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소설> 하늘 호수 1
2008.02.29 16:30
하늘호수
신영철
내가 북경여행사 왕차오 사장의 전화를 받은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조용한 분위기에 신경 쓰여 밖으로 나오니 뜨거운 열기가 훅 - 달라 든다. 왕사장이 내게 전화를 건 용건은 가이드 겸 통역으로 티베트를 갔다 오라는 말이었다. 지난달에 개통되어, 전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칭짱철도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고 했다.
왕사장의 말을 듣고 나는 내심 놀랐다. 왜냐하면 그 기차표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도를 통해 알기 때문이다. 중국의 각종 보도 매체는 지금도 열을 올려 이 철도의 개통을 홍보하고 있었다. 이곳 미디어들은 사회주의 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관영매체답게 이 철도의 개통을, 현대 중국의 눈부신 과학적 업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자세한 상황을 듣기 위해 사무실로 방문하겠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티베트는 이미 한국 손님을 인솔하여 한번 가 본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티베트와 인접한 ‘쳉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간 것이다. 그러므로 기차타고 그곳을 간다는 건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금단의 땅, 은둔의 땅, 세계의 지붕이라는 수식이 낯설지 않은 곳이 티베트였다. 그 엄청난 높이의 고원을 기차 타고 횡단한다니.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티베트 고원은 다른 땅과 다를 게 없었다. 다만 하얗게 만년설을 이고 있는 쿤룬 산맥과 히말라야 연봉이 인상적이었을 뿐이었다. 문명과는 거리가 먼 그 높은 산맥과 고원을 기차 타고 넘는다는 여정에 슬며시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가을 학기 개강이 얼마 남지 않아 시간이 어떨지 궁금했다. 나는 날짜를 꼽아 보았다. 석사 과정 마지막 학기가 9월에 시작 되니 여행과 겹친다면 아쉽지만 갈 수 없었다. 왕사장이 전화 한 걸로 보아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이겠지만 손님보다도 궁금한 건 기차였다.
8월의 북경은 덥다. 거기에 지독한 스모그까지 합세해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든 곳이 북경이었다. 안정대로 큰길가에 있는 북경여행사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시원한 냉방이 반가웠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던 뚱뚱한 몸집의 왕사장이 나를 반겼다.
“니하오. 대진, 기차표 구하기가 보통 힘들었던 게 아냐.”
“그렇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구했어요?”
“평소 잘 알고 있는 높은 사람 신세 좀 졌지. 콴시 덕분이야. 아마 한국인으로서 이 기차를 타는 건 대진이 처음일거야.”
뚱뚱한 몸을 흔들며 왕사장은 기차표를 확보한 이야기부터 꺼내 놓았다.
“중국에선 콴시…… 대진, 한국말로는 그걸 뭐라고 하지?”
“관계라고 번역 되지만 그 보다는 유대관계 쯤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네요.”
신흥개발도상국 대열에 들어선 중국은 부정부패가 심각했다. 그건 이 나라의 오랜 관습이었는데, 모든 거래에 있어 콴시를 아직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의 폐해는 많았으나 그걸 무시하고는, 규모가 크던 작던 중국서 사업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왕사장은 능력 있는 사업가였다.
“여행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열흘간이야. 출발은 이틀 후 북경 서역이고. 한국에 있는 여행사에서 우리에게 보내준 손님은 모두 세 명이고.”
열흘간의 여행이라면 대학원 개강일자에는 문제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내가 공항으로 픽업을 가야겠지요?”
“그렇지. 이틀 후 저녁 2시 30분에 아시아나 항공 편으로 북경 공항에 도착한다는군. 잘 갔다 오라고. 대진도 기차를 타고 티베트를 가는 건 처음이잖아. 중국 사람들이라면 내가 직접 갔을 텐데.”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왕사장은 눈을 찡긋 거리며 나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손님 신상 명세와 기차표, 그리고 티베트 라싸에 있는 호텔 예약 표였다. 그중에는 ‘입경허가서’라는 것도 있었다. 티베트 자치구는, 신강위구르와 함께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운동 기운이 있는 곳이라, 외국인들에게는 이 서류가 필요했다. 유학생이지만 한국인이므로 내 이름도 당연히 그 명단에 있었다. 이 서류 때문에 왕사장은 티베트 여행객들에게 비싼 요금을 받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기차만 처음이지 티베트는 몇 번 가보았으니까 문제없을 거야.”
“한국에서 오는 손님은 뭐 하는 분들입니까?”
“그건 몰라. 그 사람들 입경허가서 때문에 여권 복사본만 팩스로 받았으니까. 전부 남자라는 것만 알고 있어. 잘 갔다 오라고.”
북경여행사를 나서며 나는, 역사만 발전하는 게 아니라 길(路)도 진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마득한 히말라야 변방의 티베트에 기차 길이 열렸다니. 서둘러 숙소로 돌아 온 나는 티베트에 대하여 자료를 찾아 놓았다. 전공이 중어 중문학이니 ‘시짱자치구’라 불리는 그곳의 인문적 상식은 대충 있었다. 산소가 희박한 만큼, 인구 밀도도 희박한 그곳에 철길을 놓은 중국의 속내야 이미 세계가 다 알고 있었다. 티베트를 병합한 중국의 정치, 군사, 경제적 뜻에 따라 만들어 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평균 해발 4500미터가 넘는, 그 티베트 고원을 수 천 톤의 기차가 올라간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티베트가 어떤 곳인가. 높기도 하거니와 쿤룬산맥, 탕그라 산맥, 히말라야로 에워 쌓인 불모의 땅이다. 하다 못 해 헬리콥터 조종 교본에도, 비상시 아니면 절대로 체류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아득한 높이의 땅덩어리 아닌가.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지도상 공백으로 남아 있던 곳. 고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동토 층인데, 그곳을 기차가 올라간다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여행 준비를 끝낸 내가 가방을 끌며, 북경 공항 제 2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북경의 끔찍한 교통지옥 때문에 서둘렀는데도, 손님 비행기 도착 시간을 겨우 맞춰 도착한 것이다. 비행기가 쏟아 낸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출구 앞에 선 나는, 북경여행사 로고가 박힌 종이를 펴 들었다. ‘홍인수, 이성열, 김석우님 환영합니다.’라고 써진 글이었다.
나에게는 매번 이럴 때가 긴장되는 순간이다. 미리 보았던 그들의 여권 사본에서 홍인수가 나이가 제일 많은 마흔 두 살이었고, 이성열이 서른다섯 살, 김석우가 서른 두 살이었다. 그 외에 그들의 직업이라든가 성격 등 다른 정보를 알 길이 없었다. 그들 모두가 일행인지, 아니면 한국 여행사에서 개별적으로 접수한 사람들인지도 나는 몰랐다. 그러므로 손님을 처음 대면하는 지금 내가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여자가 한명도 없다는 것은, 티베트가 쉽지 않은 여행지라는 걸 반증하는 건지도 모른다. 열악한 숙소, 끔찍이 더러운 화장실, 기압 차이에 따른 두통을 생각 할 때 티베트는 관광지로서 어울리는 곳은 아니었다. 여행이라면 좋은 곳도 많은데 하필 그런 곳을 가려는 이들은 뭐를 하는 사람들일까.
또 다른 비행기가 또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들고 있는 환영 문구를 보고 누군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내가 기다린 손님이 분명했다. 조금 살이 찐 몸집에 고어택스 등산복 상의를 입은 중년 남자였다. 그리고 뒤쪽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두 사람에게 나를 가리켰다.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해 오는 그들의 첫 인상은 좋았다.
“여러분의 티베트 여행 통역과 안내를 맡을 고대진입니다. 북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갑구먼. 대진 씨라고 하셨나? 인상이 좋군. 나 홍인수라라고 해요.”
홍인수는 첫 대화부터, 경어도 그렇다고 반말도 아닌 말로 네게 인사를 해왔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성격이 시원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뒤 끝이 없다는 걸 나는 안다. 홍인수는 기분 좋은 웃음으로 곁의 일행을 소개 시켰다. 이성열이라는 사람은 마른 체격에 키가 크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상의는 물론, 바지와 어깨에 맨 가방까지 검은 색 일색이었다. 김석우라고 소개 받은 사람은 작은 키에 좀 날카로운 눈매와 다부진 몸매를 하고 있었다. 그 역시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었다.
“기차 출발은 저녁 9시 30분입니다. 그 동안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실 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자금성을 대충 도는 관광 정도는 충분한 시간인데요.”
“비행기에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눴는데, 모두 관광에는 흥미가 없다는 군.”
비행기에서 말을 나누었다는 홍인수의 말은, 이들이 일행이 아님을 뜻했다.
“일행이 아니신가보죠?”
“우리는 인천 공항에서 처음 만났지. 한명씩 따로 따로 온 거요. 특히 이성열 씨는 미국에서 온 교포더군. 그러나 이제 열흘 동안 우리는 한 팀이 되는 거요.”
그 말에 이성열을 바라보니 그는 긍정의 표시인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기차 시간까지 어떻게 보내는 게 좋겠습니까?”
“출발지 북경 서역 근처로 이동해서 어디 괜찮은 식당으로 갑시다. 저녁과 함께 술 한잔 나누며 단합 대회를 하지요. 어떻습니까?”
홍인수는 나머지 두 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럴 때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나서서 이리저리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리더가 되어 주면 일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먼 길 출발을 앞두고 단합자리도 괜찮은 일이지요.”
김석우가 적극적으로 찬성 의사를 밝혔다.
“잠깐만요. 대진 씨. 옹화궁(雍和宮)이 이곳에서 먼 가요? 가능하다면 나는 그곳에 들렸다 출발 기차역에서 만났으면 싶은데요.”
이성열이었는데 특이한 부탁이었다.
“티베트 라마 불교 사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대진 씨가 택시를 태워주면 그곳에 갔다가 시간 맞춰 역으로 가면 안 될까요?”
“그건 좀 힘들어요. 옹화궁은 북경시 동북쪽에 있는데 아마 그곳에 도착하면 문을 닫을 시간이 될 겁니다. 이곳은 서울 보다 더 교통 체증이 심해요. 아 참 미국에서 오셨다고 했지요?”
이성열의 얼굴에 실망의 언 듯 빛이 스쳤다. 일반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라마 사원을 간다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시간이 맞지도 않지만 중국말을 못하는 그를 혼자 보내는 것도 나로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꼭 그곳을 가야 합니까?”
이성열과 나누는 대화를 듣던 홍인수가 나섰다.
“아니…… 꼭 가야 할 이유는 없어요. 티베트 가는 기차 시간이 남는다기에 그런 생각을 해 본 겁니다.”
“그럼 내 말대로 식당으로 갑시다. 첫 날부터 이산가족이 되면 안 되니까요.”
“그러지요. 뭐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공항 택시 정류장으로 그들을 안내 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려면 한참 걸려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잠시 공항으로 되돌아갔다 온 홍인수가 웬 사내를 한명 데리고 돌아왔다. 자가용 택시영업을 하는 소위 조선족 삐끼였다.
“이 사람 차를 타고 갑시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그게 빠를 것 같군요.”
내가 무색해 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홍인수는 사람 좋은 웃음을 띤 채 말했다.
“대진 군, 가이드 역할에 월권을 한 게 아니요. 아까 나올 때 이 사람이 계속 따라 붙었다니까. 하하.”
삐끼를 따라 주차장으로 간 우리는 짐을 차 트렁크에 실었다. 내가 이성열이 든 검은 가방을 받아 실으려 했을 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카메라 가방인 듯싶었는데 차 안에서도 이성열은 그 가방을 꼭 잡고 있었다.
“중국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군. 오히려 서울보다 더 커진 것 같아. 빌딩도 다 새것이고. 북경 인구가 얼마나 되지?”
달리는 차 안에서 홍인수가 물었다.
“대략 천오백만 쯤 됩니다. 그건 북경 거주 증명이 있는 사람이고, 그 밖에 체류하거나 일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을 합치면 이천만이 넘는다는 말도 있어요.”
“북경에 살려면 거주 증명이 있어야 하나? 같은 중국인인데.”
내 말이 의외라는 듯 홍인수가 물었다. 김석우가 나대신 나서서 설명을 한다.
“일종의 고육지책이지요. 만약 아무나 북경에 살게 한다면, 한 일억쯤 금방 몰려 들 거예요. 인프라나 사회적 혼란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어요.”
“그것 참, 별난 일도 다 있군.”
창밖으로 눈을 돌리며 홍인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석우는 중국에 대한 이해가 상당한 듯 보였다. 차는 교통 혼잡으로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서역 근처 대동호텔에 도착했다. 특급호텔답게 냉방이 잘 되어 아주 시원했다. 식당을 찾아 자리를 잡은 우리는 음식과 찬 맥주를 시켰다.
“팔월의 북경은 참 덥군. 그런데 대진 군은 군대 갔다 왔나?”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홍인수가 질문을 해왔다.
“그럼요. 육군으로 군을 마쳤습니다.”
“유학생인가?”
“네. 한국에서 중문학 전공 졸업 후, 이곳 청화대학에서 석사과정 중입니다.”
“일류대학이네. 북경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이잖아. 그럼 가이드 일은 아르바이트고?”
“그렇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하고 있죠.”
“관광 가이드라, 아주 좋은 아르바이트구만. 우리는 돈 내고 오는데 대진 군은 관광 공짜로 하고 거기에 돈까지 버니 말이야. 하하.”
홍인수의 거드는 말은,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였다. 당연히 매번 하던 모범 답이 나왔다.
“가이드 참 힘든 직종입니다. 이거, 아르바이트라 하는 거지 직업으로 생각했다면 당장 그만 둘 겁니다.”
“어째서? 관광지 자료만 챙기고 중국말 통역만 하면 되는 건데?”
