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소설> 하늘 호수 2

2008.02.29 16:32

신영철 조회 수:65

“김기자의 말은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앞일은 아무도 예측 할 수없는 거지요. 더군다나 살아 있는 선지식인 달라이라마의 생각을 누구도 알 수는 없지요. 그 분의 용서와 화해 정신은,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따라가지 못 할 정신적인 자산입니다. 물질에 맹종하는 그런 경제적 논리로는 이해하지 못하지요.”
  의외의 반격에 홍 사장과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역사라는 긴 안목에서 보면 나라가 망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은 잠깐입니다. 중국 역시 수많은 소수 민족들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옛 소련이 해체 되듯 중국도 언젠가는 갈라 질 거고, 그때 티베트의 독립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기자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건 냉소였다.
  “그럴까요? 물론 이론상 그런 가정도 가능 하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족은 물론이거니와,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다 합쳐야 전 중국국민의 오 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리고 현대는 비정한 경제 전쟁 시대입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런 한 축이 있는가 하면 인류의 미래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풍요로운 현대에 정신적 공황이 왜 생기는 걸까요? 김기자는 지금 행복 합니까? 돈 가지고도 이룰 수 없는 마음의 평화와 상생을 위하여, 달라이라마 같은 분들이 존재하는 거지요.”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전개 되고 있었다. 그리고 전혀 그럴 것 같이 안 보였던 이성열이 꽤나 흥분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기자는 지지 않았다.
  “브릭스라는 말 아시지요? 삼 년 전 인가, 미 금융투자 골드만삭스는 이렇게 전망했습니다. 21세기는 2000년대를 전후해 초고속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와 중국 등, 신흥경제 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 배경이 유행어가 된 브릭스입니다. 그리고 이 네 나라 가운데 중심국가로 중국과 인도 두 나라를 꼽았지요. 이제 이 둘 국가는 친디아라는 닉네임이 붙었고요.”
  “나는 경제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더구나 세계 경제의 흐름을 알고 싶은 게 아닙니다.”
  “모두 달라이라마와 연관되는 겁니다. 세계 인구 1, 2위의 대국이 중국과 인도입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 전체의 반에 가까운 23억 명을 두 나라가 차지합니다. 그런 두 나라의 협력은 세계 정치와 경제에 혁신적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의 철도 공사는 필연적인 거고요.”
  “그게 달라이라마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요?”
  나는 대충 알아듣겠는데 이성열은 진짜로 모르는 것 같았다. 김기자가 심하다 싶을 만큼 오금을 질렀다.
  “방 빼! 라는 거지요. 양쪽의 밀월이 깊어지는 것에 비례하여 달라이라마가 그쪽에서 살기 힘들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달라이라마는 좀 비겁합니다.”
  이성열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라고요? 나라를 뺏은 중국에 대한 원망보다는 용서를 설파하는 그분이 비겁하다니요.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사실을 호도하지 맙시다. 그 사람은 수 십 년 전부터, 자신에게 티베트 자치권만 달라고 중국에 애걸하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가는 라싸도 중국이 만든 시짱자치구에요. 이미 만들어진 자치구에 자치 권력을 달라는 것은, 한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자신이 왕이었던 예전의 달라이라마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그게 어때서요? 티베트 민중이 그분을 원하고 있고 그분 역시 티베트인인데. 중국인들이 무력으로 점령한 땅을 내 놓을 리 없으니 차선책으로 선택한 거라는 걸 왜 모르십니까?”
  김기자는 냉소를 거두고 정색을 했다.  
  “한마디만 말씀 드리죠. 중국은 그런 달라이라마 제의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개인 자격으로 돌아오는 건 얼마든지 환영하지만 정치적 목적으로는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한 나라를 통치했던 사람이라면 그 나라의 멸망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 독립군처럼 죽어도 독립이라는 기개를 보여야 하는 게 옳지요. 그래야 후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신념을 주는 거지요. 그런 정신이 면면이 계승 되어도 독립이 될까 말까인데, 외교, 군사, 정치 모든 걸 주고 겨우 자치권을 행사하는 수반이 되겠다니요.”
  긴 말을 끝낸 김기자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얼굴이 굳어졌다.
  “오죽했으면 그런 제의를 했겠습니까? 히말라야 고개를 넘어 다름살라로 오다 얼어 죽어 가는 수많은 티베트인들을 생각하고, 자꾸 중국화 되어 가는 현실을 보며 결단을 내린 거겠지요. 김기자 말대로 자비야 말로 불교의 핵심이니까요.”
  “과연 그럴까요? 티베트 청년연합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들이 발표한 성명서 한 대목을 기억합니다. 달라이라마의 중국 예속을 받아드리는 정책에 대해, ‘저주와 다름없는’ 처사라고 그들은 강력하게 비난했습니다.”
  둘 사이의 토론이 격렬해지고 있었다. 사실 관계를 증명해 내는 김기자의 기억력은 경탄 할 만하였다. 홍 사장 역시 이 토론이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혈기 왕성한 청년들답군요. 그들이 있는 한 티베트는 희망의 불씨가 있는 거고요. 그들의 비난 역시 티베트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 되니까요. 시속을 떠나 목표를 이루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수행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습니까. 방법론에서 견해가 다른 그 청년들에게도, 달라이라마는 여전히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오히려 청년연합은 달라이라마가 티베트 인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힐 어떤 발언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답니다. 이것은 무얼 말하는 거지요?”
  “중국이 티베트에서 스스로 철수 하지 않는 한 결코 독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달라이라마께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의 바탕 위에서 완전 독립 정책이 바뀐 겁니다. 달라이라마께서는 홍콩을 닮은 1국 2체제 방안을 줄 곧 협상안으로 내 놓고 있습니다. 외교와 국방은 중국이 관장하더라도 경제와 사회, 문화와 교육은 티베트가 맡는 다는 거죠. 그건 티베트 민족 자치 방안이고 완전자치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열은 김기자의 의견에 전혀 동의를 하지 않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를 호칭 할 때 극존칭을 쓰는 걸 보면, 그는 티베트 불교에 관심 이상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에서 온 이성열이, 티베트를 처음 간다는 사람이, 정치적 상황을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끝없는 논쟁이 지겨웠는지 김기자가 갑자기 화살을 국내로 돌렸다.
  “나는 종교에 대하여 모릅니다. 관심도 없고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아는 게 있습니다. 종교, 특히 지금의 한국불교에서의 행태가 몹시 실망스럽습니다. 한국이 티베트보다 먼저 불교가 들어왔고 선불교라는 독특한 수행 방법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을 보면 티베트 불교 열풍입니다. 수행자나 신도 가릴 것 없이 엄청난 사람들이 실제로 달라이라마를 만나러 다름살라에 가곤 합니다. 그 사람들이 볼 때, 한국 불교는 희망이 없는 겁니까?”
  김기자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드리던 이성열이 조용히 말했다.
