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란(洋蘭) 앞에서
2008.10.26 15:38
양란(洋蘭) 앞에서
이 용 애
동네 마켓에서 사 온 낮선 양란
두 송이 피어있던 꽃
며칠사이 하나는 떨어지고
봉오리 하나 둘 누렇게 시든다
아침 햇살 따라 자리 옮겨 본다
화분 밑에 자갈 깐 수반 받치고 물을 준다
그래도 눈길 돌려버린 애물 단지
이번엔 하루 몇 차례씩
분무기로 물을 뿌려 본다
그제야 생기가도는 작은 입술들
두 개의 꽃대에서 활짝 웃음이 터졌다
아직도 조롱조롱 터지려는
저 귀여운 다섯 송이 아가들
양란 살려놓고
나는 왜 이렇게 가슴이 무거울까
시간을 거꾸로 돌려
다시 시작 하고 싶은 지난날들
낯선 황무지에 옮겨진 우리 아이들
제가 알아서 물 찾아 뿌리 내리고
햇살 따라 가지 뻗던 어린 나무들
그 와중에도 올곧은 나무로
잘 자라준 고마운 나무들
이제 양란 앞에 서서
나는 자꾸 부끄러워진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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