“관광지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이 나라 사정도 꿰고 있어야죠. 주변국가와 관계까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해요? 인터넷 뒤져 나오는 정보 가지고는 손님에게 감동을 줄 수 없어요.”
“햐- 감동까지나. 이거 우리 가이드 잘 만난 것 같구먼.”
“그리고 손님이 얼마나 다양합니까. 아이 어른, 남자 여자. 그중엔 저를 하인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여행가이드는 참 힘든 직종입니다.”
이런 말은, 손님들에게 미리 해주는 일종의 자기방어이자 경고 같은 것이었다.
“그건 맞는 말이에요. 쉽게 돈 버는 게 세상엔 아무것도 없어요.”
자스민 차를 마시던 김석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음식의 푸짐함에 이들은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성열은 채식 주의자처럼 자신의 접시에 야채만 골라 담았다.
“자- 장도를 위하여 한 잔 합시다.”
가득 찬 맥주잔을 들고 홍인수가 기분 좋게 말했다. 우리는 그가 든 맥주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이제 함께 열흘을 보내야 할 텐데 서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나는 한국에서 작은 무역 관련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홍인수라 합니다. 사업을 위해 티베트를 가는 겁니다. 티베트 특산물 카펫이 주 품목인데 비행기로 실어 나르려니까 채산이 맞지 않아요.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어요. 우리가 타려는 기차로 말미암아 물류비용이 획기적으로 줄 것이니까. 그걸 알고 싶어 왔어요.”
어쩐지 시원스럽고 손이 크다 생각했는데 무역업체의 사장이었다. 그것 보다 내가 놀란 것은, 개통 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기차를 놓고 벌써 손익 계산을 하는 점이었다. 홍 사장을 이어 김석우가 일어섰다.
“저는 H신문사 근무하는 김석우입니다. 이번에 새로 개통된 칭짱 열차에 대하여 취재차 여기에 왔습니다. 제가 이번에 취재하는 기사는 사진과 함께 우리 신문에 연재할 계획입니다.”
눈매가 날카로워 보인다 싶었는데 역시 김석우의 직업은 기자였다.
“저는 이성열이라고 합니다. 거주하는 곳은 미국 로스앤젤리스입니다. 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힘들게 휴가를 얻어 이곳에 왔습니다. 꼭 티베트를 가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자세한 말씀은 나중에 천천히 나누도록 하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머뭇거리며 말을 마친 이성열의 눈빛에 잠시 쓸쓸함이 흐르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미국에서 온 사람이 북경에 있는 티베트 불교 사원인 옹화궁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곳은 일반인이 잘 찾지 않는 곳인데 그곳을 가고 싶어 한 이유는 뭘까.
김기자가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대진 씨,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주의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 주세요.”
“우선 고소증을 조심해야 합니다. 기차가 오천 미터를 넘어 가니까요. 제가 몇 가지 약은 준비해 왔어요. 천천히 움직이고 물을 많이 드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독립 운동이 벌어지는 민감한 곳이니까, 김 기자님은 가능한 조심스럽게 취재하는 게 좋겠는데요. 게엄령 중인 그곳은 기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김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표시였다. 맞은편에 앉은 이성열이 시선을 내게 고정시키며 물어왔다.
“대진 씨, 우리가 하늘호수는 언제 가게 되는지요.”
“아, 예. 계획서에 나온 하늘호수 말씀이군요. 그 호수는 원래 ‘남쵸’라고 합니다. 티베트어로 '남'은 하늘을, '쵸'는 호수를 말하죠. 지구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하늘호수라는 별명을 얻은 거예요, 해발이 사천 칠백 미터가 넘기에 곧바로 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라싸에서 관광을 하며 고소에 적응 된 후 그곳을 가게 됩니다.”
이성열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 대하여 흥미를 느꼈다. 티베트가 재미있는 여행지임엔 틀림없으나, 태평양을 건너고 다시 서해를 건너 올 만큼 그리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차차 그에 대하여 알게 될 것이다. 그의 말은 내 입을 거쳐 통역이 될 것이니까. 자신의 맥주 컵을 단숨에 비운 홍 사장이 내게 잔을 권했다.
“예전엔 티베트를 가려면 비행기뿐이었는데 이렇게 기차를 타고 갈 줄 꿈에라도 알았을까. 참 세상 좋아 졌어.”
“그럼요. 좋아지고말고요. 실크로드가 옛날 옛적 이름이라면, 이제 철길이 깔렸으니 우리가 가는 길은 스틸로드라고 불러야겠지요. 그래서 제 글 제목도 ‘스틸로드 따라 티베트를 가다’라고 뽑을 예정입니다.”
김기자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내가 챙겨 본 자료도 그렇게 밝히고 있었다. 티베트 고원도 광의의 실크로드 중 하나였다. 우리가 익히 알던, 우루무치를 통해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가 아니라, 티베트를 종단하여 중국과 인도를 오가던 길이 존재했다. 혜초 스님 이전에도 네 명의 신라스님이 우리가 갈 고원을 경유하여 인도로 성지순례를 떠났었다. 티베트와 인도 사이, 히말라야 고개 ‘나투라’가 그 고개 길이다. 아득한 옛날, 목숨을 담보한 채 몇 년을 터벅터벅 걸었을 실크로드를 우리는 기차 타고 가려고 모인 것이다.
“여러분이 북경여행사를 선택하신 건 잘한 일입니다. 그 기차표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까요.”
“알아. 한국에서 이곳저곳 문의를 해도 기차표 때문에 아예 안 된다더군. 인연이 되려니 이렇게 당신도 만났고 기차도 타게 된 셈이지. 안 그래요?”
홍 사장은 주변의 동의를 구한다는 듯 좌중을 휘 둘러 보았다.
2006년 칠월에 개통 된 T27 북경-라싸 간 기차는, 하루 한 대 뿐이었다. 표는 연일 매진되어 도저히 구할 길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중국인들에게도 티베트는 미지의 세계였고, 중국은 후진따오 주석까지 나서서, 이 하늘 철도 건설을 칭송하고 있었다. 중국 언론들은 이 기찻길에 티엔루(天路), 즉 하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짝퉁 천국이었던 중국 기술도 이제는 만만한 게 아니야. 대진 군이 이곳에 사니까 잘 알겠네. 어떻게 생각해요?”
“사장님 산샤 댐 아시지요? 양자강을 막아 버린 엄청난 토목 공사. 무려 백 구십 만 명이나 이주시킨 세계 최대의 댐. 그것 완공과, 선저우 유인우주선 발사, 그리고 이 하늘 철도 개통을 근대 중국의 3대 업적으로 당국은 홍보하고 있어요.”
“그래 맞아, 예전의 중국이 아니지. 원자 폭탄 수소폭탄에 유인 우주선까지 자체 기술로 만드는 중국이니까.”
“이 기차 개통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니까 엄청나게 인파가 몰렸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여행 자제를 호소하는 방송이 자주 나와요. 웃기는 일이에요.”
사실이 그랬다. 중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인해전술 아닌가. 중국 당국의 대대적 개통 홍보로 인해 엄청난 사람들이 그것을 타려고 대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몰리는 사람들을 포용할 인프라가 라싸에는 절대 부족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행사에서는 아예 손님을 받지 않는 사태를 야기했다. 당연히 라싸행 기차표는 귀하신 물건이 되었지만, 왕사장의 수완으로 그 문제가 해결 된 것이다.
“그런데 이성열씨가 가려던 그 뭐라던가, 옹화궁인가 그곳이 어떤 곳입니까?”
문득 생각났다는 듯 홍 사장이 이성열에게 화제를 돌렸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라마 불교 사원이라는 것 밖에요.”
“그럼 가이드가 잘 알겠네. 거기가 어떤 곳이지?”
“청나라 때 강희 황제의 넷째 아들을 세종옹정이라고 하는 데요, 그 사람이 살던 저택이었습니다. 세종옹정이 황제가 되어 즉위 한 이래 티베트 불교사원으로 바뀐 거지요. 황제는 아주 독실한 라마 불교도였던 모양입니다.”
이럴 때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는 질문이었으니까. 가이드 일을 하며 느낀 바로는 손님의 질문에 즉답이 안 나오면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절에서 볼 게 뭐야? 유명한 게 있다면.”
“만복각에 있는 부처님이지요. 티베트의 달라이라마 7세가 건륭황제에게 바친 것이라고 하는데 엄청 커요.”
그때 이성열이 내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그 목불이 나닙니다. 그 절에 있는 약사전(葯師殿)을 보고 싶었어요. 그곳에는 티베트 약초표본이 많이 있다더군요. 라마 스님들이 그곳에서 티베트 전통 의술을 공부했던 장소라고 해서 가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이성열에게 궁금증이 일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북경 주변 관광지를 많이 다녀 보았으나 옹화궁을 가겠다는 사람은 드물었다. 높이 십팔 미터의 거대한 나무 불상에는 관심이 없고 약사전에 관심이 있다는 말도 생경했다.
기차시간이 되어 우리는 일어섰다. 티베트 수도 라싸로 가는 칭짱철도 출발지는 북경 서역이었다. 자금성 성문을 닮은 거대한 구조물이 인상적인 역전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역 구내에는 겁을 주듯 ‘티베트를 여행하려는 외국인은 입경허가서를 받아야 된다’라는, 공고문이 붙어 있다.
나는 짐꾼을 동원해 다른 출구로 미리 기차에 탑승 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이 내가 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배운 노하우였다. 중국에서도 가장 쾌적한 기차라는 소문대로, 왕사장이 사 놓은 4인용 침대칸은 깨끗했고 제복의 승무원들 역시 친절했다.
밤 9시 30분 정각, 라싸행 기차가 사람들을 꽉 채운 채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드디어 출발하는군. 아까 보니 식당 칸이 있던데 그리로 가서 한잔 더 합시다. 역사적 대장정을 나서는데, 또 초저녁인데 잠이 오겠어요?”
한 칸에 양쪽으로 2단 층으로 된, 각자의 침대에 짐을 정리한 후 홍사장이 우리를 채근했다. 대동호텔의 저녁 값도 그가 냈지만 또 한잔 사겠다는 말이었다.
“저는 좀 쉬는 게 좋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끼리 갔다 오시죠.”
이성열은 예의 그 검은 가방을 맨 채 침대에 앉아 사양을 했다. 홍사장의 말대로 잠 들 시간은 아니었기에 김기자와 나는 그를 따라 식당 칸으로 갔다.
“대진 군이 안주는 알아서 시키라고. 중국 물가가 싼 게 이럴 때는 고맙다니까.”
나는 고량주와 거기에 어울릴 몇 가지 요리를 시켰다.
“과연, 후년으로 다가온 북경 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질까요? 말은 안했지만 북경의 스모그는 정말 대단했어요. 이제 그 공해로부터 해방되어 청정 티베트로 간다니 기분 좋군요.”
김기자의 말대로 첫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나도 가슴이 설레었다.
“대진 군, 우리가 지금부터 몇 킬로미터를 달려가는 거요?”
홍사장의 질문이었다.
“자료에는 4065킬로미터로 나와 있습니다. 서울 부산 열배니까 대단한 길이죠.”
“몇 시간이나 걸리지?”
“한국의 무궁화 호 속도로 47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이걸 칭짱철도로 부른다는데 맞나?”
“아닙니다. 칭짱철도와 연결 될 뿐이지요. 기존 철도로 청해성의 거얼무에 도착하면, 거기부터 티베트 고원을 넘어 라싸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칭짱철도입니다. 그게 이번에 개통 된 겁니다.”
“그렇군. 그럼 높이는 얼마나 올라가는 거야? 이 기차로 말이지.”
홍사장이 궁금한 것처럼 김기자도 내 설명에 귀 기우리고 있었다.
“세계 최고 높이를 달리는 기차는, 당연히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역인 탕그라 역을 지납니다. 그 역은 알프스 몽블랑보다도 높은, 해발 5072미터나 됩니다.”
외워 놓은 설명을 하며 나는 다시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수 천 톤의 이 육중한 쇠붙이가, 알프스 산맥 보다 높은 곳을 오른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홍 사장님. 고도가 높아지면, 술을 많이 마시지 못 할 거예요. 고소증 때문에 지독한 두통에 시달릴 테니까요.”
“아직 이곳은 괜찮아. 평지인데 뭘. 그때는 조금만 마시지 뭐. 농담이겠지만 후진따오 주석 만나기보다 힘들다는 표를 구했으니 축배를 들 이유로는 좋잖아.”
홍 사장은 술을 꽤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카펫까지 깔려 있는 식당은 꽤 품위가 있어 보였고, 그곳은 기차여행을 마치는 라싸까지 우리 단골 쉼터가 되었다.
“이 카펫은 싸구려야.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 낸 것이지. 내가 취급하는 티베트 카펫과는 품격이 달라. 모두 손으로 만든 수제품이니까 당연히 값도 비싸고. 하하.”
전문가답게 홍 사장은 식당 바닥에 갈린 카펫 품평을 했다.
“이성열씨도 이리 같이 왔으면 좋았을걸. 술을 많이 못하나 보지?”
축배를 함께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에선지, 홍사장이 그렇게 말했는데 그 말을 김기자가 받았다.
“무슨 걱정이 있는 사람 같지요? 미국에서 일부러 여행을 왔으면 다 툭 털어 버리고 즐겁게 어울리면 좋을 텐데.”
“지금이라도 불러 올까?”