  “글쎄요. 나는 미국에 살기 때문에 그런 건 잘 모릅니다. 몇 년 전 달라이라마께서 UCLA를 방문 한 적이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주립 대학이지요. 아내와 함께 그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아주 감명 깊은 연설이었습니다. 세계의 선지식들이 인정 할 만큼 박애와 인류애 정신이 티베트 불교에는 살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것을 실천하시는 큰 수행자가 달라이라마입니다. 한국 불교는 잘 모르지만 그를 친견하므로 자신의 깨달음을 더 심화 시키겠다는 욕망에서 그런 건 아닐까요?”
  김기자의 입가에 다시 냉소가 어렸다.
  “깨달음이 뭡니까? 우리는 어디서 왔느냐,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그걸 아는 게 깨달음입니까? 언제까지 그런 끝없는 질문과 답을 거듭해야 하지요? 물론 불교 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다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런 문명의 세계에 아직까지도 그런 현학적인 물음이 통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김기자의 말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입가 비웃음을 본 탓일까. 이성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건 김기자의 개인적 생각일 뿐입니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 의견일 뿐이지요. 세상에는 김기자의 말대로 이론이나 과학, 혹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풀 수없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종교를, 특히 불교를 폄하하자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작금의 국가 간 경제 전쟁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많이 축소 된 건 확실하지요. 티베트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종교 보다 문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 드렸다면 상황이 많이 바뀌었겠지요. 이것도 부처님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고 현실은 늘 바뀌게 되어 있지요. 존재하는 것은 모두 바뀐다는 게 제행무상이지요. 김기자 고향이 어딘지 모르나 마을 뒷산은 늘 뒷산입니다. 앞산이 결코 될 수 없지요. 그러나 그 산 뒤에 사는 사람은 그 산이 앞산이 됩니다. 그게 앞산이 맞습니까? 뒷산이 맞나요.”
  어이가 없는지 김기자가 허허 웃었다.
  “당연히 보는 시각에 따라 앞산도 되고 뒷산도 되겠지요.”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직시하는 현실이 아무리 불변 일 것 같아도 그건 본성이 아니지요. 만약 비행기를 타고 그 산을 본다면 이젠 가운데 산이 될 겁니다.”
  둘의 불꽃 튀는 토론이 재미있었다. 김기자의 말을 들을 때는 그 말이 옳았고, 이성열의 말은 그런 대로 그럴 듯 했다.  
  “김기자와 우리가 타고 있는 기차를 생각해 봅시다. 뭉뚱그려 철로 만들어 졌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차를 분해하면 그냥 고철 조각이 되겠지요. 그 고철을 더 분해하면 탄소라는 원소가 나 올 겁니다. 탄소가 기차는 아니지요?”
  “그건 대단히 현학적인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런 식으로 세상을 분해한다면 존재할 사물이 어디 한 가지라도 있겠어요?”
  “바로 그겁니다. 탄소라는 원소마저 원자 사이를 분자가 돌고 있는 허공이 있습니다. 또한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라는 게 실체가 있습니까? 바로 그런 공(空) 사상이야 말로 달라이라마께서 세상에 전하는 강론 핵심입니다.”
  이야기가 자꾸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게 보기에 불안 했던지 홍 사장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자자, 이제 고만.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여행에 금물이야. 그 끝없는 논쟁이 우리 여행과 무슨 관계가 있어. 점심때가 가까워 오니 밥을 시키자고. 그리고 창밖 풍경을 보니 술 생각이 간절한데 그것도 좀 시키고.”
  “홍 사장님, 고도가 이미 4000미터를 넘었어요. 술 드시면 머리가 많이 아프실 거예요.”
  내 말은 간단히 홍 사장의 한마디에 묵살 되었다.
  “머리가 아픈지 안 아픈지 시험해 봐야 알지. 그리고 이미 골이 아픈데 뭘. 고소 증 때문이 아니라 두 사람의 논쟁 때문에 말이야. 하하. 농담이고. 술 시키는 이유는 저 환장할 창밖 경치 때문이야.”
  창밖을 보니 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멀리 무지개가 떠있다. 쌍무지개다.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속 샹그리라는 이 고원 어딘가에 있다고 했다. 이번 여행 손님은 괜찮았다. 이런 지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손님들을 만나는 게 나로서는 행운이었다. 김기자의 말처럼 그렇게 뒤집히고 뒤바뀌는 역사는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이성열의 말대로 물질은 풍요롭지만 현대인은 외롭다는, 정신적 공황을 치유 할 수 있는 불법(佛法)의 땅이 티베트일까. 평화롭기 그지없는 광활한 고원이 이렇게 영욕으로 점철 된 곳이라는 새삼스러운 느낌이 든다. 김기자 말대로 기차는 아득한 옛날인 1300여 년 전, 송첸캄포에게 시집가던 문성공주가 3년에 걸쳐 울며 걷던 길을 달려가고 있다. 그 멀었던 길을 단 48시간 만에 종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열의 말처럼 모든 게 변했다. 그 아득한 길을 우리는 안락하게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  이 드넓은 평원에 수직으로 서 있는 건 송전탑과 산뿐이었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어안렌즈에 투영 된 것처럼 모두 둥글다.  
  식탁에 음식이 차려질 때쯤 비가 변 해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8월에 눈이라니! 묘한 기분이 든다. 북경의 끈적거렸던 더위가 꿈결 같다. 간간이 유목민들의 파오라는 천막이 보이고 그때면 틀림없이 불경이 적힌 오색 룽다가 펄럭였다. 룽다는 티베트 기도 깃발을 말하는데 영어로는 윈드 호스(wind horse)즉, ‘바람 말’ 이란 뜻이다. 불심 돈돈한 그들의 염원을 서방정토에 있는 부처님께 전해 달라는 깃발인데, 룽다에는 정말 날개 달린 천마도 그려져 있었다.
  고소 증에 불안 했지만 홍사장이 따라 주는 술을 한잔 마셨다.
  “저게 뭐야? 도로 같은데. 저 트럭은 굼벵이를 닮았나 왜 저렇게 느려.”
  홍 사장의 말을 듣고 보니 창밖으로 ‘칭짱공로’가 보인다. 2차선 포장도로다. 이 도로는 거얼무에서부터 따라 붙었다. 아니, 따라 붙은 게 아니라 철도가, 도로를 따라 건설 된 것이다. 험악한 쿤룬 산맥을 넘는 이 도로 덕분으로 철도 공사에 필요한 기자재가 공급 될 수 있었겠다.
  “트럭의 움직임이 거북이처럼 보이는 건, 짐을 많이 실은 탓도 있지만 희박한 산소 때문이겠지요. 중국은 1950년 티베트 침공에 성공했어요. 중국은 청해성에서 라싸까지 저 길을 뚫었지요. 화물과 군인을 운송하기 위해. 수만 마리의 낙타를 동원했는데, 1㎞ 전진에 12마리가 죽어야 할 정도로 험난했었다고 합니다.”
  나는 무엇인지 모를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려고 밝게 말했다.
  “하하, 전설 같았던 그 말이, 말 그대로 이젠 옛 이야기가 된 것이군.”  
  이성열이 문득 김기자에게 술을 권했다.
  “김기자 말을 듣고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역시 글을 쓰시는 분이라 정확한 텍스트를 많이 아시는군요.”
  “별 말씀을. 순전히 개인적 견해에 불과합니다.”
