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20 14:01

바람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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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 길가에 피어난 꽃을 보고 가슴 한구석이 시린 것은, 몸저려 전율하고 있는 나무를 보고 마음이 아린 것은 도난 당한 나의 말간 영혼이 피어난 자국을 보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바람을 맞는 일, 형체 없이 훑고 지나가지만 맑은 영혼 한줌씩 앗아가는 바람이 저지른 일 앞에 드러난 눈부신 상흔을 보기 때문이다. 만신창이로 해어져 가던 영혼들을 포획해 저렇게 피워내는 바람의 도적을 만났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책임질 수 있나, 나조차 비어있음을, 바람이 불 때마다 너와 나의 환한 영혼이 도난당하고 있었음에, 바람이 앗아간 맑은 영혼의 울음 소리가 바람소리였다는 것을, 그렇게 앗아간 넋으로 철철이 나무 옷을 갈아입히고 저 화려한 꽃들을 피워내는 것임을, 그래서 맑은 영혼의 서리맞은 빈자리가 아파서 꽃을, 나무를, 하늘을, 여백마다 그리고, 쓰고, 꺾고, 가꾸고, 물주고 하는 우리들이란 것을, 저 화려한 빛덩이에 눈을 맞추고 싶어하는 것임을, 빼앗긴 영혼을 못잊어, 못잊어 어느 구석에 몸을 숨겨도 그립지 않은 것이 없음을



어젯밤 도난당한 정령 한 줌 아침햇살 아래 한덩이 꽃으로 피어난 것을 보지 않았나. 날개 퍼덕이는 나비가 되어 국경 너머로 날아감을 보지 못했나. 홍등가의 몸을 파는 여인네처럼 생의 지문을 팔아넘기고 영혼을 저당 잡혀 꽃잎 속에, 나무밑둥 아래 격리수용된 영혼들이 설핏, 홀연 그리워 그 속에 몸을 쳐박고 싶어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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