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단’ 감동

2007.12.13 10:37

정찬열 조회 수:2


                                  
  두 주일 전, 본 난에 “좋은 친구는 축복”이라는 필자의 글이 실렸었다. 칼럼이 나간 다음 날 뉴저지에 사는 어떤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글 잘 보았다는 말씀과 함께, 내 글에 나왔던 목사친구 Y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액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매월 서울에 있는 그 목사님께 헌금을 보내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통화를 끝내고 난 다음, 소설가 김훈이 LA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얘기했던 내용이 생각났다. 시간이 나면 일산 집 근처에 있는 여고 교정을 가 보곤 하는데, 거기 모인 많은 학생 중 한명이 웃기시작하면 그 웃음이 순식간에 번져가 운동장이 온통 웃음으로 출렁거리더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감정이 저렇게 쉽고 빠르게 전달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웃음이 번져가듯 사람들은 말이나 글을 통해서도 감동을 받게 되고, 그 감동은 어느 순간에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했다.      
   어느 날 문득, 가난했던 학창 시절의 잊혀지지 않은 사연하나가 생각났다. 기억 속에 뭍혀 있던 그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그 불씨가 뉴저지로 튀어가 어떤 분의 가슴에 모닥불을 지폈다. 그 불똥이 서울에 있는 목사에게 다시 번져 가게 되었다. 매달 보내오는 돈을 받으면서 목사친구 Y는 또 누구에게 이 얘기를 전할 것이다. 이야기는 물결이 되어 가슴에서 가슴으로 멀리멀리 여울져 갈 것만 같다.  
   기쁨이 기쁨을 낳고 사랑이 사랑을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흥겨운 장면을 보면 덩달아 엉덩이가 들썩이게 된다. 감동은 사람의 마음을 넘나들며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손을 뻗어 손을 잡아주게도 한다.
   한 친구가 베풀어 주었던 이야기가 뉴저지 그 분에게 따뜻한 모습으로 전달이 되었나보다. 목소리로 미루어 전화를 주신 분은 나이가 꽤 드신 분이라고 짐작 되었다. 먹고 살기 힘든 이민생활에서 어렵게 모은 돈을 매달 얼마씩 보내겠다고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직접 관련되지 않은 일이라면 관심 두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하는 세상이다. 인정이 메마른 삭막한 세태를 탄식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신문에 난 사연을 보고 돈을 보내 주겠다고 연락을 해 왔다. 누가 뭐래도 세상은 아직 살 맛 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경험했던 기억 하나가 떠오르면서, 혹시 전화를 주신 그 분도 누구에겐가 신세를 지고 못 갚게 된 사연을 갖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학기말 시험 날이었다. 서둘러 버스를 탔는데 내리려 하는데 돈이 없었다. 깜박 지갑을 집에 놓고 나온 것이었다. 난처한 상황을 지켜보던 어떤 신사가 대신 버스비를 내 주었다. 미안해하는 나한테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면서 ‘학생도 다음에 똑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에게 갚으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사람마다 가만히 미소가 번지는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 작은 추억, 작은 희망 하나가 슬픔과 절망을 넘어서게 한다. 이혼을 결정하고 각자의 짐을 꾸리던 부부가 구석에 박혀있던, 딸아이가 어렸을 적 신었던 빨강구두를 발견하고 이혼을 단념했다고 한다. 빨강구두를 보면서 아름다웠던 추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좋은 추억하나가 번져가 기쁜 추억 둘을 만들어 낸다. 기억 속에 숨어있던 따뜻한 추억의 불씨를 꺼내어 가슴에 모닥불을 피워보자. 너도 나도 춥지 않게 이 겨울을 보내보자.<11/28/07 중앙일보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