  김기자가 마시고 권하는 잔을 이성열은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아마 우리에게는 공부가 필요 한 건지도 모릅니다. 신념이란 하루 이틀에 완성 되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그렇게 얻은 신념이야 말로 죽음에도 당당해 지는 것을 압니다. 제 아내처럼 말이지요.”
  “에이, 이제 그런 대화는 끝.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일수도 있는 이 기가 막힌 자연 구경 앞에 결론 없는 이야기로 시간 낭비 할 게 뭐있어. 자 한잔씩들 하자고.”
  홍 사장은 이들의 대화를 또 잘랐다. 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토론이 계속 되다 보면 이성열에 대하여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저러나 이번 팀은 고산 체질인가? 나는 티베트로 두 번 비행기 타고 온 경험이 있는데 그때, 지근거리는 고소 증에 얼마나 시달렸던가.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베이스캠프가 된 식당 칸에서 조심스레 고량주를 마셔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산소가 나오는 첨단 기차라 그럴까. 고소 증의 약은 천천히 올라 고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아무리 빠른 기차라 하지만, 막막한 티베트 고원에 비하면 개미 마라톤에 불과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일본군이 만주 벌판으로 쳐들어갔을 때, 도로와 철도를 점령한 것에 불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칭짱철도와 도로는, 티베트 고원에 비하면 그야 말로 점과 선밖에 안 된다. 아득하게 펼쳐진 저 구릉 뒤쪽에도, 시선이 닿지 않는 남쪽 어딘 가에도 천 년 전 자신들의 조상처럼 유목을 하는 티베트인들은 존재 할 것이다. 혹, 김기자는 점과 선만 보고 이곳이 중화 되었다고 단정하는 건 아닌지 모른다.
  우리의 베이스캠프 식당 칸에 승무원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두 여자가 장비를 꺼내 놓고 맥박과 혈압을 재며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한가한 틈에 김기자도 진료를 받기로 했다. 취재에 활용하려는 것 같았다. 내가 통역에 나섰다.
  “간호사인가요?”
  “아니요. 의사입니다.”
  “그런데 왜 일반인 차림인가요? 하얀 가운을 입지 않고.”
  김기자의 손가락과 팔목에 기계 장치를 하던 여자가 웃는다.
  “승객들이 필요 이상 겁을 먹을 것 같아 사복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당신은 혈압, 맥박 모두 이상 없습니다.”
  “고소 증으로 죽은 사람 없어요? 폐수종이나 뇌수종으로요.”
  “없습니다.”
  5000미터가 가까운 고도에서에서, 고량주도 한잔 한 김기자가 이상 없다니, 그 말이 내게는 좀 이상했다. 홍 사장도 궁금한 듯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검진을 받는 사이 자리를 뜬 이성열을 찾으러 일어섰다. 혹 그가 이번 토론으로 마음이라도 상하지 않았나 싶어서였다. 의자로 된 일반석을 지나 침대칸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란저우에서 탄 티베트 삼형제가 지루한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머리를 땋아 친친 동여매고 붉은 리본을 단 전형적 티베트 목동 복장의 그들은, 김기자가 사진을 찍었기에 낮이 익었다. 알프스 요들처럼 청아한 목소리의 합창이 메나리조 고음처리가 감동이다. 이들이 믿고 있는 부처님에 대한 찬불가인지, 사랑 노래인지 모르나 투명한 고음이 퍽 애절했다. 나라와 국적을 떠나 황량한 목초지에 사는 목동들은 원래 이런 노래를 부르나 싶었다. 너무 노래가 감동적이기에 침대칸의 이성열을 불러내었다. 아쉽게도 그들에게 중국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나는 손짓 발짓으로 노래를 다시 청했다. 이성열을 불러 낸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 역시 이들 노래에 감동을 받은 듯 굳었던 얼굴이 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읽은 소설가 박완서의 ‘모독’을 읽은 기억이 났다. 그중 티베트 여행기에 적힌 시구를 떠 올렸다. 티베트의 양대 스승인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를, 형 아우로 의인화 한 구절이라 지레 생각해서 각인된 기억이리라.

-형이 아우에게
나는 타국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슬퍼하지 말아다오.
아우야, 이것은 전생에서의 인과(因果)일 테니까.
언젠가 구름 사이로 볕이 드는 날도 있을 테니

-아우가 형에게
나는 여기 남아 있을 게요, 형님.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아주세요.
이것도 전생으로부터의 인과겠죠.
한 방울의 물도 결국에는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걸요.

-티베트 민중이 두 분에게
우리들은 고통을 달게 받겠습니다.
이것이 전생으로부터의 인과(因果)니까요. 제발 슬퍼하지 마세요.
하늘의 해와 달 같은 두 분의 지킴 덕으로 우리들의 오늘이 있으니까요.

  목동들의 노래가 그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라마에게 보내는 티베트 민중들의 구슬픈 체념에 가슴이 시려왔다. 창밖 초원을 스치는 바람만 가득한 티베트. 이 높고 광대한 공간을 뚫고 달리는 기차 안이지만 목동들은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원래 자유였다. 고원의 목초지를 따라 야크와 양을 이동 시키며, 정치도 시속의 명예와 욕망도 없는 자유로운 삶이었다. 동물들과 하늘과 땅 사이를 떠돌며 외롭지만 그 외로움을 모르고 살고 있었다. 우리 같은 문명인의 눈엔 더럽고 전근대적 삶으로 비칠 수 있으나 그런 것조차 목동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한없이 올라 갈 것 같은 청음과 요들의 반복에서, 나는 잊고 있던 그들, 혹은 내 자신의 깊은 내면의 고독을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창밖에 흐르는 티베트 고원이 배경으로 작용해서였을까. 메나리조의 합창 후렴구에서 마침내 나의 영혼은 날아올라 하늘이 되고, 바람이 되더니, 마침내 뭉게구름처럼 온유한 심사가 되었다.
  문득 이성열을 바라보니 그 역시 만족한다는 듯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이들의 노래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이성열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드디어 해발 5072미터 탕그라 역이 가까워졌다. 탕그라 산맥은 청해 성과 시짱 자치구를 나누는 경계선이며,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양자강의 발원지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다. 쿤룬 산에 이르면 그 아름다움에 눈물이 마를 줄 모르고, 탕구라 산에 이르면 손으로 하늘을 잡을 수 있다던가. 둥그런 구릉과 초원을 병풍처럼 에워싼 하얀 만년설은,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이기도 하지만 침묵 속에 무엇인가 초월한 그런 느낌도 들었다.
  탕구라 역에 정차 하면 사진을 찍을 거라는 기대는 무산 되었다. 김기자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무인 정거장이었으므로 기차가 그냥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알프스 산맥 보다도 높은 곳에 만들어 진 역. 산소가 턱없이 부족하고 낮은 기압차이라 사람이 살 수 없어 무인역이었을까. 환경론자들은 자연에 거슬리는 이런 공사를 탐욕이라고 비판했으나, 나는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보는 것 같이 감동스럽기 조차했다. 기차가 라싸까지 6번만 쉰다고 해서 역이 그 숫자만큼 있는 줄 알았다. 그건 아니었다. 무인 정거장도 있었고, 역무원이 부동자세로 기차를 배웅하는 유인 정거장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이 철도는 시작일 뿐이다. 티베트 고원에 무진장한 지하자원을 실어 나를 화물차와, 소위 완행열차도 다녀야 할 때쯤이면, 저런 빈 역사도 붐비게 될 것이다.  