“에이, 내버려 두세요. 피곤하다는데 쉬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홍 사장의 사업 이야기와 김 기자의 취재 계획 등, 여러 대화를 나누다 침실로 돌아오니, 2층 침대의 이성열은 벌써 잠들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혼곤한 잠을 자고 일어 난 사이, 이미 기차는 낯 선 풍경 속을 달리고 있다. 차 창밖으로 희붐한 아침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유학 오기 전, 보았던 전라도 김제 평야가 생각났다. 그곳에서만 지평선이 보이는 줄 알았는데 이곳 역시 그랬다. 창밖으로 질펀한 옥수수 밭이 끝 간곳없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경작 가능한 땅이 많으므로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도 먹을거리는 넘쳐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넓은 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경작 가능한 땅으로는 세계 최고 넓이의 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진시 황릉으로 유명한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시안(西安)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30분이었다. 중간에 한번 정차 한 후 꼬박 12시간을 달려 온 셈이다. 이 기차는 라싸까지 통과하는 각 성의 성(省)도 6개 도시만 정차한다. 말 그대로 급행이라 할 수 있는데, 성 하나는 우리나라 몇 배의 크기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기절하듯 푹 잠자고 아침에 깨어나면 힘이 솟는다. 그것처럼 중국도 질곡의 역사를 뒤로 하고 거듭 깨어났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직, 북경 도심지에서 인력거 끌며 휴대폰 거는 혼돈이지만 이제 누구도 중국의 힘과 저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세면을 마친 후 아침을 먹으러 다시 식당 칸으로 모였다. 어제 저녁 매상을 올려준 덕분인지 복무원이 웃는 얼굴로 반긴다.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켰고 일행들은 그것들을 맛있게 먹는데, 이성열만은 청채라 불리는 야채와 밥만 먹는다. 역시 그는 채식주의자인 모양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커피를 시켰다. 침실로 돌아가 봤자 낮잠만 잘 터였으니까.
“마치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보는 것 같아. 이 넓은 땅을 먹어치운 후 기차 길을 깐 중국의 서북공정을 보면 말이지.”
창밖으로 질펀하게 펼쳐진 평원을 보며 홍 사장이 부러운 듯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시던 김기자가 그 말에 동의라도 하듯 맞장구를 쳤다.
“정확히는 서남공정이에요. 물론 큰 뜻으로는 서북공정에 포함되지만요. 중국 땅이 넓다고 하지만 티베트 고원이 사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어요. 티베트가 독립 운운 하나 결코 중국은 티베트를 내 놓을 리가 없습니다. 하긴 우리나라라 뿐이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땅 욕심에 그렇겠지요.”
“미국이 서부로 진출 할 때는 인디언들의 저항이 꽤 심했었는데, 이건 숫제 거저먹은 거지 원.”
“하하. 예전에 본 서부영화 생각이 나네요. 그 영화에서 명 사수 존 웨인이 포장마차를 이끌고 황량한 서부를 갑니다. 드디어 인디언과 전투가 붙지요. 전력의 열세로 존 웨인이 이끄는 백인들은 거의 전멸 직전에 이릅니다. 더 버틸 힘이 없는 상황에서 인디언들은 마지막 총 공격을 해 옵니다. 그때 빰바라밤 하며 나타나는 기병대에게 우리가 얼마나 열광했습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백인들이 만들어 놓은 왜곡이었지요. 인디언 땅에 쳐들어간 침략자에게 박수 친 꼴입니다.”
“그게 역사야. 센 놈이 이기는. 중국 역시 서부개척 황금시대를 맞은 게 틀림없어. 아이고, 이성열 씨는 미국에서 왔는데 이거 공연히 문자 쓴 꼴이네.”
이성열은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저 미소만 띄우고 있었다. 홍 사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건설도 좋지만, 중국 특유의 블랙홀 중화사상을 서쪽에 옮기는 사업 이름이 바로 서북공정 아니야?”
나는 불현듯, 지금 한국을 열 받게 하고 있는 ‘동북공정’이 떠올랐다. 동북공정은 그래서 심각하다. 내가 아는 중국은 결코 그 동북공정을 포기할리 없다. 원, 청나라를 세운, 소수민족 역시 중화사상이라는 블랙홀에 녹아들어 중국에 동화 된 것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고구려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주장하는 동북공정은, 결코 쉽게 사그라질 문제가 아니다. 내가 유학을 하며 공부한 중국은, 서두르지 않는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도 않는 나라였다. 이 철도가 그 증거 아니겠는가. 티베트인들조차도 독인지 약인지 헛갈리는 이 칭짱철도 역시, 그 결과물 중 하나 일 것이다. 티베트의 독립 운동에 유혈 진압도 있었다. 독립을 위한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노력에 보내는, 세계의 동정 어린 시선도 있으나 중국의 귀에는 들릴 리 없다. 만만디 정신으로 꾸준하게 중국 서부개척 시대를 준비했고 이렇게 중화시키며 티베트를 열고 있는 것이 증거 아닌가.
“이성열씨, 어제 대진 군에게 하늘호수를 언제 가냐고 묻던데, 그곳 구경하러 이번 여행을 온 거요?”
홍 사장이 내심 궁금했다는 듯 이성열에게 질문을 던졌다. 창밖을 보며 조용히 차를 마시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내 말은, 휴가를 내서 이 먼 길을 올 만큼 하늘호수가 멋진 곳이냐 그 말이오.”
“저도 모릅니다. 제가 굳이 그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설련화(雪蓮花)때문입니다. 히말라야에서만 핀다는 그 꽃의 자생지가, 하늘호수 가라고 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호수도 아니고 꽃 때문에 이 길을 간다? 그거…… 진짭니까?”
이성열의 여행 목적이 하늘호수도 아니고 꽃이라는 말에,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홍 사장이 놀랐다.
“그렇습니다. 물론 티베트 불교 유적인 포탈라 궁과 죠캉 사원에도 관심이 있으나, 저는 그 꽃을 보러 가는 중입니다. 그 꽃을 찾는 게 제 목적입니다.”
이성열의 말에 김기자가 흥미를 보였다.
“그 설련화라는 게, 혹시 한국에서 노란 복수초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가요? 그 꽃 뿌리는 한방과 민간에서 약재로 사용 한다던데.”
이성열은 즉각 고개를 저었는데 눈빛이 아련해 졌다.
“그 꽃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한국 같이 낮은 곳에 피는 꽃과, 내가 찾는 꽃은 전혀 다릅니다.”
“그런 정보를 어디서 얻었어요?”
“자활본초강목(自活本草綱目)이란 책에서 우리는 처음 설련화를 봤지요. 만년설산 하늘호수에서만 자라는 꽃이더군요. 사람의 능력으론 재배가 안 되고 설산의 새들이 먹고 난 후 배설물에 의해 번식이 이루어진답니다.”
“미국에도 그런 책이 있었군요. 그리고 방금 우리라고 했는데 그걸 본 사람이 또 있다는 말이네요?”
김기자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이성열에게 물었다.
“제 아내입니다. 아내는 그 꽃이 가지고 있는, 불치병 치료에 대한 놀라운 효험을 믿지 않습니다만,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의외의 대답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우리를 감쌌다. 이성열은 그 설련화의 약재로서 효능을 믿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침울하게 말했는데 그 분위기로 봐서 그의 아내는 몹시 아프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나의 그런 짐작을 홍 사장도 같이 느낀 모양 이었다.
“만병통치라…… 어떻게 생긴 꽃이오?”
“형태는 연꽃과 비슷하게 외줄기만 우뚝 선 모습이 매우 아름답더군요. 하늘호수 가에 핀 것이 천하에서 으뜸가는 보약이랍니다. 열이 많은 꽃이라 눈 속에서도 피고 있다더군요. 얼음이 얼어도 꽃 주변은 녹아 버리는 설련화지요. 로스앤젤리스에도 한의사들이 많이 있어요. 그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더러 그 꽃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다더군요.”
“정말 그것이 있긴 있는 겁니까?
“그럼요. 우리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집사람은 이미 병원에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도 안 된다고 하더군요. 암세포가 너무 번져 손을 쓸 수가 없으니까요. 병원도 손을 놓은 상황에서 저에게 믿을 것은 이제 그 꽃뿐이었지요.”
나는 가슴이 짠해져왔다. 그 꽃이 그렇게 영험하든 아니던 간에 이성열이 그 꽃에 집착해야 할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북경에서 처음 만났을 때 옹화궁 약사전을 가고 싶다고 말했던 게 새삼 생각났다. 그곳에 티베트 약초가 많다고 말 한 것은, 그곳에서 설련화를 보고 싶어 했던 것일까. 현대의학의 집합체 병원을 전전하며, 아내를 포기하라는 결론을 얻은 이성열이 할 일이 또 있었을까. 죽어 가는 아내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남편의 심정이 오죽할까. 그가 태평양을 건너 올 이유로는 충분했다. 조용한 성격의 이성열이 꽃 이야기에 열을 내는 그 절박한 심정을 나는 알 것 같았다.
“부인은 지금 미국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까?”
홍 사장이 측은 한 표정으로, 다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이성열에게 물었다.
“아내는…… 병원엔 없습니다.”
창에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이성열이 대답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싫었는지 갑자기 이성열이 일어서며 입을 떼었다.
“공연히 저 때문에 분위가 이상해 질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불편해 지니까요. 또한 누구에게나 일어 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가 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끝없는 구릉과 옥수수 밭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침묵을 깨며 홍 사장이 입을 열었다.
“참 안되었네. 이성열씨 나이를 보면 그의 부인도 아직 젊은 사람인데 폐암 말기라니. 병원에도 없다니 거기도 손 든 모양이지. 그런데 대진 군, 하늘호수에 그런 꽃이 정말 있기는 한 거야?”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처음 들어 보는 말이라 서요.”
사진기를 점검하던 김기자가 홍 사장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흔든다.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있다면 벌써 난리가 났지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세상에 그런 만병통치약은 없어요.”
나도 그의 말이 맞는다 싶었다. 티베트에도 의술은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우리나라와 중국과는 다르지만 그들 나름의 의학적 약품과 치료는 존재했다. 그들의 약품은 거의 자연에서 채취한 약초들이었다. 티베트 전문 중국여행사에서, 신비의 땅 티베트의 약을 만병통치나 되는 것처럼 팔아먹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 티베트의 신비가 주는 선입견에 그런지 몰라도, 검증도 없이 그걸 마구 사는 한국인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웃은 적도 많았다. 그러나 설련화라는 것은 처음 들어 보는 약초였다. 홍 사장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마 이성열씨는 어느 허무맹랑한 의서를 보고 그 말을 믿는 모양이지. 한국 종합병원에 가면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얼마나 많아. 말기 환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가짜 특효약을 파는 놈들이. 부인이 죽어 가는데 그거라도 믿고 싶었던 게지.”
쓴 입맛을 다시며 홍 사장은 내 뱉듯 한마디 더 붙였다.
“아무리 가망 없어도 죽어도 병원에서 죽어야지, 퇴원을 하면 어떻게 해.”
“말기 암 환자지만 치료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듭니까. 특히 미국에서 말이죠. 경제적 이유도 있겠지요. 안된 일이네요, 그러니 이성열 씨가 설련화 같은 황당한 이야기에 빠진 거겠지요. 잠깐, 대진 씨 통역 좀 부탁합니다.”
김기자가, 우리 건너편 식탁에 앉아 있는 아가씨를 턱으로 가리키며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말을 시켜 보니 북경에 있는 서북대학교 학생이었다.
“이 철도가 개통 된 후 뭐가 달라졌나요?”
“우리 학교 동기 중 한명이 라싸가 집인 사람이 있는데요, 일 년에 집을 한번 가기도 힘들었어요. 같은 중국인데도 말이죠. 이제는 그런 걱정이 없는 거죠.”
스스럼없이 티베트를 ‘같은 중국’으로 호칭하는 그녀의 말이 내겐 다소 생경했지만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그런 국가의식은 이 기찻길로 해서 더욱 심화 될 것은 분명했다. 중국이 희박한 인구 밀도를 가지고 있는 티베트에 철도를 건설한 백가지 이유 중 또 하나가 되니까.
“어디까지 갑니까?”
“거얼무까지요.”
그곳은 티베트 고원 들머리였다. 거기서 기차는 탕구라 산맥을 넘는다. 공사구간 80퍼센트 이상 차지하는 960킬로미터가 평균 해발 4500미터이다. 그중, 서울 부산 보다 긴 오백 킬로 이상이 영구 동토지역이라면 공사의 어려움에 수긍이 간다. 한마디로 얼음산에 놓인 철도라는 말이다.
“저분은 기자인데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합니다. 되겠습니까?”
“좋아요.”
김기자는 요란스러울 만큼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끝없는 녹색 평원을 달려 란저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쯤이었다. 그 사이 풍경은 또 바뀌었다. 이제부터 녹색이 드물어졌고 황토 산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거대한 황하(黃河) 상류가 보였다. 우리가 종단하려는 티베트 고원을 에두른 니엔칭 탕구라 산맥에서 황하는 발원한다. 이 강은 이름 그대로 시작부터 탁한 황토 빛 흐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갔다면 못 볼 진기한 풍경이었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도 인종이 많이 바뀌었다. 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트 승려와 머리를 땋은 티베트인들. 한 바퀴 돌리면 불경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는 ‘마니차’를 돌리는 할머니를 보니 티베트 땅이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얼굴 모습이, 햇볕에 그을린 우리나라 시골 사람들 표정과 퍽 닮아 보였다. 중국 한족과는 분명히 다른 얼굴이었다.
