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風葬)
2007.10.31 04:08
빵집이 있는 상가 주차장에 새들이 날아든다
시동 건 자동차가 후진으로 빵조각 쪼던 새를 밟고
빈자리 찾아 들어오던 자동차 그 몸을 눌러버리더니
더위로 깃털만 남은 형체 옷 벗고 지상에 누웠다
파열된 내장에 앉아 배 채우기 바쁜 파리 떼, 성큼
다가가자 문상객 대하듯 머뭇머뭇 맴돌다 앉아 이내
육신 더듬거리며 단 벌 새털로 수의(壽衣)를 잰다
놀라 움찔하게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리에 묶인 끈
누군가 어린 시절부터 옭아매 삶을 잡아둔 흔적이다
몸부림으로 다리의 혈관 눌러 얼마나 절뚝거렸을까
흥겹게 들리는 새소리가 통증이라는 걸 몰랐겠지
옆자리 있던 자동차가 빠져나가며 바람이 일자
매캐한 살 냄새가 들숨으로 새(鳥) 영혼이 들어온다
울먹이던 멍은 심장에 닿아 평온한 안식이 된다
시골집 골목에서 들어설 때의 컹컹거리던 황구
어미 밥그릇까지 뺏는 새끼들 목소리 굵어질 때
동네 형들이 질질 끌고 육교 아래 떨어뜨렸던 목줄
흐르는 냇물 이끼 낀 돌 틈에 말라버린 붉은 흔적
순종 끝날 때까지 인간의 배반에 몇 번이고 몸 떨던
그을린 육신 찢으며 개 웃음 흘리던 강인한 치아
악물고 살아도 가난 풀지 못해 욕지거리만 쏟아내고
버들가지 잎처럼 늘어난 빚더미는 여름 찌르는 매미
풍장(風葬) 바라보는 시베리아 툰드라 원주민의 눈
눈에 눈물도 자라면 넘쳐흐른다는 걸 알지 못했던
끈 묶여 몇 번을 주저앉아 밥그릇 바라보며 떨던 어깨
조문하려고 차들이 파리처럼 달려들어 칼질 한다
한 생명 마지막 뜨거움 토하여 세상이 덥다는 것을
파리 떼 달려들어도 지나는 사람들은 손 저을 뿐
빵집 안에 줄 서 재잘거리는 어린애들 입에 핀 꽃
http://webzine.munjang.or.kr/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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