  식당 칸으로 돌아오니 홍 사장이 중년의 중국 남자와 대화를 나누며,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식탁위에는 서울서 가져 온 진공 포장된 사탕과, 간식 봉지들이 기압차이로 공처럼 부풀어 올라 있다. 그럼에도 심각한 고소증이 없는 걸 보면 다행스런 일이었다. 기차가 산소를 공급하여 그런지 그 사이 적응이 된 모양이다. 홍 사장의 말을 통역했다.
  “어디서 오셨나요? 왜 티베트를 갑니까?”
  “위난성에서 왔어요. 중국 본토에서는 사업이 힘들어요. 이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니 사업할 게 있나 가보는 중입니다. 중국 본토는 너무 경쟁이 심하거든요.”
  그 말을 듣자 홍 사장의 눈은 빛났다.
  “라싸에서 사업을 하려는 거군요.”
  “그건 좀 생각해야 할 것이고요. 내 생각은 야둥(亞東) 근처로 가보려 합니다. 이 철도가 몇 년 안에 그쪽까지 연결 된다고 하더군요.”
  칭짱철도는 라싸까지 개통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신천지를 찾아 왔다는 사람이 말하는 야동은, 티베트 제 2의 도시 시가체 행정구역이다. 거기서 인도는 금방이다. 고대로부터 왕래가 있었던 나투라 고개만 넘으면 되니까. 폐쇄되어 있던 그 고개 길이 칭짱철도 개통을 기점으로 다시 열렸다고 말한다. 야둥이 그런 곳이라는 건 김기자의 말을 듣고 알고 있었다. 그 중국인의 말에 따르면 야둥에는, 장사꾼으로 소문 난 위난성 사람들이 벌써 많은 건물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답게 홍사장과 그 사람은 많은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들의 말을 소통시키며, 사업은 재빠른 판단이 필요한 것을 나는 새삼 알게 되었다. 중국인 사업가들에게 티베트는 신천지겠다. 그런 신천지에의 이주를 중국 당국은 부추기고 있었다. 장사꾼에겐 신천지로, 학생들에겐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서부로 가자고, 구호성 슬로건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 결과, 도시에서는 중국인들의 수가 원주민인 티베트 인들을 이미 압도하고 있고, 앞으로 그것은 심화 될 것이다. 홍사장과 중국인 사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기자는 혼자 말처럼 뇌까렸다.
  “티베트에서는 여자가 아기를 낳지만, 중국인들은 기차가 사람을 낳는군.”
  그건 맞는 말이다. 기차는, 사람처럼 한명씩이 아니라 무지막지하게 쏟아 낸다. 아기를 낳는 속도를 기차에 비 할 수 있으랴. 앞으로 본토 각지까지 연결되어 철도가 바빠질 건 불문가지고 보면 사람을 낳는 기차 역시 그러하리라.
  오후가 되며 기차는 마지막 역 나취를 남겨두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초원과 민둥산에 야크와 양들의 숫자가 더 많아 진다. 벌써 기차를 학습했는지 동물들은 고개도 안 들고 풀을 뜯기 바쁘다. 철길은 흙과 자갈을 돋우고 새로운 길로 탄생된 것이다. 기차 길 옆 양쪽에 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방책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그건 동물에게는 인위적 분단선이 될 수도 있어 보였다. 야크나 양들에게 접근 금지 분단선은, 50미터 혹은 100미터에 하나씩 뚫려 있는 통로로 왕래 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까지 신경 쓴다는 게 가상한 일이다. 그러나 검은 점, 흰 점처럼 박혀 있는 야크와 양이 사람 글을 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쪽과 저쪽의 종은, 철도로 나누어 진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이제 기차는 나취에서 서서히 고도를 내리고 있다. 기차에 비치 된 중국 잡지에서 본 칭짱철도의 단면은, 4900미터 나취를 정점으로 라싸를 향하여 줄 곳 내리막길이었다. 고도를 내리며 양과 야크가 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티베트인들의 사각형 흙집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싸 강이 분명한 물줄기 양안의 곡저 평야에는 티베트인들의 주식인 짬바의 원료 ‘라이보리’가 누렇게 익고 있었다. 문성공주가 3년이 넘게 걸어왔던, 종착지 라싸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고소증도 없이 이렇게 빨리 올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힘이고, 김기자의 말대로 중국 경제의 힘이다.
  “대단하군. 정말 인간의 힘은 대단해.”
  홍 사장이 어둠이 짙어지는 창밖을 보며 우리가 탄 기차의 위대성을,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저력에 경탄한다는 말을 했다. 김기자 역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제 중국은 이 기차 길로 인도양까지 물류 수송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게도 영향이 없는 게 아니지요. 북한과 정치적 해결만 된다면 부산에서 기차타고 히말라야 넘어 인도까지 간다는 말이니까요.”
  “그러게! 정말 꿈같은 현실이야. 중국의 힘을 제대로 보는 것 같군. 김기자, 욕심 많은 중국이 여기서 끝내지 않겠지?”
  “그럼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네팔을 거쳐 인도로 가는 길도 구체적 논의 선상에 있다고 합니다. 라싸와 티베트의 2대 도시 시가체를 잇는 칭짱철도의 첫 번째 지선 건설 작업은 벌써 측량이 시작되었다는데요. 내년 중에 건설이 시작돼 3년 안에 마무리 될 거랍니다. 이건 길의 진보가 아니라 혁명이라 물러도 무방한 일이지요.”
  기자라는 역할이 새삼스러웠다. 어디서 저런 정보를 알았을까. 김기자는 내가 해야 할 가이드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건 좋은 일이고 거기에 거부감은 없었다. 기차가 연착되어 라싸에 도착한 시간은 예정 시간을 한 시간 가까이 초과하고 있었다. 어둠이 티베트 고원에 검은 장막을 친 듯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고단한, 그러나 다이나믹했던 여정이 끝났다. 밤 9시 30분 기차는 라싸 역에 멈췄다.
  라싸 역에는 북경여행사 왕사장과 연결 되어 있는, 현지여행사 조선족 가이드 김석민이라는 사람이 마중을 나왔다.
  “축하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칭짱철도를 타고 라싸를 방문한 첫 번째 한국 사람들인 것 같군요.”
  “그래요? 그것 참 즐거운 소식이네요. 그런데 잔뜩 겁먹었던 입경허가서를 기차에서 보자는 사람도 없더군요.”
  손님들은 모르지만 그걸 미끼로 폭리를 취하는 이들의 행태를 내가 슬쩍 꼬집은 것이었다. 그 말에 김씨는 북한 말처럼 들리는 조선족 특유 억양으로 대답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필요 없는 그런 걸 왜 법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만약 걸리면 바로 잡혀가니까 지켜야 편하지요.”
