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있었다

2008.02.09 08:47

배희경 조회 수:54

          얼굴이 있었다                          미주문학  2007년


   여자는 얼굴에 생명을 건다. 열 살쯤서부터 사춘기에 들어서면 정신을 온통 얼굴에 쏟는다. 이때의 여자들을 분류하면, 예쁘지도 않으면서 가장 미인인 줄 아는 과대망상증의 여자와, 밉상도 아닌데 자기를 아주 못났다고 생각하는 과소평가증이 있다. 그러나 대개의 여자들은 자신을 잣대에 올리고 가늠하려고 애쓴다.
   첫째 형은 천부적으로 낙천적 기질의 소유자일 것이고, 둘째형은 소심한 사람들이 갖는 자기 열등의식의 발작이다. 이렇게 분류해 놓고 그럼 나는 어느 형에 들고 <싶은가>고 생각해 본다. 당연히 첫째 부류다. 그랬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더 힘찼었겠는가.

   여학교 일학년, 같은 반에 서양인형 같은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아침 등교하려고 집을 나서면, 남학생들이 자기 뒤를 따르기 시작한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교문 앞 까지 오면 진땀으로 온 전신이 젖는다고도 했다.
   그때 부터였을까. 나도 쌍까풀이 되어 빠끔히 예뻐 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침에 일어나면 쌍까풀을 만들어 보려고 손가락으로 눈두덩을 주름잡아 누른다. 얼마간 있으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보통 괴로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시도 해 보기를 수십 번이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드디어 포기하고 만 어릴 적 기억이 따스하게 떠오른다.
   그랬는데 지금은 너 나 없이 다 쌍까풀이다. 내가 그렇게 바랐던 쌍까풀 만들기를 붕어빵 구워내듯 한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질투와 약간의 거부감을 갖는다. 그것은 이루지 못하고 갖지 못해 생기는 청춘 고뇌의 그윽한 정서다. 그것을 잃어간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좋은 세상이 왔다고 그들에게 기뻐해 주고 있다.

   지금 가까이 지내고 있는 한 고향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늙어가는 얼굴 타령이다.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하는 따위다. 이런 타령은 타령 중에서도 가장 듣기 싫은 타령이다. 어쩔 도리 없는 늙음의 과정을 좀 담담히 받아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 친구 외에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 또 한 친구가 다녀갔다.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다. 그렇게 고왔던 친구가 거슬거슬 늙어가고 있었다. “너 피부가 나빠졌구나” 말하고는 금방 후회 했다. 그랬는데 친구는 늙는 푸념 한마디 없이 “그래서 이런 크림을 바르고 있단다” 라고만 했다. 그녀는 자기를 알고 있었고 발버둥 치지도 않았다.

   얼굴에 관한 한 ‘마이클 잭슨’을 따를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자기가 난 원천과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저버린 사람이다. 그것은 비극이다. 피부를 하얗게 표백하고 피부병이라고 사실을 기만하는 자세는 우리를 슬프게 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가수로서의 평가마저 깎아 내기고 싶지 않았다. 성희롱 죄로 매장되기 직전 까지 갔을 때는, 그가 옳아서가 아니라 그의 예술을 이런 식으로 매장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잭슨에 비하면, 늙은 여배우 ‘휠리스 딜러’ 같은 여자는 어떠했는가. 자기는 여덟 번이나 성형수술을 했고, 필요하다면 또 더 하겠노라고 카메라 앞에서 호탕하게 웃었다. 화장기도 없이 물개같이 번들했던 그 여자가 내게는 퍽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 이유는 숨김없는 솔직함이 좋았고, 또 그 나이에 예술의 길을 향해 의욕이 넘쳐 있는, 그래서 어떻게 해서나 예뻐 보여야 한다는 기개가 아름다웠다. 똑같이 아름다움을 추구했으면서도 한 쪽은 추해 보이고 한 쪽은 아름다워 보인 이유는, 그 내면의 진실성에서 구별되지 않았을까 한다.

   얼굴로 생각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내 남편의 한 친구는 서울에서 일등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 여자는 얼굴만 고운 것이 아니었다. 여러 재능도 많아서 고전 춤도 무희같이 추었고, 고운 말씨의 웅변술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저 여자는 세상을 도도하게도 살고 있겠군 하고. 그랬는데 내 생각과는 전연 달랐다.
   그녀는 결혼 생활 이십 년을 단 한 순간도 남편에게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보인 적이 없단다. 연탄불에 아침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이고, 도시락도 싸야하고, 남편 옷, 아이들 옷 챙겨야 하는 곤두박질하는 아침이다. 그때 벌써 그녀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니-. 무슨 재주로 그랬을까. 이것은 ‘카펄휠드’의 요술보다 더한 요술이 아닌가.
   세수를 안 해도 예뻤을 그 여자가 어째서 꼭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자기의 얼굴을 그 만큼 존중히 여긴 까닭이다. 아름다운 자신의 아름다움을 남편과 남의 기대에서 어긋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항상 그것을 보존하고 싶은 바람은 쉽지 않을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 또 삼십년이 지났다. 지금은 그 여자도 호호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그런데 어떤 심경으로 늙음을 받아드렸을까. 열심히 주름을 펴는 수술을 하고 늙어가는 아픔을 달래며 살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다소곳이 세월을 보내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아무도 젊어서 밉게 보이고 싶지 않고, 아무도 늙어서 주글주글 해 지고 싶지 않다. 그것이 얼굴이다. 간밤의 TV에서 어떤 고고학자가 이집트의 분묘에서 나온 미이라를 뒤적이며, 어느 시대의 어떠한 사람인가를 분석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미이라에도 아름다운 얼굴이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랍인의 뚜렷한 골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끔찍하게 생각되던 미이라에서 아름다움을 본 내 자신이 이외였고, 그리고 또 이런 것을 담담히 받아드린 나이가 된 것에 놀랐다. 미이라에도 분명히 얼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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