란저우에서 시닝까지는 불과 3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미 고도가 높아져 시닝은 해발 2000미터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부터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므로 시닝을 실제적으로 티베트 고원의 출발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곳이 예전 티베트의 관문 역할을 한 곳이라 했다. 지금은 중국 당국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해성에 속하지만, 티베트 불교에서 그 위치가 혁혁한 총카파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이 행정개편을 단행하여 티베트 고원을 분할했다. 일부를 청해 성으로, 또 사천 성으로 편입 시켰지만, 그래도 남은 티베트는 남한의 열두 배 크기였다. 시간은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아직 햇볕이 쨍쨍하다. 경도 상으로 볼 때 북경과는 대략 두 시간 이상 차이가 나야 함에도, 북경 표준시를 전 중국에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이미 북경은 해거름이 시작 되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었으므로 나는 침대칸으로 가, 자고 있는 이성열을 깨워왔다. 그는 식당 칸으로 오면서도 검은 가방을 챙겼다. 그건 카메라 가방은 아닌 듯 했다. 나는 한 번도 그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한 잔 하자고. 내일부터 고도를 올리면 술을 못 먹을 테니까.”
술을 좋아하는 홍 사장의 부탁으로 나는 여러 안주를 시켰다. 이성열은 고기는 먹지 않는 대신 술은 사양하지 않았다.
“저기 황하 강 좀 봐. 제법 기세 좋게 흐르는데 왜 마른 강이라는 거야?”
나는 그가 따라주는 맥주를 받으며 대답을 했다.
“여기는 공업단지가 없고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그렇지요. 강 따라 내려가다 보면 엄청 많은 공장과 도시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물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금도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공업용수로도 사용 하지 못 할 이런 뿌연 황토 물도 부족해, 하류로 내려 갈수록 마른 강이 된다는 거군. 이런 강이 인류 문명 발상지 중 하나라는 황하문명이라니 이해가 안 되네.”
그 말을 받아 김기자가 나섰다.
“중국은 물 부족 국가예요. 우리가 가려 하는 티베트에는 만년설 풍부한 물이 녹아 흐르는, 얄룽창포 강이 있는데요 중국은 거기에도 눈을 돌렸어요. 그 물을 건천이 되어 가는 황하로 돌린다는 장수북조(藏水北調) 공정이 그것입니다.”
나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중국은 칭짱철도에 이어 또다시 엄청난 규모의 자연 개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의아해 하는 나를 의식했던지 김기자는 말을 이었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이 방안이 공식 의제로 채택되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그리고 ‘시짱(西藏)의 물이 중국을 구한다'는, 책은 후진타오나 원자바오 총리가 당국자들에게 필독서로 권장할 정도라는 군요.”
놀라운 일이었다. 얄룽창포 강은 나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강이었다. 티베트에서 발원, 히말라야산맥을 감싸고 돈 후 방글라데시를 거쳐 갠지스 강과 합쳐 인도양으로 흘러나가는 아주 큰 강이다. 방글라데시에선 브라마푸트라 강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만약 이 공사가 시작 된다면 유사 이래 최고의 토목 공사가 될 것이다. 우리가 탄 칭짱철도 역시 그 공사에 큰 일꾼 역할을 할 것이다. 일종의 시너지 효과인 셈이다.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술잔을 기우리던 이성열이 뜻밖의 말을 한다.
“다, 제행무상이지요. 모든 건 변하니까요. 사람이 이룬 것은 없어지게 마련이고, 사람이 쌓은 것은 무너지는 거지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거 같아요.”
“야, 그거 좋은 말이네. 이성열 씨는 행동이나 말투가 불교 공부를 하는 사람 같아. 기독교 나라에서 온 사람답지 않게. 혹시 그쪽 공부를 했습니까?”
술좌석에 함께 해 준 게 기쁘다는 듯 홍 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뇨. 그저 아내에게 귀 동냥으로 들은 말입니다. 기후 온난화로 몸살을 앓는 지구의 병은 깊습니다. 그건 문명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결과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 말이 맞는 말이죠. 인간만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온갖 것을 만들어 내고 있죠. 원자탄이 그렇고 플라스틱이 그런 거죠.”
김기자가 그 말에 적극 동의 한다는 듯 거들고 나섰다.
“자연을 무시한 결과는 언제나 치명적 재해로 다가 섰다는 역사의 교훈에서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댐이, 이 철도가 영원하리라는 생각은 맞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탐욕일 뿐이지요.”
이성열은 흡사 도사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내게는 그게 왠지 듣기 좋았다.
“그런데 이성열씨는 비행기로 라싸를 가면 빠를 텐데 왜 힘든 기차를 탔습니까? 그럴 이유라도 있나요?”
“경제적으로 싸게 치니까요. 그러나 그보다는 티베트 불교 공부를 하는 아내에게 이 고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마 이성열의 말은, 나중에 미국으로 귀환하면 아내에게 자신이 본 고원의 풍경을 설명하려는 말 같이 들렸다. 그 말을 이해한다는 듯 홍 사장이 농담을 했다.
“설명하기 간단해서 좋군. 이곳은 나무도 없고 풍경이 단조로우니까. 하하.”
“제가 사는 엘에이 근처에도 모하비 사막이라는 광활한 지평선이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높은 고지는 아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그 사막과 다른 점은 이곳은 불경이 전해진 불법의 길이라는 겁니다.”
“스님들의 이곳을 횡단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을 거야. 그런 땅에 철도가 생겼으니 과연 기지개를 편 중국은 무섭군. 누구도 중국을 다시 잠들지 못하게 할 것이야. 알프스보다 높은 곳에 철길을 놓고 강물을 돌리고, 무섭다 무서워.”
그런 농담 섞인 우려를 하는 홍 사장에게 김기자가 한마디로 정의했다.
“중국은 미쳤어요!”
마침 내, 거얼무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10분 이었다. 침대칸에서 2박 동안, 나와 친해진 승무원이 여기서 고원 기관차와 바뀐다고 귀뜸을 한다. 그 말을 전하니 김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기차 앞으로 달렸다. 여태 우리를 끌고 대륙을 횡단한 기관차가 분리 되고, 하얀 색의 고소 기관차 3량으로 바뀐다. 희박한 산소 속을 달리게 설계된 미국제라 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기관실엔 중국인과 함께 엔지니어처럼 보이는 백인이 타고 있다. 중국 대륙 3000여 킬로미터를 끌고 온 저소 기관차는 이곳에서 아웃 되었다. 야구에서 9회 말 나타난 구원투수처럼 나머지 구절양장 힘겨운 칭짱철도 1142킬로미터를 끌고 갈 구원투수 기관차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진정한 하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칭짱철도는 세계 철도사의 기적’이라고 했던 후진따오 말대로, 이제부터 그 현장을 눈으로 목격한다는 말일 터였다. 기차로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한국의 영동선, 심포리역의 스위치백을 생각했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후진하며 한 계단 오르는 스위치백. 그런 오름을 계속 반복하며 티베트 고원을 오르는 건 아닐까 생각 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역시 작은 나라에서 온 나그네의 상상이었다. 3량의 고소 기관차로 바꿔 단 우리 기차는, 직선으로 티베트 고원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사진을 찍는다고 설치는 바람에 잠이 달아 난 우리는, 일찍부터 식당 칸에 모였다. 아직 창밖은 어두워 사물을 분간 할 수는 없었으나 세계의 지붕을 관통하는 풍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김기자는 노트를 꺼내 무엇인가 적고 있고, 식당은 아침 준비로 부산했다. 그때 중국어와 티베트어, 그리고 영어로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산소를 공급한다는 말이었다. 천장의 에어컨에서 슈-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가 나오기 시작했다. 의자 밑에도 노즐 구멍이 있어 그곳에서도 산소가 나온다. 그럼에도 고소 증을 견디지 못 하는 사람을 위해 승무원은 고무 튜브로 된 산소 호흡기를 나누어 주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처럼 의자 아래, 혹은 곁에 있는 산소 구멍에 그 튜브를 꼽고 콧구멍에 대는 것이다.
아침커피를 마시던 김기자가 갑자기 생각 난 듯 말했다.
“중국 말 중에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게 있어요.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말이지요."
“그게 무슨 말이오?”
홍 사장이 뜬금없는 그 말이 의아한 듯 물었다.
“이 산맥을 처음 넘은 사람은 고선지 장군입니다. 고구려 유민이었지요. 당나라 때 티베트는 토번이라는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당나라와 힘을 겨룰 정도였으니까요. 안서도호부의 책임자로 임명 된 고선지 장군은 당나라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토번을 제압합니다. 그러나 안녹산의 난 때 참형을 당하지요.”
“그게 이이제이와 무슨 관계가 있지요?”
“오만한 중국은 자신 들 말고는 모두 오랑캐로 불렀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들 눈에는 마찬가지였지요. 중국 동쪽에 있는, 오랑캐 이(夷)자를 써서 동이(東夷)족이라 불렀으니까요. 동북 변방의 고구려 고선지를 서북 변방의 토번과 싸움 시키고, 이용해 먹다 참형시켜 버린 이야기가 그거 아닙니까.”
“역사는 잘 모르지만 참 허망한 일들이야. 그게 이 철도와 무슨 연관이 있나?”
“이 정도 고소라면 처음 오르는 인간에겐 산소가 필요합니다. 기차에서 산소를 품어 내는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고소적응이 필요 없는 티베트 현지인 이거나, 산소마스크가 필요한 중국인이겠지요.”
“산소마스크를 쓰고 무슨 노동을 해.”
“그렇지요. 자기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 중국인으론 안 되니, 고산족 티베트 인들을 동원해 하늘 철도를 놓은 거지요. 그 철도가 자신의 나라에 어떤 결과를 초래 할지도 모른 채, 티베트 인들은 건설에 동원 된 게 아니었을까요?”
나는 그 말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어붙은 영구 동토 칭짱 고원을 횡단한다는 철도공사는, 금세기에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프로젝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알프스 터널을 완성한 스위스의 터널 건설 전문가조차 동토 때문에 공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동토 층을 육중한 기차가 달리면 땅이 녹아들고 그럴 경우 철로가 휘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올 거라고 주장했다. 그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반 시설에 파일을 박거나 통풍용 관로를 묻어 철길을 만들었다고 했다. 중국으로서는 첨단 건설기법을 사용한 셈인데 칭짱철도엔 교량이 눈에 많이 띄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겠다. 이 모든 공정의 노동력은 티베트 인들이 거의 감당한 것이었다.
우리 칸의 남자 승무원 한 명이 아침을 먹으러 식당 칸으로 건너왔다. 김기자의 통역을 맡아 대화를 나눴다.
“야크가 철길에 뛰어 든다던가 고소 증에 사람이 상한 일은 없는가?”
“동물과 충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들이 철로에 못 들어오게 팬스를 쳐 놓았기 때문이다. 고소 증에 사람이 죽은 일은 없다. 다만, 피를 토하는 사람은 몇 명 봤다.”
그 말은 틀렸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내가 챙긴 자료에 의하면 철도가 개통한 한 달 사이에, 이 기차에서 고소 증으로 죽은 사람이 무려 9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은근히 고소 증에 대한 두려움이 술 좋아하는 홍 사장 주의를 환기 시킨 것이다.
“환경은 많이 파괴 되었을 텐데?”
“우리 중국은 칭짱철도 운행에 따른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우리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연 보호 구역을 많이 지정하였고, 인공 구조물을 최소화 했다. 동물 보호를 위해 철길 양쪽에 방책 막도 만들었고.”
“성공적이었나?”
“그렇다. 세계 최고 높이의 철도기 때문에 사례가 없어 많은 고생을 했다. 생태계 파괴의 최소화를 위해 노력 했고. 정부는 칭장철도 주변의 환경보호를 위해서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 이는 여태까지 제일 큰돈을 드린 셈이다. 열차에서 사용한 물은 모두 정화처리 후 방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럴 것이다. 그만큼 중국 당국도 원시의 이 고원을 보호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만이다. 어제 이성열의 말대로 언제나 자연의 적은 인간뿐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며 상대적으로 고도는 자꾸 높아 갔고 날이 밝기 시작했다. 거얼무에서 라싸까지 기차는 낮 시간만 운행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었다. 아마 불안한 지반이 안정적 일 때 통과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남은 여정 14시간은 낮 시간이고 질리도록 티베트 고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기 좀 봐요. 야크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내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일행의 눈이 몰렸다.
“저게 야크야? 고산에서만 사는 소란 말이지?”
김기자가 카메라를 들이 대며 신기한 듯 말했다. 날이 밝아 오고 드디어 고산의 상징인 야크가 보이기 시작한 걸 보면 제법 높이 올라 온 것 같았다. 끝 간 데 없는 구릉과, 우기 철이 끝나가므로 파릇하게 살아 난 초원의 세계였다. 가뭇하게 보이는 쿤룬 산맥의 만년설과 호수, 그리고 파릇한 초원과 투명한 하늘의 대비는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기차는 쿤룬산맥의 옆구리를 감거나 뚫고, 대형 파노라마 영상을 활동사진처럼 보이며 대 평원을 내달렸다. 주인이 있는 것인지, 야생인지 모를 말무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식당 칸의 양쪽 대형 유리창은 흡사 화면 같았다. 움직이는 커다란 스크린을 양 옆에 두고 우리는 아침 식사를 했다. 신기하지만 매혹적 풍경은, 여태까지 어두운 표정의 이성열 마음까지 들뜨게 만든 모양이었다.
“아까 김기자가 말했지요? 유목민이었던 티베트인들이 만든 강력한 국가에 토번이 있었다고. 질펀하게 펼쳐지는 고원을 바람처럼 달리는 이 기차처럼, 티베트 인들도 그렇게 달려 대 제국을 건설했었지요. 세계를 정복한 몽골처럼, 티베트의 토번 제국은 저렇게 초원을 뛰노는 말에서 나온 겁니다.”