  그를 따라 나선 라싸 역은 근대식 건물로 지어진 상당한 크기였다. 벽면 한쪽에 우리가 지나 온 칭짱철도가 부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앞에 서니 과연 먼 길이었고, 험난한 산과 고원을 횡단한 철도라는 게 사실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불야성을 이룬 라싸는 이미 전에 와 보았던 도시가 아니었다. 물론 그때도 은둔의 땅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문명이 넘치는 라싸 시내를 보며 내가 은근히 꿈꾸었던 라싸는 없다, 라고 생각했었다. 몇 년 사이에 라싸는 번영을 누리는 중국의 많은 도시 중 한 부분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이성열이 포탈라 궁을 발견하고 낮은 탄성을 지른다. 불가사의 한 건축물이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 된 포탈라 궁이, 밤 조명에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시내 어디서나 조망 되는 포탈라 궁은, 우후죽순처럼 치솟는 빌딩에 대비되어 예전처럼 충격으로 다가 서지 않았다. 라싸는 신생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예약 해 놓은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홍 사장이 현지 가이드 김 석민에게 물었다.
  “도시 인구는 얼마나 됩니까?”    
  “현재 라싸의 인구는 대략 46만 명쯤 되는데 그중 30만 명이 한족이지요.”
  김 씨의 한마디로 중화 된 티베트의 현실을 알 수 있었다.
  “기차 개통으로 몰려 온 사람들 맞을 호텔은 충분합니까?”
  “아니요. 잠자리가 모자라 호텔 복도에서 잠 잘 정도로 사람이 많이 오고 있어요. 그에 따라 자본도 많이 들어 와 시내 곳곳엔 건축 붐이 한창입니다.”
  “복 터졌군.”
  홍 사장 딴에는 빈정거린다는 말이었는데 신이 난 듯 김 씨는 말을 받았다.
  “한국 사람들 표현대로 대박이지요. 밀리는 관광객을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어 이곳에 오지 말라고 홍보를 하는 실정입니다. 입장료 100위안인 포탈라 궁도 암표가 3-400위안씩 하는데 그것도 하루 전에 인원을 통제 합니다.”
  모두 칭짱철도의 힘이다. 뒤 좌석에 앉은 김기자가 목을 빼며 말했다.
  “티베트와 더불어 분리 독립 움직임이 활발한 신강위구르족자치구를 가본 적이 있어요. 사년 전 일이지요. 수도인 우루무치와 최서단 국경도시인 카슈가르를 잇는 남 신강 철도가 완공됐다고 해서요. 그런데 철도 개통이후 카슈가르의 상권은 모두 한족에게 넘어갔고, 시 중심가는 밀려드는 한족이 점령한 상태더군요. 역시 라싸의 상황도 똑 같은 처지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시내를 관통하는 라싸 강에도 새로운 횡단 다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시내는 네온사인으로 휘황했다. 창밖 라싸 도심 속에 우뚝한 포탈라 궁을 보던 이성열이,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현상을 달라이라마께서는 이미 예견했습니다. 미국 초청강연을 통해 말했지요. 보통 철도의 연결은 발전을 위한 것이지만, 칭짱철도는 인구 통계학적인 변화를 초래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지금 티베트에서 문화적 대학살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이 한족 이천만 명을 대거 티베트로 이주시킴으로써 티베트 내에서조차, 티베트인들을 소수민족으로 전락시키기 위한 것이다, 라고요."
  끔찍한 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티베트인들 숫자는, 모두 이백 삼십만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열배 가까이 되는 사람을 이주 시킨다니! 달라이라마는 칭짱철도 부설에 따른 위기감 간파했지만, 상황은 이미 끝난 것처럼 보였다. 북경에서 본 중국 관영 CCTV는 티베트 여행 산업을 소개하면서, 관광산업을 위해 중국 지적 인력이 티베트로 들어가는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 땅 전체로 볼 때는, 아직 중국에서 유일하게 원주민인 티베트인의 인구비율이 높다. 그러나 칭장철도가 중국정부의 의도대로 인구비율조차 역전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당연히 경제 문화의 중심축으로 기능 할 도시를 기점으로 차츰 변방까지 퍼져 나갈 것이다.  
  우리 숙소는 포탈라 궁이 바라보이는 신축 호텔이었다. 수목 한계선을 넘은 민둥산이 에워싸고 있는 분지가 라싸다. 우리가 횡단해 온 고원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해발 3600미터였다. 그러나 이 높이도 백두산 보다 한참이 높은 곳이다. 고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분지이기에 그나마 애써 가꿔 놓은 나무들이 눈물겹다. 사막의 도시처럼 척박한 땅에, 근대적 도시로 거듭 난 티베트에서 변한 게 없다면, 아침 풍경이 아닐까 싶었다. 마니차를 돌리며, 포탈라 궁을 한 바퀴 도는 행동인, ‘코라’를 하는 티베트 인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흘 간,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성열은 죠캉 사원과 포탈라궁 등 티베트 성지 순례를 했고, 김기자는 조선족 김 씨를 통역으로 대동하고 부지런히 취재를 다녔다. 나는 홍 사장과 카펫 공장을 방문하고, 기차에서 만난 중국인과 함께 인도 국경 야둥을 다녀왔다. 그렇게 사흘을 보낸 후, 나는 우리가 어느 정도 고소 적응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라싸로 들어 온지 나흘 째 되는 날, 우리는 길을 나섰다. 몇 개의 지류가 합수 되는 라싸 강변 넓은 평야엔 가을 추수가 한창이었다. 우리가 대절한 차량이 달리는 길은 한동안 칭짱철도와 함께 가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그 도로는 칭짱 공로였다. 그 길은 또한 이성열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하늘호수 가는 길이기도 했다. 라싸를 출발하여 3시간쯤 계속해서 고원으로 올랐다. 해발 4500미터 가까이 올라 접근해 본 철길은 생각보다 높았고 직선으로 아득하게 뻗어 있었다. 원근법의 전형을 보듯 두 줄기 철길이 시선이 끝나는 곳에서 한 점으로 합쳐지고 있었다. 과연 어마 어마한 토목 공사였음을 실감케 했다. 김기자와 함께 그림이 될 만한 초원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고원을 달리는 기차를 찍어야 했으니까. 바람이 몹시 차가웠고 빗발이 간간이 뿌렸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은 황량했지만 야크와 양떼들은 여전히 한가롭게 풀을 듣고 있었다.  
  한동안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가 타고 온 것이 분명한 기차가 북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멀리 지평선에서 점으로 나타났다. 문득, 이렇게 드문드문 기차가 다녀서야 무슨 경제적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김기자의 말에 의하면 이 기차 길의 개통으로 물류비용이 무려 75%가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는 것이다.  
