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봐야 할 “북한 굶주림”

2007.12.13 10:23

정찬열 조회 수:2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맘때면 마을의 어려운 이웃에게 쌀 몇 됫박이라도 보내 송편을 빚도록 했던, 깍쟁이 할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할머니네는 큰 부자는 아니지만 동네에서 밥술이나 뜨는 측에 들었다. 그렇지만 너무 인색했던 탓에 '깍쟁이할매'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분이 어느 추석에 형편이 힘든 이웃집에 들렸는데 마침 불을 때고 있어, 무슨 음식을 만드나 무심코 솥 뚜겅을 열었는데 맹물을 끊이고 있더란다. 아궁이에 불이라도 지펴 음식을 만들어 먹는것 처럼 보이려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명절이면 가만가만 가난한 집에 식량을 보내셨다. 입에서 입으로 이 일이 알려지게 되었다.
  어제 저녁 텔레비전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를 굶주림에서 구하자는 광고를 보았다. 화면에 비친 뼈만 앙상한 아이들을 보면서 북한 어린이들이 생각났다.
  2년 전, LA평통 방문단 일원으로 북한에 갔을 때, 한 할머니가 아파트 입구에서 손수 캐 왔지 싶은 쑥을 좌판 위에 팔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 등에 업힌 깡마른 어린이, 그 남자 아이의 퀭한 눈매가 몹시 안쓰러워보였다.
  조용한 자리에서 북한 안내원에게 “북한에서 몇 백 만명이 굶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입니까”하고 물었다. “몇 명인지 나는 모릅네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건 사실입네다.”고 대답하던 어두운 그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살을 빼기 위해 고민하는 이 시대에, 먹을 게 없어 몇 백만 우리 형제가 굶어 죽었다고 했다.
  산을 보면 배가 고팠다. 헐벗은 산에 홍수가 나면 속수무책일 듯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큰 홍수가 났다. UN의 자료에 의하면 454명이 사망하고 156명이 실종되는 등 600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물에 휩쓸려 몇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참사 소식을 듣고도 미주 한인사회는 이들을 돕자는 어떤 자발적인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을 돕는 일에 퍼주기 논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동포를 위해 식량을 지원하는 일은 여야 구분 없이 찬성하고 있다.
  "북핵과 관계없이 부족분 전량을 조건 없이 지원해야 한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세계식량계획(WFT)발표를 인용하여 당 중진회의에서 오래전에 주장한 말이다. 대북 식량지원은 인도주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식량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가정파괴 등은 통일한국을 생각할 때 엄청난 재앙이므로 이를 미리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정책위 의장도 동조하는 발언을 했다.
  생각해보면, 북한 주민은 보듬고 나가야 할 우리의 반쪽이다. 식량지원은 현금이 아닌 인도주의 차원의 현물지원이며, 북한정권이 아닌 북한주민을 위한 지원이다. 배고플 때 차려주는 밥 한 그릇의 고마움은 오래 기억되기 마련이다. 통일은 크고 먼 곳이 아닌, 작은 정성과 관심으로부터 비롯된다.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오고 있다. 명절이면 깍쟁이할매 같은 인색한 사람도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게 된다. 수 만리 이역 아프리카 어린이의 배고픔까지 걱정할 만큼 우리는 정이 많은 민족이다. 지척에 있는 북녘 형제의 굶주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날이 추워지면 북한 동포의 고통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태풍 나리가 제주를 비롯한 남쪽지방에 큰 상처를 남겼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무래도 올해는 환한 추석달을 맘 편히 즐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07년 9월 19일 중앙일보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