우리가 그를 바라보는 것이 쑥스러웠던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나 다 허망한 일입니다. 몽골과 토번이 함께 믿던 국교가 티베트 불교예요. 라마 불교라고도 하지요. 스님을 티베트에서는 라마로 부르니까요. 티베트 불경에 어제 제가 드린 그런 말이
신영철
내가 북경여행사 왕차오 사장의 전화를 받은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조용한 분위기에 신경 쓰여 밖으로 나오니 뜨거운 열기가 훅 - 달라 든다. 왕사장이 내게 전화를 건 용건은 가이드 겸 통역으로 티베트를 갔다 오라는 말이었다. 지난달에 개통되어, 전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칭짱철도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고 했다.
왕사장의 말을 듣고 나는 내심 놀랐다. 왜냐하면 그 기차표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도를 통해 알기 때문이다. 중국의 각종 보도 매체는 지금도 열을 올려 이 철도의 개통을 홍보하고 있었다. 이곳 미디어들은 사회주의 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관영매체답게 이 철도의 개통을, 현대 중국의 눈부신 과학적 업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자세한 상황을 듣기 위해 사무실로 방문하겠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티베트는 이미 한국 손님을 인솔하여 한번 가 본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티베트와 인접한 ‘쳉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간 것이다. 그러므로 기차타고 그곳을 간다는 건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금단의 땅, 은둔의 땅, 세계의 지붕이라는 수식이 낯설지 않은 곳이 티베트였다. 그 엄청난 높이의 고원을 기차 타고 횡단한다니.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티베트 고원은 다른 땅과 다를 게 없었다. 다만 하얗게 만년설을 이고 있는 쿤룬 산맥과 히말라야 연봉이 인상적이었을 뿐이었다. 문명과는 거리가 먼 그 높은 산맥과 고원을 기차 타고 넘는다는 여정에 슬며시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가을 학기 개강이 얼마 남지 않아 시간이 어떨지 궁금했다. 나는 날짜를 꼽아 보았다. 석사 과정 마지막 학기가 9월에 시작 되니 여행과 겹친다면 아쉽지만 갈 수 없었다. 왕사장이 전화 한 걸로 보아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이겠지만 손님보다도 궁금한 건 기차였다.
8월의 북경은 덥다. 거기에 지독한 스모그까지 합세해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든 곳이 북경이었다. 안정대로 큰길가에 있는 북경여행사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시원한 냉방이 반가웠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던 뚱뚱한 몸집의 왕사장이 나를 반겼다.
“니하오. 대진, 기차표 구하기가 보통 힘들었던 게 아냐.”
“그렇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구했어요?”
“평소 잘 알고 있는 높은 사람 신세 좀 졌지. 콴시 덕분이야. 아마 한국인으로서 이 기차를 타는 건 대진이 처음일거야.”
뚱뚱한 몸을 흔들며 왕사장은 기차표를 확보한 이야기부터 꺼내 놓았다.
“중국에선 콴시…… 대진, 한국말로는 그걸 뭐라고 하지?”
“관계라고 번역 되지만 그 보다는 유대관계 쯤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네요.”
신흥개발도상국 대열에 들어선 중국은 부정부패가 심각했다. 그건 이 나라의 오랜 관습이었는데, 모든 거래에 있어 콴시를 아직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의 폐해는 많았으나 그걸 무시하고는, 규모가 크던 작던 중국서 사업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왕사장은 능력 있는 사업가였다.
“여행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열흘간이야. 출발은 이틀 후 북경 서역이고. 한국에 있는 여행사에서 우리에게 보내준 손님은 모두 세 명이고.”
열흘간의 여행이라면 대학원 개강일자에는 문제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내가 공항으로 픽업을 가야겠지요?”
“그렇지. 이틀 후 저녁 2시 30분에 아시아나 항공 편으로 북경 공항에 도착한다는군. 잘 갔다 오라고. 대진도 기차를 타고 티베트를 가는 건 처음이잖아. 중국 사람들이라면 내가 직접 갔을 텐데.”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왕사장은 눈을 찡긋 거리며 나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손님 신상 명세와 기차표, 그리고 티베트 라싸에 있는 호텔 예약 표였다. 그중에는 ‘입경허가서’라는 것도 있었다. 티베트 자치구는, 신강위구르와 함께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운동 기운이 있는 곳이라, 외국인들에게는 이 서류가 필요했다. 유학생이지만 한국인이므로 내 이름도 당연히 그 명단에 있었다. 이 서류 때문에 왕사장은 티베트 여행객들에게 비싼 요금을 받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기차만 처음이지 티베트는 몇 번 가보았으니까 문제없을 거야.”
“한국에서 오는 손님은 뭐 하는 분들입니까?”
“그건 몰라. 그 사람들 입경허가서 때문에 여권 복사본만 팩스로 받았으니까. 전부 남자라는 것만 알고 있어. 잘 갔다 오라고.”
북경여행사를 나서며 나는, 역사만 발전하는 게 아니라 길(路)도 진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마득한 히말라야 변방의 티베트에 기차 길이 열렸다니. 서둘러 숙소로 돌아 온 나는 티베트에 대하여 자료를 찾아 놓았다. 전공이 중어 중문학이니 ‘시짱자치구’라 불리는 그곳의 인문적 상식은 대충 있었다. 산소가 희박한 만큼, 인구 밀도도 희박한 그곳에 철길을 놓은 중국의 속내야 이미 세계가 다 알고 있었다. 티베트를 병합한 중국의 정치, 군사, 경제적 뜻에 따라 만들어 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평균 해발 4500미터가 넘는, 그 티베트 고원을 수 천 톤의 기차가 올라간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티베트가 어떤 곳인가. 높기도 하거니와 쿤룬산맥, 탕그라 산맥, 히말라야로 에워 쌓인 불모의 땅이다. 하다 못 해 헬리콥터 조종 교본에도, 비상시 아니면 절대로 체류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아득한 높이의 땅덩어리 아닌가.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지도상 공백으로 남아 있던 곳. 고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동토 층인데, 그곳을 기차가 올라간다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여행 준비를 끝낸 내가 가방을 끌며, 북경 공항 제 2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북경의 끔찍한 교통지옥 때문에 서둘렀는데도, 손님 비행기 도착 시간을 겨우 맞춰 도착한 것이다. 비행기가 쏟아 낸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출구 앞에 선 나는, 북경여행사 로고가 박힌 종이를 펴 들었다. ‘홍인수, 이성열, 김석우님 환영합니다.’라고 써진 글이었다.
나에게는 매번 이럴 때가 긴장되는 순간이다. 미리 보았던 그들의 여권 사본에서 홍인수가 나이가 제일 많은 마흔 두 살이었고, 이성열이 서른다섯 살, 김석우가 서른 두 살이었다. 그 외에 그들의 직업이라든가 성격 등 다른 정보를 알 길이 없었다. 그들 모두가 일행인지, 아니면 한국 여행사에서 개별적으로 접수한 사람들인지도 나는 몰랐다. 그러므로 손님을 처음 대면하는 지금 내가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여자가 한명도 없다는 것은, 티베트가 쉽지 않은 여행지라는 걸 반증하는 건지도 모른다. 열악한 숙소, 끔찍이 더러운 화장실, 기압 차이에 따른 두통을 생각 할 때 티베트는 관광지로서 어울리는 곳은 아니었다. 여행이라면 좋은 곳도 많은데 하필 그런 곳을 가려는 이들은 뭐를 하는 사람들일까.
또 다른 비행기가 또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들고 있는 환영 문구를 보고 누군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내가 기다린 손님이 분명했다. 조금 살이 찐 몸집에 고어택스 등산복 상의를 입은 중년 남자였다. 그리고 뒤쪽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두 사람에게 나를 가리켰다.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해 오는 그들의 첫 인상은 좋았다.
“여러분의 티베트 여행 통역과 안내를 맡을 고대진입니다. 북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갑구먼. 대진 씨라고 하셨나? 인상이 좋군. 나 홍인수라라고 해요.”
홍인수는 첫 대화부터, 경어도 그렇다고 반말도 아닌 말로 네게 인사를 해왔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성격이 시원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뒤 끝이 없다는 걸 나는 안다. 홍인수는 기분 좋은 웃음으로 곁의 일행을 소개 시켰다. 이성열이라는 사람은 마른 체격에 키가 크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상의는 물론, 바지와 어깨에 맨 가방까지 검은 색 일색이었다. 김석우라고 소개 받은 사람은 작은 키에 좀 날카로운 눈매와 다부진 몸매를 하고 있었다. 그 역시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었다.
“기차 출발은 저녁 9시 30분입니다. 그 동안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실 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자금성을 대충 도는 관광 정도는 충분한 시간인데요.”
“비행기에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눴는데, 모두 관광에는 흥미가 없다는 군.”
비행기에서 말을 나누었다는 홍인수의 말은, 이들이 일행이 아님을 뜻했다.
“일행이 아니신가보죠?”
“우리는 인천 공항에서 처음 만났지. 한명씩 따로 따로 온 거요. 특히 이성열 씨는 미국에서 온 교포더군. 그러나 이제 열흘 동안 우리는 한 팀이 되는 거요.”
그 말에 이성열을 바라보니 그는 긍정의 표시인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기차 시간까지 어떻게 보내는 게 좋겠습니까?”
“출발지 북경 서역 근처로 이동해서 어디 괜찮은 식당으로 갑시다. 저녁과 함께 술 한잔 나누며 단합 대회를 하지요. 어떻습니까?”
홍인수는 나머지 두 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럴 때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나서서 이리저리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리더가 되어 주면 일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먼 길 출발을 앞두고 단합자리도 괜찮은 일이지요.”
김석우가 적극적으로 찬성 의사를 밝혔다.
“잠깐만요. 대진 씨. 옹화궁(雍和宮)이 이곳에서 먼 가요? 가능하다면 나는 그곳에 들렸다 출발 기차역에서 만났으면 싶은데요.”
이성열이었는데 특이한 부탁이었다.
“티베트 라마 불교 사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대진 씨가 택시를 태워주면 그곳에 갔다가 시간 맞춰 역으로 가면 안 될까요?”
“그건 좀 힘들어요. 옹화궁은 북경시 동북쪽에 있는데 아마 그곳에 도착하면 문을 닫을 시간이 될 겁니다. 이곳은 서울 보다 더 교통 체증이 심해요. 아 참 미국에서 오셨다고 했지요?”
이성열의 얼굴에 실망의 언 듯 빛이 스쳤다. 일반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라마 사원을 간다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시간이 맞지도 않지만 중국말을 못하는 그를 혼자 보내는 것도 나로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꼭 그곳을 가야 합니까?”
이성열과 나누는 대화를 듣던 홍인수가 나섰다.
“아니…… 꼭 가야 할 이유는 없어요. 티베트 가는 기차 시간이 남는다기에 그런 생각을 해 본 겁니다.”
“그럼 내 말대로 식당으로 갑시다. 첫 날부터 이산가족이 되면 안 되니까요.”
“그러지요. 뭐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공항 택시 정류장으로 그들을 안내 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려면 한참 걸려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잠시 공항으로 되돌아갔다 온 홍인수가 웬 사내를 한명 데리고 돌아왔다. 자가용 택시영업을 하는 소위 조선족 삐끼였다.
“이 사람 차를 타고 갑시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그게 빠를 것 같군요.”
내가 무색해 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홍인수는 사람 좋은 웃음을 띤 채 말했다.
“대진 군, 가이드 역할에 월권을 한 게 아니요. 아까 나올 때 이 사람이 계속 따라 붙었다니까. 하하.”
삐끼를 따라 주차장으로 간 우리는 짐을 차 트렁크에 실었다. 내가 이성열이 든 검은 가방을 받아 실으려 했을 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카메라 가방인 듯싶었는데 차 안에서도 이성열은 그 가방을 꼭 잡고 있었다.
“중국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군. 오히려 서울보다 더 커진 것 같아. 빌딩도 다 새것이고. 북경 인구가 얼마나 되지?”
달리는 차 안에서 홍인수가 물었다.
“대략 천오백만 쯤 됩니다. 그건 북경 거주 증명이 있는 사람이고, 그 밖에 체류하거나 일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을 합치면 이천만이 넘는다는 말도 있어요.”
“북경에 살려면 거주 증명이 있어야 하나? 같은 중국인인데.”
내 말이 의외라는 듯 홍인수가 물었다. 김석우가 나대신 나서서 설명을 한다.
“일종의 고육지책이지요. 만약 아무나 북경에 살게 한다면, 한 일억쯤 금방 몰려 들 거예요. 인프라나 사회적 혼란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어요.”
“그것 참, 별난 일도 다 있군.”
창밖으로 눈을 돌리며 홍인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석우는 중국에 대한 이해가 상당한 듯 보였다. 차는 교통 혼잡으로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서역 근처 대동호텔에 도착했다. 특급호텔답게 냉방이 잘 되어 아주 시원했다. 식당을 찾아 자리를 잡은 우리는 음식과 찬 맥주를 시켰다.
“팔월의 북경은 참 덥군. 그런데 대진 군은 군대 갔다 왔나?”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홍인수가 질문을 해왔다.
“그럼요. 육군으로 군을 마쳤습니다.”
“유학생인가?”
“네. 한국에서 중문학 전공 졸업 후, 이곳 청화대학에서 석사과정 중입니다.”
“일류대학이네. 북경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이잖아. 그럼 가이드 일은 아르바이트고?”
“그렇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하고 있죠.”
“관광 가이드라, 아주 좋은 아르바이트구만. 우리는 돈 내고 오는데 대진 군은 관광 공짜로 하고 거기에 돈까지 버니 말이야. 하하.”
홍인수의 거드는 말은,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였다. 당연히 매번 하던 모범 답이 나왔다.
“가이드 참 힘든 직종입니다. 이거, 아르바이트라 하는 거지 직업으로 생각했다면 당장 그만 둘 겁니다.”
“어째서? 관광지 자료만 챙기고 중국말 통역만 하면 되는 건데?”