  라싸 출발 기차도 우리처럼 칭짱철도를 한 낮에만 통과하기 때문에 촬영은 오전에 끝났다. 촬영이 끝나자 드디어 우리는 목적지인 하늘호수로 달렸다. 나는 이성열이 말 한 설련화를 볼 수 있다는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과연 그 꽃을 찾을 수 있을까? 이성열이 과연 그 꽃으로 자신의 아내를 구해 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건 허망한 기대처럼 생각들었으나 그 꽃이 궁금한 건 사실이었다. 하늘호수 가는 길은 말끔히 포장 된 아스팔트 신생의 도로였다. 해발 오천 미터가 넘는 ‘라겐’ 고개를 넘어 호수까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기지개를 편 중국 자본이 이곳까지 밀려들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라겐 고개 정상에는 티베트 인들이 걸어 놓은 오색 룽다가 꽃잎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고개 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하늘호수가 아득하게 보였다. 이 호수도 다른 곳처럼 소금물이었다. 그래서 드넓은 호수가 더 바다 같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 바다 같은 호수 주변은 하얗게 만년설을 이고 있는 니엔칭 탕그라 산맥의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손을 뻗으면 파란 하늘이 만져질 것 같다. 티베트가 워낙 높은 곳이라 하늘이 내려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 들었다. 검은 가방을 맨 채 이성열도 묵묵히 하늘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차에 오른 우리는 호수로 향했다. 곡예 하듯 고개 길을 내려서니 이번에는 끝없이 너른 평원이 펼쳐졌다. 우리는 새롭게 바뀌는 풍경에 매료당했다. 평원 먼 곳에 유목민 천막이 보이고 야크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호수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워낙 공기가 맑고 희박해 그런지 이곳에서는 원근 구별이 잘 되지 않았다. 호수를 에워싼 만년설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한쪽으로는 가뭇하게 지평선이 보였다. 수목 한계선을 훨씬 넘어 선 이곳은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고 듬성듬성 풀만 자라는 평원이었다.
  드디어 우리는 하늘호수 가에 도착했다. 성스러운 호수답게 순례를 온 많은 티베트인들이 보였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물가를 향 해 천천히 걸었다. 가죽 치마를 입고 양 손에 송판 조각을 붙인 티베트인들이 한 사람이 우리 앞에 보였다. 그는 일어서서 한 걸음 내 디딘 후, 몸 전체를 땅에 붙이고, 다시 엎드리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티베트의 신성한 곳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볼 때 그건 한 마리 자벌레였다. 한 걸음 내 디딘 후, 던지듯 몸을 땅에 붙일 때는 풀썩 먼지가 일었다. 몸을 던지다 시피 격렬하기에 무릅과 손을 보호하려 가죽치마와 송판을 댄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맹렬하게 오체투지를 하는가 주위를 살펴봤는데, 드문드문 격렬하게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이 보인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한없이 자세를 낮추게 하는지 놀라운 일이었다. 김기자도 궁금했는지 나에게 취재 요청을 했다. 다행이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젊은이였다. 그는 이 하늘호수는 티베트인들에게 으뜸으로 신성한 곳이라고 말한다. 두 달 계획으로 오체투지를 하며 이 호수를 돈다고 했다. 걸어서도 까마득한 거리인데 저렇게 자벌레처럼 간다면 어느 세월에 코라를 완성 할 수 있을까.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이 티베트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청해성 변방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이미 1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서도 자신보다 더 신심이 돈독한 사람은 라싸에 있는 포탈라 궁전까지 오체투지로 간다고 했다. 그게 몇 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놀라웠다. 대체 그런 무모한 행위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티베트 불교의 힘이라 이해 할 것인가.
  그 티베트인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던 김기자가 혀를 찬다.
  “정말 대단하군.”
  합장을 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성열이 김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이게 이들이 믿는 종교의 힘입니다. 누가 시켜서 이렇게 할까요? 아니, 이들에게 티베트 불교는 종교를 넘어서 삶의 일부가 된 것이죠. 우리가 밥 먹고 잠드는 것처럼 이들의 수련방식은 이미 생활입니다.”
  강렬한 햇살이 따가웠는지 눈을 잔뜩 찌푸린 채 홍 사장이 말했다.
  “그게. 기차에서 이성열씨가 말 한 신념이라는 거군요. 총으로도 어쩔 수 없는 신념. 그러니 중국에서 보면 눈엣 가시 같은 달라이라마와 불교가 얼마나 밉겠소? 종교는 아편이라고 정의 한 공산주의자들인데.”
  “비폭력 무저항주의는 간디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달라이라마께서는 더 큰 자비의 힘으로 원수인 중국인들을 용서하고 있는 거지요. 오히려 그분께서는 중국을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군요.”
  내가 듣기에 이성열의 말은 황당한 논리처럼 들렸다. 홍 사장도 그런 생각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성열을 바라보았다.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제 아내에게 들은 말입니다.”
  “정말이라면 대단한 일이군. 그런데 그런 부인은 언제 만났소?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티베트 불교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소.”
  “아내와는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순서는 다르지만 동창회에서 만났지요. 그러나 이성으로 느끼기 시작 한 것은 아내가 일본 유학을 끝내고 미국으로 귀환한 후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은 티베트 불교에 대하여 학문적으로 오래 전부터 관심을 기우리고 있었다는 군요.”
  “그러니까 부인과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군요?”
  “동창이니까요. 귀국 환영 모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 순간, 무언가 내 속에서 끓어올랐고 아득해졌지요.”
  “하하. 원래 사랑의 시작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다가오는 거지요. 그런데 이성열씨도 불교 공부를 했습니까?”
  “아뇨. 전 아닙니다. 집 사람 만 불교철학을 했지요. 아내가 절망하고 있는 나를 위로하려, 달라이라마가 말한 공(空)사상을 이해시키려 한 것을 잘 압니다. 저는 아내가 나를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처음엔 건성으로 들었거든요.”
  “베게 밑 송사라는 말이 있어요. 함께 베게를 쓰는 아내의 말을 결국 따라 간다는 비유지요. 귀에 대고 밤마다 속삭이는데 당 할 남자가 있겠어? 하하.”
  장난처럼 내 던진 홍 사장의 말은, 불교를 믿지 않던 이성열이 아내에 영향으로 불교에 빠졌다는 말일 터였다. 그러나 이성열은 진지하게 대답을 했다.  
  “그녀의 말에 따라 간 것은 아닙니다. 의심이 들어 관련 서적을 보며 스스로 확신을 한 거지요.”
  조금 무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홍사장이 말을 바꾸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다면서 학생 때는 못 느끼던 감정이 갑자기 생겼다는 말인데, 부인도 그런 감정을 함께 느꼈다는 건가요?”  
  “가까이 다가서는 나를 보는 그녀는 당황했지요. 침묵해야 할지, 미소 지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점차 만나가면서 그녀의 생각을 알 것 같았습니다.”
  “성열 씨는 무척 소심한 사람 같은데, 그때는 용기를 내었군.”
  “만약 평소의 저대로 소극적이었다가는 그녀를 놓칠 것 같았습니다.”
  이성열의 말대로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건가. 사랑은 그런 것일까? 내게도 그런 사랑이 올 때가 있을까. 설명 할 수없는 게 사랑이라고 하던데 이성열의 말처럼 사랑이란, 말보다 눈빛이 우선이라 것이 듣기 좋았다.
  “무언으로 소통하는 그런 사랑이었지요. 내 영혼의 반쪽을 찾은 것이니까요. 결혼 상대자는 시간을 두고 만나고 서로 천천히 알아가야 한다는 어머님의 말씀도 그때는 안 들렸습니다.”
