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가 풀리니

2007.10.19 08:31

배희경 조회 수:45 추천:2


            수수께끼가 풀리니                           2005년

   나는 이 글을 써놓고 꼭 본인에게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가 승낙하지 않으면 이 글은 발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를 관찰한 글은 그로서는 너무나 사적이라고 생각하겠기에 십 중 팔 구 No라 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는 이해 할 수 없도록 남과 다르기에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글이 내 글 철에 그대로 파 묻혀 있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쓰고 있다.

    지난봄에 나는 그가 가르치는 초보 computer class에 등록했다. 오십대를 약간 넘었을 남자 선생님이다. 내 막내아들과 비슷한 나이의 장년이며, 약간은 미소 띤듯한 깨끗한 인상에 첫눈에 호감이 갔다.

   첫 시간이다. 켬퓨터에 대한 기계의 기초부터 설명을 듣는다. 달나라를 답사하듯 신기했고, 한편 괴물의 일각을 만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거구나, 그렇구나 감탄하며 내 귀는 당나귀 귀가 되었다. 새롭지 않은 단어란 하나도 없었고, 생소한 단어들을 익히려고 가진 애를 썼다.

   이틀 째 수업이다. 밖에 어제 본 선생님이 나타났다. 머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는 허공을 쳐다보며 내 인사에 답하지 않았다. 좀 의아했다. 늙은 사람이라 안중에 없는 걸까. 아니면 내가 하는 인사를 보지 못했단 말인가.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의 동작 하나 말 한마디를 놓칠세라 보고 들었다. 그러나 알아들은 것은 많지 않았고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복잡한 기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는 내가 과학자나 된 양 대견했으나 그 지식 습득에는 전연 자신이 없었다.

   사흘째는 한 시간 일찍 갔다. 선생님의 도움을 먼저 받으려면 앞에 앉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차 속에서 갖고 온 신문도 뒤적이고, 수첩도 정리하다가 삼십 분 전에 교실 문 앞에 가서 섰다. 사십 명의 학생의 반은 나이 든 사람들이다. 물론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나지만 모두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흥분에 열이 올라 있다. 먼저 가야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날도 걸어오는 선생님께 반갑게 인사했으나 여전히 선생님은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 째 날이다. 전과 같이 인사를 했다. 어제와는 달리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다. 그랬는데도 못 본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아무 인사도 없이 묵묵히 서 있다. 그리고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어주자 무언극을 하는 사람들이다. 침묵 속에서 줄을 따라 들어가고 있다. 무슨 학생들이야. 왜 인사를 안 하는 거지. 참 내 생애 이런 일은 처음이네. 말문만 떼면 아이들께 가르치는 것이 인사가 아니던가. 일은 잘 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됐다고 생각했다. 인사를 받지 않는 선생님, 인사를 하지 않는 학생들,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수업은 점점 미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상하게 확실하게 설명해 주지만 얼마 후면 뒤죽박죽이 되어있다. 선생님은 항상 먼저 배운 것을 짚고 넘어가지만 금세 헛갈리는 현상은 나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이렇게도 머리가 나빴던가. 개탄한다.
   컴퓨터를 설치해 준 아들 친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남의 낭패스런 옆모습을 엿보는 재미였다. 그는 Adult School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사람이다. 이렇게 말했다. “노인들은 왼쪽 고개로 설명을 듣다가 고개가 오른 쪽으로 돌아가는 순간 잊어버리더라 구요”라고.  그게 남의 일이지 내 일이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웃었던 일이 바로 내 일이었다.

   다섯 번째 날이다. 새로 등록한 한 교회의 사모는 우리들도 다 들리게 큰 소리로 인사하고 있었다. 내 눈은 온통 선생님께 집중되었으나 혹시나 가 역시나였다. 여전히 딴전이었다. 아마 그 사모도 매번 인사하다가 오늘은 특별히 소리를 지른 모양이다. 그날은 사모가 전부를 위해 인사한 것 같아서 나는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사모 외에 인사하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내 불가사의는 점점 깊어 갔다.

   선생님은 미소 띤 얼굴로 열심히 강의했다. 자상하고도 확실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그 친절은 절대 도를 넘지 않았지만, 인사를 받지 않는 사람치고는 과분한 것이었다. 그는 사십 명 중 한 학생도 뒤에 남기지 않았다. 한명 한명의 책상을 돌며 틀린 것을 지적하고 고쳐준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보통 열정이 아니다. 다음 순간에 잊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 순간의 자기 의무는 그렇게 다해 갔다. 그의 가르침의 사명감은 상상을 넘었다.

   여섯 번째 날, 나는 선생님을 보지 않고 고개만 숙였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 되겠기에 그렇게 했다. 물론 반응이 있을 리 없었다. 그때는 이미 나도 답례를 바라지 않았고 세상엔 이상한 일도 다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치원생은 새로운 배움이 신기하기만 했고, 신기하고 재미있을수록 미궁에서 헤맸고, 헤매 일수록 더 오기가 생겼다. 최소한의 컴맹(盲)에서는 벗어나야 되겠다는 오기다. 한 학기는 오리무중 속에서 끝났고, 끝나는 날 조그만 선물로 그간의 노고에 보답했다.  다른 학생들도 얼마간의 돈을 걷어서 한 학기의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중급반 학기는 e-mail로 시작되었다. 그 학기의 첫 시간이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선생님은 정색으로 말문을 떼었다. 보답인사를 하지 말라는 엄명이었다. 선생에 대한 학생들의 고마움의  표시인줄은 알고 있지만, 다음에는 절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선언이다. 그래야 떳떳하고, 안전하게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단다. 백번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열심히 가르쳐 준 선생에 대한 학생들의 감사 표시를 이렇게 전쟁을 선포하듯 딱 잘라 거절해야 한단 말인가. 당혹스럽고 쑥스러웠다. 그리고 별것도 아닌 것을 청렴도 지나치네 하는 저항도 있었다. 그 후 나는 같은 학교 영어 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배에게 물었다. 그녀의 대답이었다. 학교에서는 오불까지 학생들이 걷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그것을 이 선생은 모르고 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런데 왜? 내 불가사의는 또 하나 늘었다.