“관광지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이 나라 사정도 꿰고 있어야죠. 주변국가와 관계까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해요? 인터넷 뒤져 나오는 정보 가지고는 손님에게 감동을 줄 수 없어요.”
“햐- 감동까지나. 이거 우리 가이드 잘 만난 것 같구먼.”
“그리고 손님이 얼마나 다양합니까. 아이 어른, 남자 여자. 그중엔 저를 하인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여행가이드는 참 힘든 직종입니다.”
이런 말은, 손님들에게 미리 해주는 일종의 자기방어이자 경고 같은 것이었다.
“그건 맞는 말이에요. 쉽게 돈 버는 게 세상엔 아무것도 없어요.”
자스민 차를 마시던 김석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음식의 푸짐함에 이들은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성열은 채식 주의자처럼 자신의 접시에 야채만 골라 담았다.
“자- 장도를 위하여 한 잔 합시다.”
가득 찬 맥주잔을 들고 홍인수가 기분 좋게 말했다. 우리는 그가 든 맥주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이제 함께 열흘을 보내야 할 텐데 서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나는 한국에서 작은 무역 관련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홍인수라 합니다. 사업을 위해 티베트를 가는 겁니다. 티베트 특산물 카펫이 주 품목인데 비행기로 실어 나르려니까 채산이 맞지 않아요.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어요. 우리가 타려는 기차로 말미암아 물류비용이 획기적으로 줄 것이니까. 그걸 알고 싶어 왔어요.”
어쩐지 시원스럽고 손이 크다 생각했는데 무역업체의 사장이었다. 그것 보다 내가 놀란 것은, 개통 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기차를 놓고 벌써 손익 계산을 하는 점이었다. 홍 사장을 이어 김석우가 일어섰다.
“저는 H신문사 근무하는 김석우입니다. 이번에 새로 개통된 칭짱 열차에 대하여 취재차 여기에 왔습니다. 제가 이번에 취재하는 기사는 사진과 함께 우리 신문에 연재할 계획입니다.”
눈매가 날카로워 보인다 싶었는데 역시 김석우의 직업은 기자였다.
“저는 이성열이라고 합니다. 거주하는 곳은 미국 로스앤젤리스입니다. 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힘들게 휴가를 얻어 이곳에 왔습니다. 꼭 티베트를 가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자세한 말씀은 나중에 천천히 나누도록 하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머뭇거리며 말을 마친 이성열의 눈빛에 잠시 쓸쓸함이 흐르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미국에서 온 사람이 북경에 있는 티베트 불교 사원인 옹화궁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곳은 일반인이 잘 찾지 않는 곳인데 그곳을 가고 싶어 한 이유는 뭘까.
김기자가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대진 씨,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주의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 주세요.”
“우선 고소증을 조심해야 합니다. 기차가 오천 미터를 넘어 가니까요. 제가 몇 가지 약은 준비해 왔어요. 천천히 움직이고 물을 많이 드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독립 운동이 벌어지는 민감한 곳이니까, 김 기자님은 가능한 조심스럽게 취재하는 게 좋겠는데요. 게엄령 중인 그곳은 기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김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표시였다. 맞은편에 앉은 이성열이 시선을 내게 고정시키며 물어왔다.
“대진 씨, 우리가 하늘호수는 언제 가게 되는지요.”
“아, 예. 계획서에 나온 하늘호수 말씀이군요. 그 호수는 원래 ‘남쵸’라고 합니다. 티베트어로 '남'은 하늘을, '쵸'는 호수를 말하죠. 지구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하늘호수라는 별명을 얻은 거예요, 해발이 사천 칠백 미터가 넘기에 곧바로 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라싸에서 관광을 하며 고소에 적응 된 후 그곳을 가게 됩니다.”
이성열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 대하여 흥미를 느꼈다. 티베트가 재미있는 여행지임엔 틀림없으나, 태평양을 건너고 다시 서해를 건너 올 만큼 그리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차차 그에 대하여 알게 될 것이다. 그의 말은 내 입을 거쳐 통역이 될 것이니까. 자신의 맥주 컵을 단숨에 비운 홍 사장이 내게 잔을 권했다.
“예전엔 티베트를 가려면 비행기뿐이었는데 이렇게 기차를 타고 갈 줄 꿈에라도 알았을까. 참 세상 좋아 졌어.”
“그럼요. 좋아지고말고요. 실크로드가 옛날 옛적 이름이라면, 이제 철길이 깔렸으니 우리가 가는 길은 스틸로드라고 불러야겠지요. 그래서 제 글 제목도 ‘스틸로드 따라 티베트를 가다’라고 뽑을 예정입니다.”
김기자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내가 챙겨 본 자료도 그렇게 밝히고 있었다. 티베트 고원도 광의의 실크로드 중 하나였다. 우리가 익히 알던, 우루무치를 통해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가 아니라, 티베트를 종단하여 중국과 인도를 오가던 길이 존재했다. 혜초 스님 이전에도 네 명의 신라스님이 우리가 갈 고원을 경유하여 인도로 성지순례를 떠났었다. 티베트와 인도 사이, 히말라야 고개 ‘나투라’가 그 고개 길이다. 아득한 옛날, 목숨을 담보한 채 몇 년을 터벅터벅 걸었을 실크로드를 우리는 기차 타고 가려고 모인 것이다.
“여러분이 북경여행사를 선택하신 건 잘한 일입니다. 그 기차표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까요.”
“알아. 한국에서 이곳저곳 문의를 해도 기차표 때문에 아예 안 된다더군. 인연이 되려니 이렇게 당신도 만났고 기차도 타게 된 셈이지. 안 그래요?”
홍 사장은 주변의 동의를 구한다는 듯 좌중을 휘 둘러 보았다.
2006년 칠월에 개통 된 T27 북경-라싸 간 기차는, 하루 한 대 뿐이었다. 표는 연일 매진되어 도저히 구할 길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중국인들에게도 티베트는 미지의 세계였고, 중국은 후진따오 주석까지 나서서, 이 하늘 철도 건설을 칭송하고 있었다. 중국 언론들은 이 기찻길에 티엔루(天路), 즉 하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짝퉁 천국이었던 중국 기술도 이제는 만만한 게 아니야. 대진 군이 이곳에 사니까 잘 알겠네. 어떻게 생각해요?”
“사장님 산샤 댐 아시지요? 양자강을 막아 버린 엄청난 토목 공사. 무려 백 구십 만 명이나 이주시킨 세계 최대의 댐. 그것 완공과, 선저우 유인우주선 발사, 그리고 이 하늘 철도 개통을 근대 중국의 3대 업적으로 당국은 홍보하고 있어요.”
“그래 맞아, 예전의 중국이 아니지. 원자 폭탄 수소폭탄에 유인 우주선까지 자체 기술로 만드는 중국이니까.”
“이 기차 개통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니까 엄청나게 인파가 몰렸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여행 자제를 호소하는 방송이 자주 나와요. 웃기는 일이에요.”
사실이 그랬다. 중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인해전술 아닌가. 중국 당국의 대대적 개통 홍보로 인해 엄청난 사람들이 그것을 타려고 대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몰리는 사람들을 포용할 인프라가 라싸에는 절대 부족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행사에서는 아예 손님을 받지 않는 사태를 야기했다. 당연히 라싸행 기차표는 귀하신 물건이 되었지만, 왕사장의 수완으로 그 문제가 해결 된 것이다.
“그런데 이성열씨가 가려던 그 뭐라던가, 옹화궁인가 그곳이 어떤 곳입니까?”
문득 생각났다는 듯 홍 사장이 이성열에게 화제를 돌렸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라마 불교 사원이라는 것 밖에요.”
“그럼 가이드가 잘 알겠네. 거기가 어떤 곳이지?”
“청나라 때 강희 황제의 넷째 아들을 세종옹정이라고 하는 데요, 그 사람이 살던 저택이었습니다. 세종옹정이 황제가 되어 즉위 한 이래 티베트 불교사원으로 바뀐 거지요. 황제는 아주 독실한 라마 불교도였던 모양입니다.”
이럴 때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는 질문이었으니까. 가이드 일을 하며 느낀 바로는 손님의 질문에 즉답이 안 나오면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절에서 볼 게 뭐야? 유명한 게 있다면.”
“만복각에 있는 부처님이지요. 티베트의 달라이라마 7세가 건륭황제에게 바친 것이라고 하는데 엄청 커요.”
그때 이성열이 내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그 목불이 나닙니다. 그 절에 있는 약사전(葯師殿)을 보고 싶었어요. 그곳에는 티베트 약초표본이 많이 있다더군요. 라마 스님들이 그곳에서 티베트 전통 의술을 공부했던 장소라고 해서 가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이성열에게 궁금증이 일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북경 주변 관광지를 많이 다녀 보았으나 옹화궁을 가겠다는 사람은 드물었다. 높이 십팔 미터의 거대한 나무 불상에는 관심이 없고 약사전에 관심이 있다는 말도 생경했다.
기차시간이 되어 우리는 일어섰다. 티베트 수도 라싸로 가는 칭짱철도 출발지는 북경 서역이었다. 자금성 성문을 닮은 거대한 구조물이 인상적인 역전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역 구내에는 겁을 주듯 ‘티베트를 여행하려는 외국인은 입경허가서를 받아야 된다’라는, 공고문이 붙어 있다.
나는 짐꾼을 동원해 다른 출구로 미리 기차에 탑승 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이 내가 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배운 노하우였다. 중국에서도 가장 쾌적한 기차라는 소문대로, 왕사장이 사 놓은 4인용 침대칸은 깨끗했고 제복의 승무원들 역시 친절했다.
밤 9시 30분 정각, 라싸행 기차가 사람들을 꽉 채운 채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드디어 출발하는군. 아까 보니 식당 칸이 있던데 그리로 가서 한잔 더 합시다. 역사적 대장정을 나서는데, 또 초저녁인데 잠이 오겠어요?”
한 칸에 양쪽으로 2단 층으로 된, 각자의 침대에 짐을 정리한 후 홍사장이 우리를 채근했다. 대동호텔의 저녁 값도 그가 냈지만 또 한잔 사겠다는 말이었다.
“저는 좀 쉬는 게 좋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끼리 갔다 오시죠.”
이성열은 예의 그 검은 가방을 맨 채 침대에 앉아 사양을 했다. 홍사장의 말대로 잠 들 시간은 아니었기에 김기자와 나는 그를 따라 식당 칸으로 갔다.
“대진 군이 안주는 알아서 시키라고. 중국 물가가 싼 게 이럴 때는 고맙다니까.”
나는 고량주와 거기에 어울릴 몇 가지 요리를 시켰다.
“과연, 후년으로 다가온 북경 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질까요? 말은 안했지만 북경의 스모그는 정말 대단했어요. 이제 그 공해로부터 해방되어 청정 티베트로 간다니 기분 좋군요.”
김기자의 말대로 첫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나도 가슴이 설레었다.
“대진 군, 우리가 지금부터 몇 킬로미터를 달려가는 거요?”
홍사장의 질문이었다.
“자료에는 4065킬로미터로 나와 있습니다. 서울 부산 열배니까 대단한 길이죠.”
“몇 시간이나 걸리지?”
“한국의 무궁화 호 속도로 47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이걸 칭짱철도로 부른다는데 맞나?”
“아닙니다. 칭짱철도와 연결 될 뿐이지요. 기존 철도로 청해성의 거얼무에 도착하면, 거기부터 티베트 고원을 넘어 라싸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칭짱철도입니다. 그게 이번에 개통 된 겁니다.”
“그렇군. 그럼 높이는 얼마나 올라가는 거야? 이 기차로 말이지.”
홍사장이 궁금한 것처럼 김기자도 내 설명에 귀 기우리고 있었다.
“세계 최고 높이를 달리는 기차는, 당연히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역인 탕그라 역을 지납니다. 그 역은 알프스 몽블랑보다도 높은, 해발 5072미터나 됩니다.”
외워 놓은 설명을 하며 나는 다시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수 천 톤의 이 육중한 쇠붙이가, 알프스 산맥 보다 높은 곳을 오른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홍 사장님. 고도가 높아지면, 술을 많이 마시지 못 할 거예요. 고소증 때문에 지독한 두통에 시달릴 테니까요.”
“아직 이곳은 괜찮아. 평지인데 뭘. 그때는 조금만 마시지 뭐. 농담이겠지만 후진따오 주석 만나기보다 힘들다는 표를 구했으니 축배를 들 이유로는 좋잖아.”
홍 사장은 술을 꽤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카펫까지 깔려 있는 식당은 꽤 품위가 있어 보였고, 그곳은 기차여행을 마치는 라싸까지 우리 단골 쉼터가 되었다.
“이 카펫은 싸구려야.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 낸 것이지. 내가 취급하는 티베트 카펫과는 품격이 달라. 모두 손으로 만든 수제품이니까 당연히 값도 비싸고. 하하.”
전문가답게 홍 사장은 식당 바닥에 갈린 카펫 품평을 했다.
“이성열씨도 이리 같이 왔으면 좋았을걸. 술을 많이 못하나 보지?”
축배를 함께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에선지, 홍사장이 그렇게 말했는데 그 말을 김기자가 받았다.
“무슨 걱정이 있는 사람 같지요? 미국에서 일부러 여행을 왔으면 다 툭 털어 버리고 즐겁게 어울리면 좋을 텐데.”
“지금이라도 불러 올까?”