  “그렇겠지. 사랑은 콩깍지를 눈에 씌운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도착한 물가에는 조잡한 수공예품을 팔기 위해 호객하는 티베트인들의 상흔이 극성스러웠다. 본업인 유목을 하지 않고 장사를 하게 만든 것도 문명의 힘인지 모른다. 그러나 바람에 날리는 룽다와, 신성한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코라를 하는 사람들의 경건한 표정은 보기 좋았다.
  우리는 그때부터 유심히 호수가 땅을 살폈다. 이성열이 말 한 설련화를 찾기 위해서였다. 듬성듬성 난 풀 종류는 가끔 보였지만 어디에고 꽃은 없었다. 이성열의 실망이 클 것 같았다. 홍 사장도 그랬지만 김기자도 역시 꽃을 찾으려는지 땅을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한참을 꽃 찾기에 몰두하다가 실망을 하고 고개를 들어 이성열을 바라봤다. 내가 실망했다면 그는 절망했을 터였다. 이성열은 가방을 맨 채 물이 찰랑이는 호수 가에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꽃을 찾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이리 저리 움직이며 꽃을 찾던 김기자도 포기했는지 호수 풍경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살핀 땅에는 설련화는 고사하고 다른 꽃도 보이지 않았다. 꽃 찾기를 포기한 홍사장과 내가 물가로 가서 이성열 곁에 섰다. 호수 가장 자리엔 흡사 바다의 파도처럼 물결이 치고 있었다. 한 쪽으로 호수를 마주 보는 바위산이 있었는데, 그 틈새에 티베트 불교 사원인 작은 곰파가 몇 채 보였다. 그곳에서 는 라마승들이 수행을 한다고 했다.
  우리는 물가를 떠나 바위산 쪽으로 갔다. 그곳엔 천막이 몇 채 있었다. 거기는 티베트 인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차를 파는 곳이었다. 김기자가 우리를 보며 웃었다.
  “참 좋은 세상이에요. 아시아의 오지까지 기차를 타고 온 것도 믿어지지 않지만, 그 기차가 이들 티베트 인 생활도 다 바꿔 놓았어요. 돈 벌이 맛을 알았으니까요. 이제 지구별엔 더 이상 오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김기자의 말에 동의 한다는 듯 이성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분석했듯 기차는 필연적으로 이곳에 변화를 불러 올 겁니다. 그러나 그건 사람을 위한 기차가 이미 아닙니다. 중국을 위한 칼날이지요. 단순한 쇳덩어리지만 티베트인들의 문화와 전통을 말살 할, 마구니 같은 존재로 기능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기차는 현실 아닙니까? 이성열 씨가 말하는 정신적인 것은 눈에 안보이지만 기차는 보이듯 말입니다.”
  “자연계의 상호 존재의 가치를 무시한 기차가, 정치적 목적과 자원 수탈을 위하여 만들어 진 그것이, 저렇게 솟은 산과 호수보다 더 오래 존재 할까요? 저 호수가 짠 물인 것은 오래전엔 이곳도 바다 속이었다는 움직일 수없는 증겁니다. 그렇게 바뀌는 거지요. 기차는 인드라의 그물을 외면한, 문명이라는 허명에 편승한 인간의 이기적인 오만일 뿐이지요.”
  인드라의 그물이라는 모호한 말은, 나도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견해는, 칭짱철도의 두 철길처럼 결코 만날 수 없는 것일까. 만약 철길이 만나면 큰일 나 듯, 둘의 생각은 끝까지 함께 달리는 평행선이었다.
  우리는 천막으로 들어가 밀크 차를 시켰다. 지저분한 천막 안은 역겨울 정도로 이상한 냄새로 차 있었다. 차를 끓이기 위해 불을 피운 연료 야크 똥 냄새였다. 야크 똥을 말린 연료가 이곳에서는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자연에서 자연으로 환원시키는 완전한 자급자족 시스템이네.”
  신기한 듯 홍 사장이 말린 야크 똥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본다. 가장자리가 얼룩진 지저분한 컵에 차를 한잔씩 받은 후 내가 설명을 했다.
  “고지대인 티베트엔 나무가 없기에 야크 똥은 유일한 연료입니다. 야크야 말로 버릴 것 하나 없는 이들 유목민의 목숨 같은 것이지요. 젖과 고기, 털로는 옷을 짓고 가죽으로는 천막을 만듭니다. 이동 할 때는 등짐을 지우고요.”
  “양도 많던데 양젖도 많을 게고.”
  “양은 일 년에 사 개월 밖에 젖이 안 나온답니다. 야크 치즈 하나씩 사가세요. 완전 자연식이고 향이 아주 좋습니다. 아 참! 설련화를 물어 봐야겠지요?”
  나는 천막 주인에게 설련화의 존재를 물었다. 우리는 긴장한 채 티베트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성열도 긴장하는 듯 했다. 역시 꽃은 없었다. 그런 꽃은 처음 들어 본다는 대답이었다. 원래 고도가 높아 여름에만 잠깐 손톱만한 꽃을 피우는 건 있어도, 겨울이 오고 있는 지금은 아무런 꽃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는 원주민인 그는, 꽃을 약으로 쓴다는 말도 나에게 처음 듣는다 했다. 몇 번이고 확인하는 나를 그만하라고 말린 것은 이성열이었다. 실망이 클 그의 표정은, 그러나 의외로 평온했다. 흥미를 가지고 티베트인의 대답을 기다리던 김기자는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본초강목인가 뭐라는 의서는 가짜예요. 물론 이성열씨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하늘호수에 설련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군요.”
  이성열은 말없이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마시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늘호수를 좀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하기 위하여 바위산으로 갔고, 가파른 그 산을 올랐다. 고도가 높은 탓에 몇 발자국 못 가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조금 무리하여 속도를 내면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밀려 왔다.
  드디어 우리는 바위산 정상에 올라섰다. 커다랗고 편편한 바위가 정상부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이 하늘호수를 감상하기 가장 좋은 지점이었다. 모두의 눈에서 가공되지 않은 진짜 자연을 목도하며 놀랍다는 표정을 떠올렸다. 날씨가 쾌청하기에 압도하듯 펼쳐진 넓은 호수와, 그것을 에워싼 장대한 만년설산맥이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여름철에 잘 나타났던 뭉게구름과 장엄한 하얀 산이 어울려 몽환 같은 풍경이었다. 말끔하게 드러난 호수와 그것을 에워 싼 하얀 산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파란하늘은 너무 짙어서 잉크 빛을 띠고 있었다. 파랑과 하안 색은 선명하고도 강렬하게 우리 주변을 아우르고 있다. 워낙 호수가 넓어 구름이 만든 그늘도 제 각각이었고, 구름 틈 사이로는 햇살이 쏟아지듯 내리고 있었다. 바위 산 정상에서 호수가 까지 매어 달아 놓은 무수한 룽다가 꽃처럼 휘날리고 있다.
  “야, 이거 정말 환상적 풍경인데. 저 하얀 산 좀 봐. 그리고 저 물 색깔도. 하나의 호수인데 물색이 여러 가지로 보이잖아.”
  홍 사장의 말처럼 우리는 바위에 앉아, 신이 빗어 낸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문득 생각 난 듯 홍 사장이 이성열에게 말을 건넨다.
