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파피Poppy 꽃 단지에서

                                이 용 애
삼 년만에 다시 찾은 엔텔롭 밸리(Antelope Valley)는
지난겨울 풍성히 내린 비로
빈자리 없이 만발한 파피 꽃이
황홀한 주황색 바다로 떠 있었다

그 때 파피와 키를 재며
아장아장 꽃 속으로 걸음마를 하던 아가는
두 살 된 동생 손을 잡고
주황색 파도를 헤치며
거침없이 내달리는 누나가 되었다

그 해엔 가뭄 때문에 빈약한 파피 꽃밭
빈자리 곳곳을
갖가지 들꽃이 저마다 다투어 채워 줘
아름다운 화음을 이뤘었는데
파피의 왕성한 기세에 설 땅이 없어졌음일까
그 많던 들꽃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언덕 위 산책로 옆에
이름 모를 하얀 풀꽃이
소복이 모여서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아! 너희들 여기 모여 있었구나
아무도 눈 여겨 보아주지 않아도
이렇게 너희끼리 얼굴 비비며 피어 있었구나

온 들을 모두 덮은 파피 꽃과는
색깔도 모양도 너무 다른 너희들
그 틈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 남아
의젓하고 싱그럽게 자란 모습
참으로 대견하다

다음 해에 다시 찾아올 땐
튼 실한 뿌리로 더 많이 뻗어나가서
큰 무리를 이루고 있거라
그 때는 훌쩍 커 있을 손주 아이들과
내가 다시 찾으리라

이 땅에서 어울려 살아야 할 그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살아가는 꿋꿋한 모습
꼭 보여주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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