“에이, 내버려 두세요. 피곤하다는데 쉬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홍 사장의 사업 이야기와 김 기자의 취재 계획 등, 여러 대화를 나누다 침실로 돌아오니, 2층 침대의 이성열은 벌써 잠들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혼곤한 잠을 자고 일어 난 사이, 이미 기차는 낯 선 풍경 속을 달리고 있다. 차 창밖으로 희붐한 아침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유학 오기 전, 보았던 전라도 김제 평야가 생각났다. 그곳에서만 지평선이 보이는 줄 알았는데 이곳 역시 그랬다. 창밖으로 질펀한 옥수수 밭이 끝 간곳없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경작 가능한 땅이 많으므로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도 먹을거리는 넘쳐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넓은 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경작 가능한 땅으로는 세계 최고 넓이의 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진시 황릉으로 유명한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시안(西安)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30분이었다. 중간에 한번 정차 한 후 꼬박 12시간을 달려 온 셈이다. 이 기차는 라싸까지 통과하는 각 성의 성(省)도 6개 도시만 정차한다. 말 그대로 급행이라 할 수 있는데, 성 하나는 우리나라 몇 배의 크기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기절하듯 푹 잠자고 아침에 깨어나면 힘이 솟는다. 그것처럼 중국도 질곡의 역사를 뒤로 하고 거듭 깨어났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직, 북경 도심지에서 인력거 끌며 휴대폰 거는 혼돈이지만 이제 누구도 중국의 힘과 저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세면을 마친 후 아침을 먹으러 다시 식당 칸으로 모였다. 어제 저녁 매상을 올려준 덕분인지 복무원이 웃는 얼굴로 반긴다.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켰고 일행들은 그것들을 맛있게 먹는데, 이성열만은 청채라 불리는 야채와 밥만 먹는다. 역시 그는 채식주의자인 모양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커피를 시켰다. 침실로 돌아가 봤자 낮잠만 잘 터였으니까.
“마치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보는 것 같아. 이 넓은 땅을 먹어치운 후 기차 길을 깐 중국의 서북공정을 보면 말이지.”
창밖으로 질펀하게 펼쳐진 평원을 보며 홍 사장이 부러운 듯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시던 김기자가 그 말에 동의라도 하듯 맞장구를 쳤다.
“정확히는 서남공정이에요. 물론 큰 뜻으로는 서북공정에 포함되지만요. 중국 땅이 넓다고 하지만 티베트 고원이 사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어요. 티베트가 독립 운운 하나 결코 중국은 티베트를 내 놓을 리가 없습니다. 하긴 우리나라라 뿐이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땅 욕심에 그렇겠지요.”
“미국이 서부로 진출 할 때는 인디언들의 저항이 꽤 심했었는데, 이건 숫제 거저먹은 거지 원.”
“하하. 예전에 본 서부영화 생각이 나네요. 그 영화에서 명 사수 존 웨인이 포장마차를 이끌고 황량한 서부를 갑니다. 드디어 인디언과 전투가 붙지요. 전력의 열세로 존 웨인이 이끄는 백인들은 거의 전멸 직전에 이릅니다. 더 버틸 힘이 없는 상황에서 인디언들은 마지막 총 공격을 해 옵니다. 그때 빰바라밤 하며 나타나는 기병대에게 우리가 얼마나 열광했습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백인들이 만들어 놓은 왜곡이었지요. 인디언 땅에 쳐들어간 침략자에게 박수 친 꼴입니다.”
“그게 역사야. 센 놈이 이기는. 중국 역시 서부개척 황금시대를 맞은 게 틀림없어. 아이고, 이성열 씨는 미국에서 왔는데 이거 공연히 문자 쓴 꼴이네.”
이성열은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저 미소만 띄우고 있었다. 홍 사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건설도 좋지만, 중국 특유의 블랙홀 중화사상을 서쪽에 옮기는 사업 이름이 바로 서북공정 아니야?”
나는 불현듯, 지금 한국을 열 받게 하고 있는 ‘동북공정’이 떠올랐다. 동북공정은 그래서 심각하다. 내가 아는 중국은 결코 그 동북공정을 포기할리 없다. 원, 청나라를 세운, 소수민족 역시 중화사상이라는 블랙홀에 녹아들어 중국에 동화 된 것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고구려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주장하는 동북공정은, 결코 쉽게 사그라질 문제가 아니다. 내가 유학을 하며 공부한 중국은, 서두르지 않는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도 않는 나라였다. 이 철도가 그 증거 아니겠는가. 티베트인들조차도 독인지 약인지 헛갈리는 이 칭짱철도 역시, 그 결과물 중 하나 일 것이다. 티베트의 독립 운동에 유혈 진압도 있었다. 독립을 위한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노력에 보내는, 세계의 동정 어린 시선도 있으나 중국의 귀에는 들릴 리 없다. 만만디 정신으로 꾸준하게 중국 서부개척 시대를 준비했고 이렇게 중화시키며 티베트를 열고 있는 것이 증거 아닌가.
“이성열씨, 어제 대진 군에게 하늘호수를 언제 가냐고 묻던데, 그곳 구경하러 이번 여행을 온 거요?”
홍 사장이 내심 궁금했다는 듯 이성열에게 질문을 던졌다. 창밖을 보며 조용히 차를 마시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내 말은, 휴가를 내서 이 먼 길을 올 만큼 하늘호수가 멋진 곳이냐 그 말이오.”
“저도 모릅니다. 제가 굳이 그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설련화(雪蓮花)때문입니다. 히말라야에서만 핀다는 그 꽃의 자생지가, 하늘호수 가라고 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호수도 아니고 꽃 때문에 이 길을 간다? 그거…… 진짭니까?”
이성열의 여행 목적이 하늘호수도 아니고 꽃이라는 말에,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홍 사장이 놀랐다.
“그렇습니다. 물론 티베트 불교 유적인 포탈라 궁과 죠캉 사원에도 관심이 있으나, 저는 그 꽃을 보러 가는 중입니다. 그 꽃을 찾는 게 제 목적입니다.”
이성열의 말에 김기자가 흥미를 보였다.
“그 설련화라는 게, 혹시 한국에서 노란 복수초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가요? 그 꽃 뿌리는 한방과 민간에서 약재로 사용 한다던데.”
이성열은 즉각 고개를 저었는데 눈빛이 아련해 졌다.
“그 꽃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한국 같이 낮은 곳에 피는 꽃과, 내가 찾는 꽃은 전혀 다릅니다.”
“그런 정보를 어디서 얻었어요?”
“자활본초강목(自活本草綱目)이란 책에서 우리는 처음 설련화를 봤지요. 만년설산 하늘호수에서만 자라는 꽃이더군요. 사람의 능력으론 재배가 안 되고 설산의 새들이 먹고 난 후 배설물에 의해 번식이 이루어진답니다.”
“미국에도 그런 책이 있었군요. 그리고 방금 우리라고 했는데 그걸 본 사람이 또 있다는 말이네요?”
김기자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이성열에게 물었다.
“제 아내입니다. 아내는 그 꽃이 가지고 있는, 불치병 치료에 대한 놀라운 효험을 믿지 않습니다만,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의외의 대답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우리를 감쌌다. 이성열은 그 설련화의 약재로서 효능을 믿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침울하게 말했는데 그 분위기로 봐서 그의 아내는 몹시 아프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나의 그런 짐작을 홍 사장도 같이 느낀 모양 이었다.
“만병통치라…… 어떻게 생긴 꽃이오?”
“형태는 연꽃과 비슷하게 외줄기만 우뚝 선 모습이 매우 아름답더군요. 하늘호수 가에 핀 것이 천하에서 으뜸가는 보약이랍니다. 열이 많은 꽃이라 눈 속에서도 피고 있다더군요. 얼음이 얼어도 꽃 주변은 녹아 버리는 설련화지요. 로스앤젤리스에도 한의사들이 많이 있어요. 그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더러 그 꽃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다더군요.”
“정말 그것이 있긴 있는 겁니까?
“그럼요. 우리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집사람은 이미 병원에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도 안 된다고 하더군요. 암세포가 너무 번져 손을 쓸 수가 없으니까요. 병원도 손을 놓은 상황에서 저에게 믿을 것은 이제 그 꽃뿐이었지요.”
나는 가슴이 짠해져왔다. 그 꽃이 그렇게 영험하든 아니던 간에 이성열이 그 꽃에 집착해야 할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북경에서 처음 만났을 때 옹화궁 약사전을 가고 싶다고 말했던 게 새삼 생각났다. 그곳에 티베트 약초가 많다고 말 한 것은, 그곳에서 설련화를 보고 싶어 했던 것일까. 현대의학의 집합체 병원을 전전하며, 아내를 포기하라는 결론을 얻은 이성열이 할 일이 또 있었을까. 죽어 가는 아내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남편의 심정이 오죽할까. 그가 태평양을 건너 올 이유로는 충분했다. 조용한 성격의 이성열이 꽃 이야기에 열을 내는 그 절박한 심정을 나는 알 것 같았다.
“부인은 지금 미국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까?”
홍 사장이 측은 한 표정으로, 다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이성열에게 물었다.
“아내는…… 병원엔 없습니다.”
창에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이성열이 대답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싫었는지 갑자기 이성열이 일어서며 입을 떼었다.
“공연히 저 때문에 분위가 이상해 질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불편해 지니까요. 또한 누구에게나 일어 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가 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끝없는 구릉과 옥수수 밭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침묵을 깨며 홍 사장이 입을 열었다.
“참 안되었네. 이성열씨 나이를 보면 그의 부인도 아직 젊은 사람인데 폐암 말기라니. 병원에도 없다니 거기도 손 든 모양이지. 그런데 대진 군, 하늘호수에 그런 꽃이 정말 있기는 한 거야?”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처음 들어 보는 말이라 서요.”
사진기를 점검하던 김기자가 홍 사장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흔든다.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있다면 벌써 난리가 났지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세상에 그런 만병통치약은 없어요.”
나도 그의 말이 맞는다 싶었다. 티베트에도 의술은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우리나라와 중국과는 다르지만 그들 나름의 의학적 약품과 치료는 존재했다. 그들의 약품은 거의 자연에서 채취한 약초들이었다. 티베트 전문 중국여행사에서, 신비의 땅 티베트의 약을 만병통치나 되는 것처럼 팔아먹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 티베트의 신비가 주는 선입견에 그런지 몰라도, 검증도 없이 그걸 마구 사는 한국인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웃은 적도 많았다. 그러나 설련화라는 것은 처음 들어 보는 약초였다. 홍 사장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마 이성열씨는 어느 허무맹랑한 의서를 보고 그 말을 믿는 모양이지. 한국 종합병원에 가면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얼마나 많아. 말기 환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가짜 특효약을 파는 놈들이. 부인이 죽어 가는데 그거라도 믿고 싶었던 게지.”
쓴 입맛을 다시며 홍 사장은 내 뱉듯 한마디 더 붙였다.
“아무리 가망 없어도 죽어도 병원에서 죽어야지, 퇴원을 하면 어떻게 해.”
“말기 암 환자지만 치료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듭니까. 특히 미국에서 말이죠. 경제적 이유도 있겠지요. 안된 일이네요, 그러니 이성열 씨가 설련화 같은 황당한 이야기에 빠진 거겠지요. 잠깐, 대진 씨 통역 좀 부탁합니다.”
김기자가, 우리 건너편 식탁에 앉아 있는 아가씨를 턱으로 가리키며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말을 시켜 보니 북경에 있는 서북대학교 학생이었다.
“이 철도가 개통 된 후 뭐가 달라졌나요?”
“우리 학교 동기 중 한명이 라싸가 집인 사람이 있는데요, 일 년에 집을 한번 가기도 힘들었어요. 같은 중국인데도 말이죠. 이제는 그런 걱정이 없는 거죠.”
스스럼없이 티베트를 ‘같은 중국’으로 호칭하는 그녀의 말이 내겐 다소 생경했지만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그런 국가의식은 이 기찻길로 해서 더욱 심화 될 것은 분명했다. 중국이 희박한 인구 밀도를 가지고 있는 티베트에 철도를 건설한 백가지 이유 중 또 하나가 되니까.
“어디까지 갑니까?”
“거얼무까지요.”
그곳은 티베트 고원 들머리였다. 거기서 기차는 탕구라 산맥을 넘는다. 공사구간 80퍼센트 이상 차지하는 960킬로미터가 평균 해발 4500미터이다. 그중, 서울 부산 보다 긴 오백 킬로 이상이 영구 동토지역이라면 공사의 어려움에 수긍이 간다. 한마디로 얼음산에 놓인 철도라는 말이다.
“저분은 기자인데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합니다. 되겠습니까?”
“좋아요.”
김기자는 요란스러울 만큼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끝없는 녹색 평원을 달려 란저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쯤이었다. 그 사이 풍경은 또 바뀌었다. 이제부터 녹색이 드물어졌고 황토 산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거대한 황하(黃河) 상류가 보였다. 우리가 종단하려는 티베트 고원을 에두른 니엔칭 탕구라 산맥에서 황하는 발원한다. 이 강은 이름 그대로 시작부터 탁한 황토 빛 흐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갔다면 못 볼 진기한 풍경이었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도 인종이 많이 바뀌었다. 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트 승려와 머리를 땋은 티베트인들. 한 바퀴 돌리면 불경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는 ‘마니차’를 돌리는 할머니를 보니 티베트 땅이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얼굴 모습이, 햇볕에 그을린 우리나라 시골 사람들 표정과 퍽 닮아 보였다. 중국 한족과는 분명히 다른 얼굴이었다.
