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정리하다가

2010.10.26 07:33

이영숙 조회 수:67

  가을의 중심부에 놓여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온을 느끼며 이제는 서서히 겨울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옷장을 열어보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정리는 위하여 하루 이틀은 쉬 보내야 했다.  가족들의 옷을 전부 정리하면서 이 옷장 저 옷장 돌며 넣을 것과 꺼내어서 걸어놓아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돌아보느라 허리를 잡으며 일어서야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원피스는 지난해 많이 안 입어졌으니까 조금 뒤로 미루고.  이 바지는 유행이 지났으니까 구석에 걸어두고.  이번 계절에 유행할 색깔이 바로 그린이라고 지난 번 신문에서 읽었으니 이 재킷은 좀 앞쪽으로 정리하고.  남편이 올해 배가 좀 더 나왔으니 이 바지를 세탁소에 가서 미리 좀 늘여 놓아야겠고.  아이가 일 년 동안 이 만큼 자라서 이 점퍼가 작을 것 같으니 남을 주기위하여 빼 놓아야겠다.  그러면 새 옷을 사야겠군.  가게부도 들여다보며 지출 난을 바라보고.   그렇게 바뀌는 계절을 맞이하였었는데 이곳에 살면서 그러한 일은 줄었으니.  그 또한 엘에이에 사는 감사해야 할 한 부분인가보다.  요즘은 그저 항상 그 옷은 그 자리에 있어서 겨울에도 더우면 얇은 옷을 입어야 하고 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느낌이 있는 날은 두꺼운 옷을 꺼내야 한다.  특별히 계절이 바뀌어 옷 정리라고 할 것이 없는 세월을 살고 있다.  그래도 그냥 넘기기 허전한 '계절정리'(?)같은 마음으로 그저 한번 옷장을 열어 보고 이 옷 저 옷 위치만 조금 바꾸어 놓았다.   다음 날 아침을 먹던 딸아이가"엄마 우리 쇼핑한번 가야겠는데 언제 갈까요?"라고 물어왔다.     "왜 쇼핑을 가야하지?" 나의 되물음에 딸은 "나 긴팔 티-셔츠 좀 사야하는데..."라고 대답한다.  아~! 그렇구나, 계절이 바뀌었으니 필요한 옷을 사야하겠구나.   "그래, 언제 시간 날 때에 'Ross'에 가서 옷 좀 보자."   "............"   아무 말이 없이 침묵을 지키며 열심히 밥만 씹고 있는 아이에게 김치를 한입 잔득 물고 "왜?"라고 묻자 "엄마 이제 조금만 수준을 높이면 안 될까요?"라고 한다.   처음 미국에 와서 나의 옷은 살 생각도 못하고 가져온 옷만 열심히 입었다.  딸은 그때 아직 어렸으니 금방금방 자라는 아이라 몇 달에 한 번씩은 옷을 사야했었다.  언제나 중고옷 가게를 찾아다니며 3-5불정도의 가격의 옷을 사주었다.  좀 자라니까 아무래도 아이에게 미안하여 그때부터 가기 시작한 'Ross'를 지금까지 계속하여 일등 단골로 다닌다.  물론 단 한 번도 단골의 특혜를 받은 적은 없지만.  그러던 아이가 이제 고등학교에 들었다고 그러나 수준을 좀 올리자니?   우리아파트 주차장은 밖으로 나 있고 도로 쪽으로 아무런 울타리가 없이 그냥 경계선(?)만 그어져 있다.  물론 지붕(?)도 있고 아파트담도 있어서 차를 주차해 놓으면 그 속에 사람하나는 충분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홈리스 한사람이 밤이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와서는 단 한 번도 숙박료를 낸 적도 없이 잠을 잔다.  아침에 나가면'Good morning'이라며 인사를 하는 것으로 늘 숙박료를 대신하는 홈리스.   어쩌면 그곳이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나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청소도하고.  그래서 덕분에 내 주차장이 많이 깨끗해졌긴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주차장에 홈리스를 자지 못하게 하지만 나는 그냥 둔다.  그래도 홈리스에게는 그만한 좋은 잠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 아늑한 잠자리를 빼앗으려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냥 두고 싶다.  여름에는 그래도 괜찮더니 겨울이 되어오니 자꾸만 가여운 마음에 가슴이 아려온다.  뒤집어쓰고 또 뒤집어써도 찬 밤공기가 얼마나 살을 파고들까.  깔고 또 깔아도 시멘트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어떻게 감당을 할까.   아침에 만나면 가끔 2-3불을 주며 아침이나 먹으라고 말을 하면 'Thank you' 와'God bless you'를 연발하며 고마워하는 모습에 돈 2-3불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인 것 같아 도리어 나 자신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과연 어디에 가서 그 돈으로 그러한 큰 인사를 받고 감사의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작은 돈의 위력을 가장 크게 느끼는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원 베드룸.   딸은 방을 쓰고 나는 거실을 쓴다.  우리아파트는 원 베드룸이지만 유난히 작은 아파트라고 남들이 말한다.  그러나 방과 거실로 서로의 공간을 나누어 사용하기에 불편함도 없다.  또한 겨울에 춥지 않게 잘 수 있다.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다.  비록 'Ross'에 가서 싼 옷을 사기는 하지만.  계절에 맞게, 유행에도 별로 뒤지지 않게 맞추어 옷을 입는다.  배워야 할 것이 있으면 돈을 투자(?)하기도 하고.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조금은 망설이지만 따져보고 난 다음 크레디트 카드를 긁어 대기도 한다.  이 정도면 우리는 부자가 아닐까?   아침을 먹고 등교하는 딸에게 말 했다   "얘, 저 홈리스 좀 봐! 우린 따뜻한 집에 거하고,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계절에 맞게 옷을 사 입을 수 있으니 우리 너무 부자 아니니?"  근대 왜 딸아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을까? 200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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