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날선 빛 / 성백군
어둠 속
유령 같은 것이
가시나무 울타리에 걸려 있다
그냥 지나치기가 의뭉스러워 다가가 보았더니
흰 비닐봉지가 바람을 잔뜩 먹음고 있다
뉘 집 울을 넘어
탈출한 걸까, 쫓겨난 걸까
한때는 주부 손에 이끌리어
장바닥을 휩쓸고 다니면서 영광을 누렸을 텐데
그 영화도 잠시, 짐을 다 비우고 할 일이 없어지니
사랑도 떠나 가드라며
사십 대 실직자처럼 버럭버럭 고함을 지른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교과서 말만 믿고 큰 소리치며 뛰쳐나온 비닐봉지
그 기세는 어디로 가고
품 안에 안겼던 애처로운 눈망울들이
옆구리를 가시처럼 파고들어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조금씩 조금씩 제 몸을 비틀며
주변을 살핀다
이제는
자기가 흔해빠진 비닐봉지임을 알았는지
제 몸 찢어지는 것도 개의치 않으며
세상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펄럭거린다
날선 흰빛이 어둠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진다
634 - 10112014
-
슬픈 인심
-
김우영의 "세상 이야기" (1)생즉사 사즉생( 生卽死 死卽生)
-
담쟁이에 길을 묻다
-
12월의 결단
-
별 하나 받았다고
-
일상은 아름다워
-
촛불
-
우리가 문학을 하는 이유
-
엉뚱한 가족
-
어둠 속 날선 빛
-
얼룩의 소리
-
김우영 작가의 (문화산책]물길 막는 낙엽은 되지 말아야
-
10월의 제단(祭檀)
-
숙면(熟眠)
-
가을비
-
군밤에서 싹이 났다고
-
내가 세상의 문이다
-
가을 밤송이
-
그늘의 탈출
-
비굴이라 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