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새끼'란?

2004.12.01 07:36

박경숙 조회 수:573 추천:2

'호로'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슬프디 슬픈 우리의 역사와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 두차례의 호란으로 여인들이 능욕을 당해 원치 않은 사생아를 낳게 돼 생겨난 말이다.

'호로새끼'를 영어에선 뭐라 부를까. '배스터드'(Bastard) 영화에서나 주변에서 흔히 듣게 되는 욕설 아닌가. 알고 보면 '배스터드'도 우리의 '호로새끼'와 비슷한 과거를 갖고 있다. 예전 영국의 귀족이나 돈 많은 상인들이 바람을 펴 얻은 자식을 일컫는 법률용어다. 사생아들이 워낙 많다 보니 사회문제가 됐던 모양이다. 민법에 '배스터드' 조항을 둬 이들에게도 일정 몫의 재산상속을 인정했다. 적자가 아니어서 호적엔 못올리는 대신 돈으로 보상을 한 셈이다.

하지만 엄격한 신분사회인 영국에서 서출이 설 땅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본디없이 막 자랐다고 해서 욕설로 쓰여지게 된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는 '배스터드'는 제임스 스미슨. 영국 최고 명문가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생아 출신이다. 1800년대 중엽 그는 50만 달러나 되는 유산을 몽땅 미국정부에 기증했다. 요즘으로 치면 1000만 달러는 족히 될 성 싶다.

스미슨은 '자유의 땅 기회의 나라' 미국에 박물관을 세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미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스미소니안 인스티튜션'은 그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것이다. 자신의 출생에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라에 박물관을 세워달라고 했을까.

1846년 연방의회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특별법을 제정했다. 박물관의 이사회 의장은 연방 대법원장 당연직 이사 중엔 부통령도 들어있다. 한번 태어나면 신분에 관계없이 품위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나라. 스미슨은 이 때문에 미국을 선택한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미국엔 사생아들의 모임이 있다. 이름은 놀랍게도 '배스터드 네이션'(Bastard Nation). 어릴 적 입양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이들의 주장은 입양기관의 파일을 공개해 자신의 친부모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 달라는 것. 이미 오리건주를 비롯한 몇몇 주는 '배스터드 네이션'의 요구를 주민발의안에 붙여 통과시켰다. (박용필 국장의 '윌셔플레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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