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삶, 경계인의 문학
고국과 미국 사이에서, 신앙과 문학 사이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혹은 삶과 죽음 사이, 영락없는 경계인의 모습이다. 이민의 삶을 갈피마다 노래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삶을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나의 문학은 이민의 삶을 차용해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민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하늘의 이야기, 땅의 이야기, 그 사이의 이야기들이다.
2003년 출간한 첫 번째 소설집 『안개의 칼날』은 나를 부수고 나오지 못하는 안일함이 묻어 있었다. 과잉된 감정은 절제되어야만 한다는, 작품 해설을 쓰신 현길언 선생님의 얘기를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다.
같은 해에 발간된 장편소설 『구부러진 길』도 감수성으로 점철되어 책을 뒤집으면 그만 액체가 흘러내릴 것만 같은 작품이었다. 그래도 섬세한 터치의 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2007년 발간한 신앙역사소설 『약방집 예배당』은 집필하는 동안 근대사를 공부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자료를 뒤져 뼈를 세우고 나의 신앙으로 살을 붙인 그 소설은, 작가인 내가 가톨릭 신자임에도 기독교계의 인정을 받아 제 24회 기독교 출판문화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내 문학을 평가받기 전에, 신앙이 올바로 서있음을 인지하는 계기가 됐다.
2011년 낯선 곳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중국 연변소설학회의 초청으로 연변을 방문, 연변대학 강당에서 제 3회 두만강문학상(단편 '돌아오지 않는 친구' - 소설집 『 빛나는 눈물』에 수록)을 수상하며 조선족 동포들의 삶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백두산 천지와 윤동주 시인의 생가 등을 둘러봤던 인상 깊던 시간들이었다.
2011년 7월 29일 연변대학에서 - 두만강문학상을 수상하고서
그해 가을 고국의 창작실에서 두 번째 소설집 『빛나는 눈물』을 발간했다. 이민소설의 집합체인 푸른 표지의 소설집은 첫 소설집에 비해 깊은 고통이 묻어 있었다. 드디어 내 특유의 안일함이 깨뜨려진 것일까.
두 번째 소설집 <빛나는 눈물>을 발간하고서
2012년 11월, 한 네티즌의 리뷰에 의해 『빛나는 눈물』이 네이버 오늘의 책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경계인의 자리에서 내 경계의 문학은 더 갈 곳이 없는 것만 같았다. 2013년 침체된 마음으로 응모했던 통영문학상에 『빛나는 눈물』이 김용익 소설문학상에 선정되었다. 수상은 내 문학이 더 갈 곳이 있다는 이정표로 떠오른 듯했다.
<2013년 7월 5일 통영문학상 수상>
통영시장님, 통영문협 김혜숙 회장님과
통영문학상 수상자 3인
김춘수 시문학상 조동범 시인, 이상옥 시조문학상 조동화 시인,
김용익 소설문학상 박경숙
2015년 5월, 5년 전에 초고를 완성하고도 끌어안고만 있던 하와이 초기 이민소설 『바람의 노래』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10월 초 그 책이 나도 모르는 사이 추천되어 노근리 평화문학상에 선정되었다.
<2015년 10월 21일 노근리평화상 시상식 - 문학상 수상>
이민대하의 꿈을 안고 집필한 초기 이민사 한 권에 진이 빠져 이제 그만할까 망설이던 시점, 노근리 평화문학상은 그 길을 더 가라는 조금 더 깊은 이정표인 듯하다.
이제 나는 더 가야만 한다. 경계의 삶, 그 문학, 나만이 쓸 수 있는 것들을 써야만 한다. 인간의 삶은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작가는 서로 다른 목소리로 그 삶들을 노래한다. 하늘 아래 고유한 존재인 자신을 통과시켜 작품을 만들어낸다. 나도 그러하리라. 나를 통과한 삶들은 나만의 색깔과 소리를 지닌 그 무엇이 되리라. 오늘도 세상을 필터링하는 내 몸이 조금은 힘겨운 듯 삐거덕 소리를 낸다.
5권의 저서
☆ 박경숙 블로그 → http://blog.naver.com/pksookluc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