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족(義足)


                                                                                                             이 월란
                  




그의 두 발은 늘 정상적인 보폭을 유지하고 있었던 탓에
그의 입으로 발설을 하지 않는 한, 두 가랑이의 절반씩이
위조라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뇨합병증으로 두 무릎 아래를 절단했단다
가끔씩 부주의로 접목 부위가 진무른다고 하면서
들어간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남의 얘기 하듯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차 한 대 값이 들어간데다 양말 한짝에 150불이란다
그가 제일 증오하는 사람은, 멀쩡한데 불구자 주차구간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와 마주앉아 있으면 의족과 마주앉아 있는 기분이다
건드리게 될까봐 조심스러워진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 바지통을 올려 진짜와 가짜가
이어지는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도 싶어진다
어느 날 그는 통증을 호소했다. 이음세 부분에서 피가 났다고
그의 찡그린 인상은 늘 내겐 이음세 부분의 질통으로 아파온다
진짜와 가짜와의 협상은 늘 그렇게 틈이 생기게 마련인가보다
마주잡은 손은 늘 땀투성이, 피투성이


내 소매와 바지통 속에 가려진 의수와 의족들도 그 때서야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결코 누설되지 않을 기형아
난 절대 그처럼 발설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 속을 누가 들여다 본다고
짜증은 침묵으로, 불평은 쓴웃음으로, 질투는 칭송으로
반목은 악수로, 불행은 행복으로, 증오는 사랑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게 흔들리는 나의 두 팔과 두 다리
진품과 모조품의 환상적인 결합


그는 똑바른 걸음나비로 걸어가는데 그의 의족이
내 바지통 안에서 흔들리고 있다
                                                                  

                                                            2007-02-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479 호흡하는 것들은 오연희 2014.11.26 98
10478 [이 아침에] 공공 수영장의 '무법자' 11/26/2014 오연희 2014.11.26 67
10477 [이 아침에] 성탄 트리가 생각나는 계절 11/13/2014 오연희 2014.11.26 27
10476 삶.2 정용진 2014.11.24 35
10475 여호와 이레 김수영 2014.11.23 60
10474 우리가 문학을 하는 이유 김우영 2014.11.23 65
10473 낚시터에서 차신재 2014.11.22 38
10472 통나무에게 차신재 2014.11.22 35
10471 중앙일보 40 주년에 부쳐 김학천 2014.11.21 51
10470 한국인 거주자 숫자의 힘 최미자 2014.11.20 8
10469 좋은 시 감상 <너에게 묻는다> 차신재 2014.11.18 142
10468 배신 차신재 2014.11.17 39
10467 물안개로 오는 사람 차신재 2014.11.17 59
10466 개구리 울음소리 김수영 2014.11.17 51
10465 엉뚱한 가족 강민경 2014.11.16 31
10464 어둠 속 날선 빛 성백군 2014.11.14 105
10463 낙엽 동아줄 2014.11.13 28
10462 일몰(日沒) 정용진 2014.11.12 29
10461 가을줍기 서용덕 2014.11.11 30
10460 얼룩의 소리 강민경 2014.11.10 29