   상급반에서는 하고 싶었던 과목이어서 약간은 터득이 빨라졌고, Attachment도 그럭저럭 해 냈다. 남들이 박사학위 따듯 세 학기를 천신만고 끝에 마치고, 다시 내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 컴퓨터 지식은 지금껏 해 온 세 학기를 다시 더 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이상 더 깊은 함정에서 헤매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절대 새로운 것은 시도하지 않는다. 덧에 걸린 짐승같이 발버둥치기 싫어서다.

   세 학기가 끝날 때까지 여전히 사모의 인사는 계속되었고, 인사하는 학생과 인사 안 받는 선생과의 유언, 무언극은 그대로 계속되었다. 천 여 명이나 되는 신도의 이름을 외우고 일일이 인사로 맞는다고 듣고 있는 사모는 끝까지 인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엿새 만에 인사를 포기한 나는, 사(師)모와 범(凡)모라는 확실한 차를 그으며 성인학교 교문을 빠져나왔다.
  
   수업도 끝났다. 나는 e-mail시간에서 배운  e-mail로 이제까지 가졌던 의문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간의 수고에 대한 인사와 돌려서 나의 궁금증도 물었다. 드디어 선생의 회답을 얻었다. 여기 지금까지의 수수께끼가 풀린 선생님의 e-mail을 소개한다.

   -위는 생략-
<이해하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수업시간만 지나면 Adult School 에 나오는 분들과 남남으로 생각하고, 길거리에서 지나도 그러합니다. ‘저분이 내게서 컴퓨터를 배웠다’는 말은 하지 않지요. 그러려면 제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 낫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굳이 얼굴을 익힌다거나 이름을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Adult School에 나오시는 분이 가장 편안하게 배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수업시간만 지나면 저보다 다 똑똑하시고 훌륭하신 분들이니까요. 저의 그러한 생각이나 노력이 다른 분들에게는 때로 꼬장꼬장하게 비쳐질 것도 같지요. 아무튼 그 동안 제 클래스에 와서 배워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나도 답장을 띠었다.
<답장 고맙습니다. 오늘 나는 선생님에 대한 불가하의가 풀려 아주 기쁩니다. 서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유대를 갖지 않으려고 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현명한 판단인지요. 짧게 짧게 끝나 사라지는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는 노력을 한다는 것은 정말 바보스런 일이지요.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많이 이상했거든요. 어쩌면 인사도 안 받으실까 하면서 말이에요. 미안해요. 아주 아주 미안해요. 어찌 남을 알까하는 말은 참 맞는 말이지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니깐요. 선생님의 화상은 ‘선생님’이란 인격체로 내 머리 속에 확고히 완성되었어요. 고마워요.>

   후에 안 일이지만 거기의 태반의 학생들은 이차 삼차 재수생이라 했다. 그래서 이미 선생님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황우석교수 사건으로 어수선 해 진 세상에, 대 같이 곧고, 가르침을 사명으로 알고, 슬기롭게 살아가는 우리의 젊은 보배가 미국 땅 한 구석에 있었다는 사실은 뜻밖의 기쁨이었다. 학교에서 허용하는 것이라 해도 조금의 꺼끄러움도 싫은 그는 “독야청청”의 옛 시조 말 속 그대로의 사람이었다.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니 세상이 밝아졌다. 기쁘다.

   -추가 글-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에게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인 말대로 너무 꼬장꼬장한 성격이기에 그랬다. 그러나 마지막 글을 맺으면서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59 LA의 삼월 하늘 아래서 이용애 2007.10.22 51
4258 노을 이용애 2007.10.22 50
4257 민수의 편지 윤금숙 2007.10.22 53
4256 반쪽 달 이용애 2007.10.22 49
4255 가을 시화전/해외문학 김영교 2007.10.22 53
4254 태평양 한 쪽 끝에 서서 이용애 2007.10.22 50
4253 폭포 앞에서 / 석정희 석정희 2007.10.22 49
4252 아이들이 없는 학교 강성재 2007.10.21 57
4251 새벽 전람회 지희선 2007.10.21 41
4250 최장로의 죽음 이성열 2007.10.20 44
4249 풍선 이용애 2007.10.19 59
4248 할머니와 수탉 이용애 2007.10.19 57
4247 LA의 새벽 하늘 이용애 2007.10.19 47
» 수수께끼가 풀리니 배희경 2007.10.19 45
4245 저녁 식탁에 담긴 행복 고현혜(타냐) 2007.10.19 48
4244 결혼 고현혜(타냐) 2007.10.18 44
4243 가을산 강성재 2007.10.18 51
4242 고향 사람들 강성재 2007.10.18 43
4241 발자국 이용애 2007.10.18 49
4240 가지치기 이용애 2007.10.18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