란저우에서 시닝까지는 불과 3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미 고도가 높아져 시닝은 해발 2000미터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부터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므로 시닝을 실제적으로 티베트 고원의 출발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곳이 예전 티베트의 관문 역할을 한 곳이라 했다. 지금은 중국 당국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해성에 속하지만, 티베트 불교에서 그 위치가 혁혁한 총카파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이 행정개편을 단행하여 티베트 고원을 분할했다. 일부를 청해 성으로, 또 사천 성으로 편입 시켰지만, 그래도 남은 티베트는 남한의 열두 배 크기였다. 시간은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아직 햇볕이 쨍쨍하다. 경도 상으로 볼 때 북경과는 대략 두 시간 이상 차이가 나야 함에도, 북경 표준시를 전 중국에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이미 북경은 해거름이 시작 되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었으므로 나는 침대칸으로 가, 자고 있는 이성열을 깨워왔다. 그는 식당 칸으로 오면서도 검은 가방을 챙겼다. 그건 카메라 가방은 아닌 듯 했다. 나는 한 번도 그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한 잔 하자고. 내일부터 고도를 올리면 술을 못 먹을 테니까.”
술을 좋아하는 홍 사장의 부탁으로 나는 여러 안주를 시켰다. 이성열은 고기는 먹지 않는 대신 술은 사양하지 않았다.
“저기 황하 강 좀 봐. 제법 기세 좋게 흐르는데 왜 마른 강이라는 거야?”
나는 그가 따라주는 맥주를 받으며 대답을 했다.
“여기는 공업단지가 없고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그렇지요. 강 따라 내려가다 보면 엄청 많은 공장과 도시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물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금도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공업용수로도 사용 하지 못 할 이런 뿌연 황토 물도 부족해, 하류로 내려 갈수록 마른 강이 된다는 거군. 이런 강이 인류 문명 발상지 중 하나라는 황하문명이라니 이해가 안 되네.”
그 말을 받아 김기자가 나섰다.
“중국은 물 부족 국가예요. 우리가 가려 하는 티베트에는 만년설 풍부한 물이 녹아 흐르는, 얄룽창포 강이 있는데요 중국은 거기에도 눈을 돌렸어요. 그 물을 건천이 되어 가는 황하로 돌린다는 장수북조(藏水北調) 공정이 그것입니다.”
나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중국은 칭짱철도에 이어 또다시 엄청난 규모의 자연 개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의아해 하는 나를 의식했던지 김기자는 말을 이었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이 방안이 공식 의제로 채택되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그리고 ‘시짱(西藏)의 물이 중국을 구한다'는, 책은 후진타오나 원자바오 총리가 당국자들에게 필독서로 권장할 정도라는 군요.”
놀라운 일이었다. 얄룽창포 강은 나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강이었다. 티베트에서 발원, 히말라야산맥을 감싸고 돈 후 방글라데시를 거쳐 갠지스 강과 합쳐 인도양으로 흘러나가는 아주 큰 강이다. 방글라데시에선 브라마푸트라 강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만약 이 공사가 시작 된다면 유사 이래 최고의 토목 공사가 될 것이다. 우리가 탄 칭짱철도 역시 그 공사에 큰 일꾼 역할을 할 것이다. 일종의 시너지 효과인 셈이다.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술잔을 기우리던 이성열이 뜻밖의 말을 한다.
“다, 제행무상이지요. 모든 건 변하니까요. 사람이 이룬 것은 없어지게 마련이고, 사람이 쌓은 것은 무너지는 거지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거 같아요.”
“야, 그거 좋은 말이네. 이성열 씨는 행동이나 말투가 불교 공부를 하는 사람 같아. 기독교 나라에서 온 사람답지 않게. 혹시 그쪽 공부를 했습니까?”
술좌석에 함께 해 준 게 기쁘다는 듯 홍 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뇨. 그저 아내에게 귀 동냥으로 들은 말입니다. 기후 온난화로 몸살을 앓는 지구의 병은 깊습니다. 그건 문명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결과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 말이 맞는 말이죠. 인간만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온갖 것을 만들어 내고 있죠. 원자탄이 그렇고 플라스틱이 그런 거죠.”
김기자가 그 말에 적극 동의 한다는 듯 거들고 나섰다.
“자연을 무시한 결과는 언제나 치명적 재해로 다가 섰다는 역사의 교훈에서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댐이, 이 철도가 영원하리라는 생각은 맞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탐욕일 뿐이지요.”
이성열은 흡사 도사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내게는 그게 왠지 듣기 좋았다.
“그런데 이성열씨는 비행기로 라싸를 가면 빠를 텐데 왜 힘든 기차를 탔습니까? 그럴 이유라도 있나요?”
“경제적으로 싸게 치니까요. 그러나 그보다는 티베트 불교 공부를 하는 아내에게 이 고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마 이성열의 말은, 나중에 미국으로 귀환하면 아내에게 자신이 본 고원의 풍경을 설명하려는 말 같이 들렸다. 그 말을 이해한다는 듯 홍 사장이 농담을 했다.
“설명하기 간단해서 좋군. 이곳은 나무도 없고 풍경이 단조로우니까. 하하.”
“제가 사는 엘에이 근처에도 모하비 사막이라는 광활한 지평선이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높은 고지는 아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그 사막과 다른 점은 이곳은 불경이 전해진 불법의 길이라는 겁니다.”
“스님들의 이곳을 횡단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을 거야. 그런 땅에 철도가 생겼으니 과연 기지개를 편 중국은 무섭군. 누구도 중국을 다시 잠들지 못하게 할 것이야. 알프스보다 높은 곳에 철길을 놓고 강물을 돌리고, 무섭다 무서워.”
그런 농담 섞인 우려를 하는 홍 사장에게 김기자가 한마디로 정의했다.
“중국은 미쳤어요!”
마침 내, 거얼무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10분 이었다. 침대칸에서 2박 동안, 나와 친해진 승무원이 여기서 고원 기관차와 바뀐다고 귀뜸을 한다. 그 말을 전하니 김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기차 앞으로 달렸다. 여태 우리를 끌고 대륙을 횡단한 기관차가 분리 되고, 하얀 색의 고소 기관차 3량으로 바뀐다. 희박한 산소 속을 달리게 설계된 미국제라 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기관실엔 중국인과 함께 엔지니어처럼 보이는 백인이 타고 있다. 중국 대륙 3000여 킬로미터를 끌고 온 저소 기관차는 이곳에서 아웃 되었다. 야구에서 9회 말 나타난 구원투수처럼 나머지 구절양장 힘겨운 칭짱철도 1142킬로미터를 끌고 갈 구원투수 기관차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진정한 하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칭짱철도는 세계 철도사의 기적’이라고 했던 후진따오 말대로, 이제부터 그 현장을 눈으로 목격한다는 말일 터였다. 기차로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한국의 영동선, 심포리역의 스위치백을 생각했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후진하며 한 계단 오르는 스위치백. 그런 오름을 계속 반복하며 티베트 고원을 오르는 건 아닐까 생각 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역시 작은 나라에서 온 나그네의 상상이었다. 3량의 고소 기관차로 바꿔 단 우리 기차는, 직선으로 티베트 고원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사진을 찍는다고 설치는 바람에 잠이 달아 난 우리는, 일찍부터 식당 칸에 모였다. 아직 창밖은 어두워 사물을 분간 할 수는 없었으나 세계의 지붕을 관통하는 풍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김기자는 노트를 꺼내 무엇인가 적고 있고, 식당은 아침 준비로 부산했다. 그때 중국어와 티베트어, 그리고 영어로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산소를 공급한다는 말이었다. 천장의 에어컨에서 슈-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가 나오기 시작했다. 의자 밑에도 노즐 구멍이 있어 그곳에서도 산소가 나온다. 그럼에도 고소 증을 견디지 못 하는 사람을 위해 승무원은 고무 튜브로 된 산소 호흡기를 나누어 주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처럼 의자 아래, 혹은 곁에 있는 산소 구멍에 그 튜브를 꼽고 콧구멍에 대는 것이다.
아침커피를 마시던 김기자가 갑자기 생각 난 듯 말했다.
“중국 말 중에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게 있어요.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말이지요."
“그게 무슨 말이오?”
홍 사장이 뜬금없는 그 말이 의아한 듯 물었다.
“이 산맥을 처음 넘은 사람은 고선지 장군입니다. 고구려 유민이었지요. 당나라 때 티베트는 토번이라는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당나라와 힘을 겨룰 정도였으니까요. 안서도호부의 책임자로 임명 된 고선지 장군은 당나라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토번을 제압합니다. 그러나 안녹산의 난 때 참형을 당하지요.”
“그게 이이제이와 무슨 관계가 있지요?”
“오만한 중국은 자신 들 말고는 모두 오랑캐로 불렀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들 눈에는 마찬가지였지요. 중국 동쪽에 있는, 오랑캐 이(夷)자를 써서 동이(東夷)족이라 불렀으니까요. 동북 변방의 고구려 고선지를 서북 변방의 토번과 싸움 시키고, 이용해 먹다 참형시켜 버린 이야기가 그거 아닙니까.”
“역사는 잘 모르지만 참 허망한 일들이야. 그게 이 철도와 무슨 연관이 있나?”
“이 정도 고소라면 처음 오르는 인간에겐 산소가 필요합니다. 기차에서 산소를 품어 내는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고소적응이 필요 없는 티베트 현지인 이거나, 산소마스크가 필요한 중국인이겠지요.”
“산소마스크를 쓰고 무슨 노동을 해.”
“그렇지요. 자기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 중국인으론 안 되니, 고산족 티베트 인들을 동원해 하늘 철도를 놓은 거지요. 그 철도가 자신의 나라에 어떤 결과를 초래 할지도 모른 채, 티베트 인들은 건설에 동원 된 게 아니었을까요?”
나는 그 말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어붙은 영구 동토 칭짱 고원을 횡단한다는 철도공사는, 금세기에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프로젝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알프스 터널을 완성한 스위스의 터널 건설 전문가조차 동토 때문에 공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동토 층을 육중한 기차가 달리면 땅이 녹아들고 그럴 경우 철로가 휘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올 거라고 주장했다. 그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반 시설에 파일을 박거나 통풍용 관로를 묻어 철길을 만들었다고 했다. 중국으로서는 첨단 건설기법을 사용한 셈인데 칭짱철도엔 교량이 눈에 많이 띄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겠다. 이 모든 공정의 노동력은 티베트 인들이 거의 감당한 것이었다.
우리 칸의 남자 승무원 한 명이 아침을 먹으러 식당 칸으로 건너왔다. 김기자의 통역을 맡아 대화를 나눴다.
“야크가 철길에 뛰어 든다던가 고소 증에 사람이 상한 일은 없는가?”
“동물과 충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들이 철로에 못 들어오게 팬스를 쳐 놓았기 때문이다. 고소 증에 사람이 죽은 일은 없다. 다만, 피를 토하는 사람은 몇 명 봤다.”
그 말은 틀렸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내가 챙긴 자료에 의하면 철도가 개통한 한 달 사이에, 이 기차에서 고소 증으로 죽은 사람이 무려 9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은근히 고소 증에 대한 두려움이 술 좋아하는 홍 사장 주의를 환기 시킨 것이다.
“환경은 많이 파괴 되었을 텐데?”
“우리 중국은 칭짱철도 운행에 따른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우리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연 보호 구역을 많이 지정하였고, 인공 구조물을 최소화 했다. 동물 보호를 위해 철길 양쪽에 방책 막도 만들었고.”
“성공적이었나?”
“그렇다. 세계 최고 높이의 철도기 때문에 사례가 없어 많은 고생을 했다. 생태계 파괴의 최소화를 위해 노력 했고. 정부는 칭장철도 주변의 환경보호를 위해서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 이는 여태까지 제일 큰돈을 드린 셈이다. 열차에서 사용한 물은 모두 정화처리 후 방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럴 것이다. 그만큼 중국 당국도 원시의 이 고원을 보호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만이다. 어제 이성열의 말대로 언제나 자연의 적은 인간뿐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며 상대적으로 고도는 자꾸 높아 갔고 날이 밝기 시작했다. 거얼무에서 라싸까지 기차는 낮 시간만 운행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었다. 아마 불안한 지반이 안정적 일 때 통과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남은 여정 14시간은 낮 시간이고 질리도록 티베트 고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기 좀 봐요. 야크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내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일행의 눈이 몰렸다.
“저게 야크야? 고산에서만 사는 소란 말이지?”
김기자가 카메라를 들이 대며 신기한 듯 말했다. 날이 밝아 오고 드디어 고산의 상징인 야크가 보이기 시작한 걸 보면 제법 높이 올라 온 것 같았다. 끝 간 데 없는 구릉과, 우기 철이 끝나가므로 파릇하게 살아 난 초원의 세계였다. 가뭇하게 보이는 쿤룬 산맥의 만년설과 호수, 그리고 파릇한 초원과 투명한 하늘의 대비는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기차는 쿤룬산맥의 옆구리를 감거나 뚫고, 대형 파노라마 영상을 활동사진처럼 보이며 대 평원을 내달렸다. 주인이 있는 것인지, 야생인지 모를 말무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식당 칸의 양쪽 대형 유리창은 흡사 화면 같았다. 움직이는 커다란 스크린을 양 옆에 두고 우리는 아침 식사를 했다. 신기하지만 매혹적 풍경은, 여태까지 어두운 표정의 이성열 마음까지 들뜨게 만든 모양이었다.
“아까 김기자가 말했지요? 유목민이었던 티베트인들이 만든 강력한 국가에 토번이 있었다고. 질펀하게 펼쳐지는 고원을 바람처럼 달리는 이 기차처럼, 티베트 인들도 그렇게 달려 대 제국을 건설했었지요. 세계를 정복한 몽골처럼, 티베트의 토번 제국은 저렇게 초원을 뛰노는 말에서 나온 겁니다.”
우리가 그를 바라보는 것이 쑥스러웠던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나 다 허망한 일입니다. 몽골과 토번이 함께 믿던 국교가 티베트 불교예요. 라마 불교라고도 하지요. 스님을 티베트에서는 라마로 부르니까요. 티베트 불경에 어제 제가 드린 그런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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