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2009.01.12 15:42
“엄마와 함께”
일 년쯤 전, 신문에서 어느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눈물겨운 편지를 읽었다. 대문짝만하게 실린 그 편지는 엄마가 딸에게 ‘지난날들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내용이었다.
처음 이민 와서 부모는 돈 버느라 자녀들을 학교에, 학원에 맡기고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밤낮으로 하면서 아이들과의 시간을 갖지 못한 엄마가 비뚤어져 부모와 등지고 지내는 딸에게 보내는 간절한 호소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있지 못하고 늘 돈 벌려 다녔고, 집에 와서는 피곤하니 같이 놀아주는 시간도 갖지 못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돈으로만 해결하려했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러한 엄마의 모습이 싫어 딸을 결국 집을 나가게 되었고, 혼자서 공부하며 지냈다. 결혼을 한 지금까지 엄마와의 연락도 끊고 지내며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너무 가슴 아픈 엄마는 딸에게 여러 차례 말해도 안 되니 나중에는 매스컴의 힘을 빌리려 신문에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그 편지 이후에 딸이 연락하고 엄마와 화해했다는 기사는 지금까지 읽어보지 못했다.
편지에서 엄마는 “나는 너희들을 위해 힘든 모든 것도 참고 돈 벌려 다녔다”고 말하며, “너희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었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내 마음이었다.”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딸은 자신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돈 버는 대만 온 신경을 쓰는 것 같은 부모들이 싫었나 보았다. 돈이 없어도 좋으니 엄마와 함께 있고 싶었고, 가난해도 같이 어렵게 생활하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했던 딸이었다. 가난하게 살아 자녀들이 학비를 마련하지 못하여 애쓰며, 그럴 때마다 서로가 위로하고 작은 힘을 모으며 돈을 어렵게 마련한 이모네를 너무나 부러워했던 딸이라고 했다.
미국에 와서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신문에서 읽었다. 한국에서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에게 왜 미국에 왔느냐고 물으면 90%이상이 “자녀 교육 때문에”라고 대답한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오고 난 후에는 아이들은 학원에 보내놓고, 부모는 모두 나가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 돈을 벌기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기도 하고. 처음 그 기사를 읽고 가슴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가까이에서 알고 있는 어느 분도 그랬다. 처음 미국에 와서 두 부부가 정말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길지 않은 이민생활에 큰 집을 두 개나 장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큰 아들의 방황이 시작되더니 급기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곁길로 나갔다. 술, 담배는 물론, 마약을 비롯하여 무단가출까지. 결국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며 집안에만 있고 난 다음 서서히 아들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 20년쯤 전인가.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 한편을 본적이 있다. 자수성가한 어떤 아버지가 늙고 병들어 자기의 그 많은 제산을 물려주려 했던 외아들과 손자를 사고로 동시에 잃었다. 며느리에게 그 제산을 물려주려 했지만, 그녀는 살면서 돈이 결코 행복의 전부가 아니었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주라며, 모든 것을 마다하고 집을 나갔다. 사방으로 연락하여 제산을 상속받을 친척을 찾았다. 많은 노력 끝에 겨우 찾은 상속자인 먼 친척은 수녀였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제산을 물려줄 사람이 없자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는 그동안 자신의 온 생을 바쳐 모아온 돈의 무력함을 느끼며 병상에서 허탈하게 껄껄 웃는 모습이 가슴 아리게 생각난다.
우리는 요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가는 처음 우리가 미국에 왔을 때보다 4-5배나 올랐고, 나의 수입은 여전히 미미하다. 처음에는 수입이 약했어도 한국에서 오는 돈으로 어느 정도 꾸려나갔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어렵게 되었다. 집세 부담에서 차 유지비, 부쩍 오른 식품비에서 아이가 커가니 들어가는 교육비. 처음에는 어리니까 싸구려 옷을 사줘도 말이 없던 딸이 이제는 컸다고 가끔씩 ‘유명 메이커’타령을 할 때는 사주지 못하는 마음이 퍽 아프다.
처음 오자마자 나도 일선으로 들어가서 아이를 애프터 스쿨에 맡기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지금쯤은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할 텐대 라는 아쉬움이 많다. 그저 아아하나 잘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학원한번 보내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붙들고 있었던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 나도 부모이니 다른 아이들이 갖는 것을 못 가져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 아프고, 아이가 혹시 친구들 사이에 기라도 죽을까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좀 넉넉하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 미안함.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딸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부자를 부러워하고, 좋은 옷, 넉넉한 살림, 넓은 집을 보면 늘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이니, 엄마인 내 마음이 더 아프다.
그런 딸을 보니 가슴 한 켠이 아릿하기에, “나도 오자마자 바로 풀타임으로 하는 적당한 일을 잡았으면 지금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좀 더 넓은 집에서, 그리고 좋은 것을 너에게 해주며 살 수 있었을 것인데……. 차라리 너를 애프터 스쿨에 맡기고라도 그럴걸 그랬지?”라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자 딸아이가, “엄마, 그러지 않고 나와 함께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난 엄마가 날 애프터 스쿨에 맡기고 돈 벌러 가지 않고, 매일 엄마가 나 픽업하고, 집에서도 나와 함께 있어줘서 정말 행복하고 감사해요.”라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내 생각과는 반대의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난 나중에 부자가 되어 내 아이에게는 이것도 해줘야지, 저것도 해 줄 거야.”라고 해서 얼마나 부러웠으면 저럴까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역시 아이에게 돈보다는 엄마구나.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순간순간 잊고 지내는 부분을 다시 확인하고 가슴 찡했다.
그래, 너의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온 나에게 큰 힘이 되고, 결코 잘못 살지 않았다는 뿌듯함을 안겨주는구나.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있어서 난 참 행복해.” 딸이 좋아하는 순두부찌개를 하며 소금 간을 맞추어 한 숟가락 맛보고 있는데 딸이 등 뒤에서 나를 꼭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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