  “아무리 살펴보고 또 가이드가 티베트 사람에게 물어 봐도, 설련화는 없다는데 이성열씨 실망이 크겠군.”
  검은 가방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열려던 이성열이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요. 저는 설련화를 찾았습니다. 너무 많아 지금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저기 있지 않습니까.”
  그가 손을 들어 가리키는 곳은 막막한 하늘이었다. 그리고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오색 룽다가 있을 뿐이었다. 이성열의 황당한 말에 우리는 그저,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꼭 한번 아내는 나와 함께 이곳을 오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그 말을 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미국 생활이라는 게 그렇거든요. 박사가 넘치는 미국이지만, 티베트 불교철학이라는 희귀성 때문인지, 아내는 비교적 쉽게 UCLA 동양학과 교수로 임용 되었습니다. 나도 그랬지만 아내 역시 많이 기뻐했지요. 그런데…… 임용 절차 중 하나인 건강 진단을 받는 동안 그녀의 병이 밝혀졌습니다. 말기 암이라는 것이었지요.”
  “저런, 저런 쯧쯧.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임용 될 정도의 재원 이었는데. 재인박명이라더니…….”
  진심으로 안 되었다는 듯 홍 사장이 혀를 찼다.
  “그녀의 병이 불치라고 확정 되었을 때, 여러 병원의 진단이 같았을 때, 나를 위로 한 건 오히려 그녀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한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그게 궁금했습니다.”
  어려운 말을 하면서 이성열은 이상하게도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믿었던 부처님은 힘이 세더군요. 저는 그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원래 관심이 없던 제가 불법을 믿게 된 것이지요. 엘에이 시내에 에코 팍이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거기를 가면 유일하게 군집을 이룬 연꽃을 볼 수 있지요. 저는 아내의 청을 받고 매일 저녁 산책 겸 그 연못을 돌았습니다. 코라처럼 말이죠.”
  “코라라면 우리가 이곳에서 본 티베트인들의 순례를 말하는 겁니까?”
  “그래요. 아내는 불교의 꽃이라는 연꽃을 좋아 했습니다. 그녀를 부축하고 그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게 유일한 산책이었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그 작은 공원 연못 코라를 못 돌 정도로 허약해 진 겁니다.”
  “아이는 있었나요?”
  거의 울상이 된 홍 사장이 물었다.
  “아뇨. 아내의 오랜 공부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어요.”
  “부인이 그렇게 이곳을 오고 싶어 했다면서, 함께 못 온 건 그 몹쓸 병 때문이란 말이군요.”
  “기차에서 김기자와 나눈 말은, 모두 아내에게 들은 말입니다. 불교의 뿌리가 되는 인도 철학에서는 ‘인드라의 그물’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사바세계의 실상은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고 그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은 서로 비추고 비추어지는 관계에 있다는 거지요. 이것과 저것이 소통하므로 세상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말이겠습니다.”
  홍 사장의 물음에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말을 하는 이성열의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날렸다.  
  “그러므로 혼자라는 아상은 없다는 거죠. 인드라의 세계는 넓은 것뿐 아니라 깊기도 하더군요. 아내와 제 삶이 인(因)이라는 날줄과, 연(緣)이라는 씨줄로 엮어 진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 인연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 그리고 바람소리, 물소리까지 서로 교류하고 소통한다고 했습니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분별은 무의미하다는 거죠.”
  이성열의 말은 갈수록 깊어졌다.  
  “말기 암 환자가 그렇듯 다량의 진통제가 아내에겐 필요했습니다. 그녀의 고통을 보는 건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괴로워하는 나에게 그녀는 부처님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아니, 이곳 하늘호수 이야기를 해 준 거죠.”
  서늘한 바람이 앉아 있는 우리를 흔들고 호수 쪽으로 불어 갔다. 텅 빈 호수의 너른 공간과 건너편에 홀연히 솟은 하얀 산. 이런 풍경을 그녀가 남편에게 해 줬다는 말일까.
  “불교 쪽에서 말하는 설련화 이야기도 그때 들었습니다. 아내는 그것의 실체를 은유로 말했으나, 나는 그 말을 실지로 믿고 싶었습니다. 절박했으니까요. 내가 가서 그 꽃을 따올게. 그래서 당신을 살려 낼 거야! 저는 실제로 그 설련화에 대하여 여러 문헌을 찾고 자료를 뒤지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하얗게 웃었지요.”
  웃었다는 대목을 말하는 이성열의 입가에도 허허로운 미소가 흘렀다.  
  “은유로 말했다지만 아내는 그 존재를 뭐라고 말 하던가요?”
  홍 사장이 설련화에 대한 미련이 남은 듯 물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너진다는 뜻으로 아내는 설련화를 설명했습니다. 영원히 늘,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이지요. 공즉시색, 부처님의 그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자신이 죽었다고 슬퍼할 까닭이 없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그게 설련화와 어떻게 연결 되는지…….”
  “아내는 자신이 내 곁에서 곳 떠날 것을 알고 있었지요. 혼자 남아 있는 저를 위로한다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지 말고 초월하라는 말 이었습니다. 그 비유로 설련화를 든 겁니다.”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떠날 때를 가늠하면서 남은 사람을 배려 한다는 이성열 부인의 심정을 보는 듯 해서 가슴이 아려왔다.
  “부처님의 법을 알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 합니까. 마음공부라고 하지만 그건 조용한 공부가 아닙니다. 이 바위산 오르면서 보셨지요? 티베트 스님들도 이렇게 오지의 토굴에 앉아 홀로 면벽 수행을 했답니다.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주인 유명한 고승인 밀레레빠가 그랬고, 파드마 삼바바가 그랬답니다. 홀로 수행한다는 건, 겉으론 고요해 보이지만 스스로의 마음속에선 피 튀기는 치열한 전쟁 같은 공부라고 하더군요. 그런 과정을 제대로 거치면 무념무상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지요. 그런 비유로 아내는 하늘호수에 외롭게 피는 설련화를 말한 거라 생각 드네요. 자신의 죽음에 내가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위로를 한 거예요.”
  “아주 속 깊은 분이었군요. 그런데…… 그런 아내의 뜻을 알고 있었나요?”
  “여기 오기 까지는 몰랐습니다. 설련화를 볼 수 없었고 또 현지인이 그런 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고…… 문득 아내의 말뜻을 알게 된 건, 바위산을 오를 때였습니다. 그때 홀연히 안 거지요. 하늘호수를 에워싼 모든 상징이 설련화라는 걸 말이지요.”
  “그랬군요.”
  홍 사장의 눈가가 붉어졌다. 김기자도 자꾸 마른기침을 해댔다.
  “이제 꽃으로서 설련화를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그러나 나는 아직도 설련화의 존재를 믿습니다. 겨울이 가까우므로 꽃이 없다는 티베트인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렇게 많은데요. 가없이 너른 수면과, 그것을 옹위하듯 서있는 만년설 쓴 화엄의 산들이 설련화입니다. 티베트 고원 바람에 날리고 있는 저 오색 룽다가 설련화고요.”
  이성열은 손으로 나부끼고 있는 룽다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색 룽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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