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아닌 사람이 평가기준

2007.12.13 10:33

정찬열 조회 수:2


                                    
   학력위조 사건으로 한국이 떠들썩하다. 사건이 일파만파 번지는 것을 보면서 학벌을 유별나게 따지는 한국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했으면 가짜 학력으로 자기를 치장하려 했을까 하는 측은한 느낌이 들면서 오래 전 일이 떠올랐다.
  한국방송통신대학이 개교했던 1972년. 방송과 통신을 이용해 공부하는 초급대학 과정인 이 학교 학생모집 공고가 났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일반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던 처지라 반가운 마음으로 등록을 했다. 밤 늦은 시간에 라디오를 통해 강의를 듣고 리포트는 우편으로 제출했다. 방학때는 협력학교에 나가 출석수업을 받았다.
  그렇게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나에게 관심을 보이던 여자가 자기부모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통신대학을 다닌다고 했더니 “아니 그런 것도 대학이라고 다닌다니, 헤어져라”고 하시더란다. 하, 그때의 심정이라니.
  그 무렵, 검정고시 공고가 났다. 검정시험에 합격하면 통신대학 졸업생이 일반대학에 편입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때까지 몰랐던 놀라운 소식이었다. 가고 싶었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 합격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학비융자제도 같은 것도 없었던 때라 입학금을 마련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어렵게 등록을 마쳤다.  
  산사람 코도 베어간다는 서울에 맨손으로 올라왔다. 학비를 벌어야 했다. 겨울 한 철, 외대 앞 골목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마쳤다.
   졸업한지 어느새 많은 세월이 흘렀다. 대학을 나왔으니 그 만큼 가정이나 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아왔는가를 자신에게 되물어 본다.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며 효도를 하는 사람은 대학을 나온 내가 아니라 대학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동생이다. 일곱 남매 장남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크게 받아온 나는 명절이나 어머님 생신에 안부전화 한 통화로 아들 도리를 하는데 그치고 있다.    
   중학을 함께 졸업한 종철이라는 친구가 있다. 중학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마을부근 개펄이 개간되자 간척지를 사들였다. 천성이 부지런하여 소를 기르고 약초를 재배하여 부농이 되었다. 일이 많아 맡기를 꺼려하는 동네 이장을 자원하여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결하며 선진 마을을 만들었고, 고향발전을 위해 한 몫을 하고 있다. 부부가 오손도손 농사일을 해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소주 한잔을 나누며 중학교를 가지 못한 아이들이 마을에 반 이상 이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살아오면서 고비고비 힘들었던 얘기를 하며 넌지시 건네던 친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나이 먹는 일 빼고 저절로 되는 일이 어디 있던가.”  
  어려운 여건에도 남 탓 하지 않고 멋지게 세상을 헤쳐가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중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그가 대학을 졸업한 나를 부끄럽게 한다.
  먹고 살기도 힘겨운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이 대학을 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어도 대학 졸업자 못지않게 성공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대학을 졸업했는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하는 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2007년 10월 17일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