된다며 나를 집으로 호출을 했다. 그날 저녁 나는 그 아줌마의 다른 얼굴을 보았다. 가게에서는 손님에게 말 한마디 안 하던 아줌마가 집에선 아저씨에게 말풍선을 마구 터뜨렸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을 안하고 답답해서 어찌 살까 했는데 낮 동안 입에 지퍼로 채워 스트래스, 짜증 같은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가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다 쏟아 부으시는 것이다. 아줌마는 말 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시는 분이다. 그 스타일이 통했을까? 그 곳 단골들은 아줌마가 반응이 없어도 그러려니하고 깨끗하게 잘 세탁이 된 결과물을 통해 아줌마를 신뢰하는 것 같다.

표정도 없고 대꾸도 안 하지만 항상 변함없고 성실한 삶의 내용을 알아 챈 손님들은 아줌마의 침묵 속에서 다정한 인사 못지 않은 묵직한 인사를 느끼는 것은 아닐까. 서구사회의 영향으로 마음은 꼭 표현해야 안다고들 말하지만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촉이 있음을 안다. 육감이라고도 하고 촉이라고도 하는 그런 감각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30 기타 공전과 자전 / 펌글/ 박영숙영 박영숙영 2020.12.13 229
1929 공존이란?/강민경 강민경 2018.08.25 115
1928 공통 분모 김사비나 2013.04.24 148
1927 과거와 현재를 잇는 메타포의 세월, 그 정체 -최석봉 시집 <하얀 강> 문인귀 2004.10.08 864
1926 과수(果樹)의 아픔 성백군 2008.10.21 212
1925 곽상희 8월 서신 - ‘뉴욕의 까치발소리’ 미주문협 2017.08.24 194
1924 기타 곽상희7월서신-잎새 하나 미주문협 2019.07.16 861
1923 관계와 교제 하늘호수 2017.04.13 213
1922 광녀(狂女) 이월란 2008.02.26 162
1921 광야(廣野) / 성백군 하늘호수 2023.12.05 197
1920 광야에 핀 꽃 / 필제 김원각 泌縡 2019.06.07 145
1919 괜한 염려 / 성백군 1 하늘호수 2021.11.09 113
1918 구겨진 인생 / 성백군 2 하늘호수 2021.10.19 82
1917 구구단 1 file 유진왕 2021.07.27 99
1916 구로 재래시장 골목길에/강민경 강민경 2018.08.02 303
1915 구로동 재래시장 매미들 2 하늘호수 2016.10.20 290
1914 구름의 득도 하늘호수 2016.08.24 178
1913 구름의 속성 강민경 2017.04.13 289
1912 구심(求心) 유성룡 2007.06.06 214
1911 구자애의 시 백남규 2013.08.22 319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