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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마스테  




1

"이형, 한글 백일장 행사 거기 워떻게 가는 겨?"
"사나모니카에서 출발이지? 10번 타고 쭉- 묻지도 말고 오다가, 5번 놀스를 타고 쭉- 묻지도 말고 오다가, 그리피스파크에서 내려서..."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는 덕분에 시키는 대로, 누구한테 묻지도 않고 차를 냅다 몰았다.
그런데... 후리웨이를 달리며 손 폰으로 건 전화였는데, 어떻게, 누구에게 묻는가에 대한 의문은 잊기로 했다. 역시 문협의 일꾼답게 일찍부터 현장을 지키는 이용우형이기에, 이토록 세세한 설명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헤맨 건 순전히 내가 모자란 탓이다. 후리웨이에서 내리면 나타나는 일방통행 설명을, 이형이 빼먹었나 보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쭉- 묻지도 말고 오라'는 이형의 명령을 어기고 물어물어 행사장을 찾았다.
영어는 숏다리지, 대답해주는 사람은 너무 친절하여 롱다리지, 오월의 엘에이는 더웠다. 참 땀이 났다. 그래서 더 반가웠던 모양이다. 문우들 얼굴이.
점심을 먹을 때도 이형의 얼굴은 없었다. 워낙 타고난 일꾼이니 어디서 작업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면 변장하고 선수로 출전 중이거나.
윌셔에 있는 산 선배 아들 결혼식 시간 때문에 행사 중간에서 슬그머니 빠지려는데, 땀나게 했던 이형이 그때서야 차를 몰고 행사장에 나타난다. 그린이 핑계다. 전화 걸 때 현장에 없었느냐는 건 '쭉- 묻지도 말고...'가 생각나서 묻지 않았다.

2

시작은 미약했으나....라는 말이 떠오른다. 백일장에 참여한 사람들을 보며 느낀 감정이다. 또랑또랑한 눈망울의 아이와, 코밑 수염이 숭숭난 청소년과, 잊었던 글 쓰기에 즐거워하는 아낙들. 누구든, 무엇엔가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행여 누가 컨닝이라도 할세라 한 손으로 쓴 것을 가리고 몰두하는 아이.
양미간을 잔뜩 모은 채 알맞은 단어를 찾아내려는 모습.
그 모습들은 눈부신 날 우리들도 가슴 설레며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정말 크리스탈팍의 신명난 초록도 눈부셨다. 출전한 이들과 기획자인 미주문협회원들은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놀 일 많은 미국에서 애써 백일장에 참여한 것으로도, 한글 사랑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그렇다.
삐뚤삐뚤 써진 글씨부터 많이 써 본 글씨까지, 심사하는 문우 어깨 너머로 본 원고에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한다. 어느 날, 그들 중 '선배님' 하고 부르는 사람이 나오던가, 좋은 글을 써 모두에게 기쁨을 준다는 상상이 신난다.

한국은 백일장 천국이다. 그 숫자를 센다는 것은 무의미 할 정도다. 백일장에 관한 한 한국은 역사와 전통과, 외연이 엄청 넓다. 언론사와 공동으로, 제대로 시작한 엘에이 제 1회 한글 백일장의 끝은 창대 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런 생각이 들자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이 씨앗으로 보였다.

3

행사장에서 챙겨준 미주문협 봄호를 들고 이튿날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미국을 올 때 운기조식의 일환으로 마셨던 술을 이번에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기러기 아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니 당연하다. 그 대신 한국가면 바빠 밀어 놓기 십상인 봄호를 사그리, 깡그리, 모조리 읽었다.

편집 후기까지 살뜰이 읽고 나니 눈이 십리는 들어갔다. 비행기 좌석 개인의 침침한 조명 덕분이다. 책을 덮으며 갑자기 술 생각이 났다. 시 작품평을 해 주신 이승하 교수의 명정(酩酊)이란 단어 때문이다. '오맹우의 두부'를 맛있게 먹어주신 김종회 선생님이 만들어 준 술자리가 생각났다. 이성열 형이 한국왔다고 만든, 6시간 밖에 안된 짧은 술자리 기억은 선명하다.

모두 자고 있는데 당직을 서는 스튜어디스에게 술을 청했다. 맥주와 위스키 두 잔을.
'명정'이란 단어에는 술'주'자가, 두 개 들어 있어 그랬다.
'쥐'를 잡다가, '핸디맨'이 되는 꿈을 꾸다, 갈증이 난 '보바'를 마시니 안 들렸던 '귀머거리가' 뚫린다. 자다, 깨다 도착한 한국엔 '우기'도 아닌데 비가 오락가락한다.





2004-05-20 12:24:24 / 218.48.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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